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주간 달린 끝에 더치 커피 리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위드오(withO)의 전문 분야는 유기농 더치 커피의 커피 제조·판매이고, 따라서 원두 리뷰보다 더치 커피 리뷰가 좀 더 중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원두 리뷰가 익숙하니 우선 위드오 원두 3종부터 리뷰하고 거기에 살을 붙여 더치 커피를 리뷰하는 쪽이 낫겠다 싶어 이 순서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위드오에서 보내온 택배 상자를 개봉했을 때, 더치 커피가 아이스박스에 담긴 걸 보고 "올ㅋ"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개봉하던 날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커피쟁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더치 커피를 아이스박스에 담아 보내더라'고 하니 다들 놀라워했던 기억도 납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더치 커피가 와인처럼 취급받는 일은 흔해도 냉장식품처럼 취급받는 일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위드오는 왜 더치 커피를 아이스박스에 담아 보냈을까요?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콜드 체인(cold chain)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세균이 번식하려면 영양분, 알맞은 온도, 산소[각주:1]가 필요합니다. 더치 커피 병이 조금 찌그러진 것처럼 보이죠? 진공이에요.[각주:2] 이 상태에서 콜드 체인을 유지하면, 차가우니까 온도가 맞지 않죠. 진공이니까 산소가 없죠. 더치 커피에는 세균이 먹고 살 영양분[각주:3]도 그렇게 많지 않고요. 만약 세균이 유입되었더라도 살 수가 없습니다. 번식을 못 하고 숨만 쉬다가 굶어 죽는 겁니다." —홍근화 (위드오 대표)


 멸균처리를 하는 대신, 생산 과정에서 세균의 유입을 막고 유통 과정에서 콜드 체인을 유지해 세균이 번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택했다고 합니다. 멸균처리를 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더치 커피의 향미를 해치지 않으면서 세균을 확실하게 잡을 방법이 마땅찮아서'라고 합니다. 하긴, 가열을 하면 향미 손실이 일어날 테고[각주:4], 오존이나 자외선이나 감마선은 좀 미심쩍은 구석이 있으니 안 될 일이겠지요.[각주:5]


 지난 11월 코엑스에서 열린 카페쇼에서 위드오 사람들(대표 홍근화, 경영지원실장 정민경, 영업부 현승현)을 만났습니다. 저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위드오 사람들에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소비할 목적으로 커피를 추출해 보관하는 것과 상업적인 목적으로 더치 커피를 제조·유통하는 것의 차이는 집에서 반창고를 붙이는 일과 외과 수술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현장의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을 리 없지요. 감탄스럽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겁니다.


 부스를 나서면서 한 생각은 "어떻게 하면 리뷰 의뢰 받았다는 자랑을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하고, 위드오의 유기농 더치 커피를 홍보인 듯 홍보 아닌 듯 홍보할 수 있을까?"였는데… 방법이 없더군요. 그래서 그냥 리뷰를 쓰기로 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파워블로거는 못 될 것 같아요(ㅋㅋㅋㅋㅋㅋ).




 더치 커피는 프리미엄 마케팅이 어울리는 제품입니다. 원두가 많이 들어가고 생산성이 낮으니, 비싸게 팔아서 수익성을 확보해야겠지요. 작은 규모로 시작하기 쉬운 사업이기도 합니다. 창고 하나에 추출기 몇 대 가져다 놓고 원두 갈아 넣고 물 붓고 커피 받아서 병입하면 되거든요. 진입장벽이 낮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지기도 쉽습니다. 작은 규모로 시작하기 쉬운 걸 보고 들어온 사람들이니 R&D에 투자해 품질로 승부하기보다는 원가절감과 가격경쟁을 통해 살아남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러니까,


 프리미엄 마케팅이 어울리는 제품을 두고 영세 업체 여럿이 가격경쟁을 하는 모순된 일이 더치 커피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더치 커피의 가격을 낮출 여지는 많지 않습니다. 가격을 낮추어 마진율이 낮아지면 판매량이 늘어야 예전처럼 이익을 낼 수 있는데, 판매량을 늘리려면 생산량도 늘어야 하고, 그러자면 시설과 인력을 확충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가격을 낮출 여지가 많지 않고, 비싸고, 많이 팔리지도 않는다는 것.[각주:6] 이것이 더치 커피라는 상품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제 생각엔 말이지요.


