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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 : 인도네시아 블루 플로레스 (Indonesia Blue Flores) 200g

 구입일 : 2014. 7. 15.

 구입처 : 커피플랜트


 저의 서른다섯 번째 원두는 인도네시아 블루 플로레스였습니다.


 커피플랜트의 브라질 모레니냐 포르모자에서 채프가 탄 결점두가 많이 나와서 실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커피콩닷컴의 브라질 세하도 파인컵에서도 채프가 탄 원두가 많이 나온 것을 보고 브라질 원두에서 채프가 타는 것은 비교적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로스터의 실력이 아닌 생두의 특성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커피플랜트에서 원두를 주문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이렇게 주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섬나라입니다. 커피가 생산되는 섬도 많지요. 수마트라("만델링", "가요", "아체", "린통"), 자바("잠피트"), 술라웨시("토라자"), 발리, 플로레스… 제가 이름을 들어본 곳만도 다섯 곳입니다. 수마트라 만델링이 가장 흔하고, 자바와 발리는 가끔 볼 수 있으며, 술라웨시(=셀레베스)는 미국이나 일본 쪽 자료에서 자주 언급되는 정도일 뿐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플로레스는 언급도 드물고 판매자는 더 드뭅니다. 인도네시아 원두를 찾아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커피플랜트에서 그 플로레스를 마주쳤고, 이 김에 사 보기로 한 것입니다.


 대강철저 정신에 입각한(…) 핸드 소트를 실시했고, 골라낸 결점두의 대다수는 깨진 원두와 블리스터(blister)[각주:1]였습니다. 커피 가공 공장 쪽 기계 세팅에 문제가 있었고, 생두의 보관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는 짐작을 할 수 있었지요. 블리스터가 아예 없는 경우는 사실상 없었지만, (기억이 남아 있는) 최근 반 년 사이에 구입한 원두 중에서는 가장 블리스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맛은 구절초만큼이나 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쌉쌀하지 않고 씁니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보다 더 씁니다. 원두를 분쇄할 때 채프가 잘 날리지 않는 모양[각주:2]이나,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우릴 때 미심쩍은 까만 것들이 위에 둥둥 떠오르는 모양[각주:3]으로 보았을 때 강배전 과정에서 채프를 일부 태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원두에서 탄내나 쩐내는 나지 않으니 강배전 자체는 잘 된 것 같고 만델링은 원래 쓴 맛으로 마시는 커피니까, 오일이 흐를 정도로 볶으면서 채프 정도야 태울 수 있지…하고 이번은 넘어가렵니다.


 르완다 마헴베 이후 간만에 목젖으로 aroma를 감상하는(…) 커피입니다. 추출한 커피에 코를 대고 숨을 깊이 들이마셔 보면 만델링과 유사한 젖은 흙과 같은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물고 천천히 삼킬 때에도 목젖에 가까운 입천장에서 그 느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우유와 잘 어울리는 원두입니다. 커피2:우유1(+설탕) 정도의 비율로 섞으면 믹스커피, 커피1:우유2(+설탕) 정도의 비율로 섞으면 커피우유에 가까워집니다. 어느 쪽으로 만들어도 맛이 부드러워 자꾸 홀짝이게 됩니다.


 물을 조금 타 농도를 묽게 하고 설탕을 조금 넣어 마셔도 맛이 좋습니다. 산미가 있는 커피에 설탕을 넣으면 단맛이 산미를 덮는 경우가 많아, 커피의 산미를 중요시하는 저는 왠만하면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는 편입니다(우유도 넣지 않는 편이고요). 하지만 산미가 없는 플로레스와 같은 커피에 설탕을 넣으면 쓴맛이 조금 덜 느껴지고 단맛과 쓴맛이 조화를 이루어, 이렇게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산미, 쓴맛, 복합적인 맛 세 가지가 커피의 맛을 정립鼎立한다고 생각합니다. 산미 없는 커피는 저에게는 발 하나가 없는 솥이나 마찬가지죠. 이런 상황이라면 산미의 빈 자리를 단맛으로라도 채워 맛을 정립하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여름에 인도네시아 원두를 차게 해서 마시면 참 맛이 좋습니다. 겨울에는 바디감을 보태는 반반커피의 베이스로, 여름에는 청량감 있는 아이스 커피의 재료로 쓸 수 있어 커피 애호가의 찬장에 하나쯤 놓아둘 만한 원두입니다. 있을 때는 그렇게까지 좋은 줄 모르다가도 없으면 왠지 아쉬운, 그런 원두이기도 하지요.




 각주


  1. 블리스터는 달 표면의 분화구처럼 동그랗게 파인 부분이 있는 콩입니다. 보관중에 생두가 얼면 로스팅 과정에서 일부분(결합이 약해진 부분)이 떨어져 나가게 되는데, 그 떨어져 나간 부분이 분화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결점두 분류에는 블리스터가 빠져 있는데, 분화구 부분이 타 있는 게 보통이라 좋지 않은 쓴 맛이 날 것 같아서 저는 결점두로 분류하고 골라냅니다. [본문으로]
  2. 평소에 바라짜 엔코를 사용해 원두를 드립과 프렌치프레스의 중간 굵기로 분쇄할 때 호박색 내지 캐러멜 빛깔의 채프가 흩날렸습니다. 타지 않은 채프는 쉽게 부스러지지 않아 나뭇잎처럼 흩날릴 수 있는 형태를 유지하거든요. 하지만 이번 인도네시아 블루 플로레스의 경우 이러한 채프가 흩날리는 정도가 상당히 적었습니다. 타 버린 채프는 드립과 프렌치프레스의 중간 굵기로 분쇄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부스러져 (흩날리지 않고) 커피 가루와 함께 떨어게 마련이니, 채프를 일부 태웠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합니다. [본문으로]
  3. 물을 머금은 커피 가루는 보통 물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위에 둥둥 뜨는 것은 커피 가루가 아닌 뭔가 '가벼운' 것들일 테니… 아마 타 버린 채프겠지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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