 더치 커피가 많이 팔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더치 커피를 내가 마시려고 사는 경우보다 선물용으로 사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일 겁니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좋기만 한 게 아닙니다. 선물용으로 팔린다면, 우리 회사의 더치 커피는 다른 회사의 더치 커피뿐만 아니라 비슷한 가격대의 온갖 잡화들—향수, 파우치, 머그컵, 초콜릿, 과일, 롤케이크, 과일주스 따위와도 경쟁을 해야 한다는 소리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매출을 늘리려면 '커피 그 자체로서의 가치'보다 '선물로서의 가치'를 어필하는 게 오히려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커피의 와인' 같은 수식어를 동원하고, 고급스러운 병에 담아서 그럴듯한 상자에 넣어주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테고요.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술이겠지만, 더치 커피가 와인을 닮아갈수록 실제 소비자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750mL병에 담긴 아주 진한 커피는, 한 번에 50mL씩 마신다 해도 15회에 걸쳐 소비해야 합니다. 나 혼자 마신다면 병뚜껑을 한 번 따고 1~2주 내내 마셔야겠지요. 드립 커피를 마시고 싶은 날에도 의무적으로 소비해야 하고요. 냉장고에 있는 한 솥의 곰국이 나를 요리의 귀찮음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동시에 메뉴 선택의 자유를 제약하듯이, 대용량의 더치 커피도 나를 제약합니다. 제약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더치 커피 쪽으로는 손도 가지 않겠지요.


 실제 소비자에게는 작은 용량의 더치 커피가 부담이 없어 좋습니다. 위드오에서 판매하는 50mL 용량의 더치 커피는 딱 1회분이고, 핸디엄(Handium)에서 판매하는 RTD(Ready-to-Drink) 더치 커피인 '더치 커피 워터'는 음료수 사 마시듯 소비할 수 있는 1회분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용량은 400mL, 커피추출액 20%를 함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 마시듯 더치 커피를 사 마실 수 있다면 1회분 용량의 더치 커피도 상품성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①선물용으로 쓰기엔 와인병 정도의 크기는 되어야 하니까, ②인터넷 주문을 하자면 1~2만원 정도는 되어야 배송비가 아깝지 않으니까(혹은 2~3만원 정도는 되어야 무료배송이 되니까) 대용량의 더치 커피가 훨씬 더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유통 문제만 해결된다면 실제 소비자에게 부담이 없는 작은 용량의 더치 커피가 흔해질 텐데…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핸디엄은 짧은 유통기한(45일이라고 합니다)의 '더치 커피 워터'를 유통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으며, 위드오 또한 오프라인 유통망을 구축·확장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연락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witho.co.kr/)




 서론이 길었네요. 위드오에서 보내온 택배 상자를 개봉한 그 순간부터 저는 더치 커피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뷰를 작성할 때도 '더치 커피의 포지션과 상품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고요. 소비자로서 던질 수 있는 "내가 커피를 마실 때 (갓 내린 커피나 인스턴트 커피가 아닌) 더치 커피를 마셔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더치 커피는 어떤 상황에서 유용할까?"와 같은 질문은 더치 커피의 포지션과 상품성에도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소비자 입장에서 더치 커피가 아닌 기성품 중 고려할 만한 제품이 두 가지 있습니다. 프리미엄 캔커피(칸타타, TOP등)와 프리미엄 스틱커피(카누, 루카, 네스카페 수프리모 크레마 등)죠. 더치 커피는 인터넷에서 주문하거나 특정 취급점에 방문해야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성이 좋지 않고, 가격 대비 좋은 맛을 내는 프리미엄 스틱커피(그 중에서도 특히 네스카페 수프리모 크레마)보다 비싸서 손이 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낮은 접근성과 비교적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더치 커피를 구입하기로 마음을 먹으려면, 더치 커피가 아니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겁니다.


 프리미엄 캔커피와 프리미엄 스틱커피가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프리미엄 캔커피는 '원두로 내린 커피'(드립 커피, 아메리카노 등)에 익숙한 커피 애호가의 입맛을 충족하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지요. 프리미엄 스틱커피는 차가운 물에 탔을 때 온전한 맛이 나지 않고[각주:7], 네스카페 수프리모 크레마의 산미는 우유를 섞으면 쉽게 덮입니다.


 더치 커피가 강점을 보일 수 있는 영역이 바로 여깁니다. 얼음 그리고/또는 찬물과 섞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우유와 섞은 '라테'류(바른 말로 하면 커피우유) 레시피를 만들기 좋고, 맥주와 섞거나 아이스크림에 살짝 끼얹기에도 좋습니다. 더치 커피는 (미분을 사용하는 프리미엄 스틱커피와는 달리) 이미 추출이 완료된 커피라 얼음/찬물과 섞어도 무방하고, 산미가 아닌 다른 향미에 강점이 있어 우유를 뚫고 올라올 수 있고, (뜨거운 커피와 달리) 맥주를 미지근하게 만들거나 아이스크림을 녹이지 않습니다.


 더치 커피는 일일이 커피를 추출할 시간이 없지만 프리미엄 캔커피나 프리미엄 스틱커피에 만족하지 못하는 커피 애호가(주로 직장인이겠지요)에게도 어필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너무 무난해서 '칸타타 맛', '카누 맛'이 난다면 안 될 겁니다. 카누 맛이 나는 더치 커피를 사 마시느니 그냥 카누를 사 마실 사람이 대부분일 테니까요. 그러니까 더치 커피에서는 '원두로 내린 커피다운 맛', '조금은 독특한 맛'이 나야 뭔가 해볼 수 있는 겁니다. 위드오 유기농 더치 커피 3종은 이 두 조건을 충족합니다. 원두커피의 느낌이 충분하고, 맛이 평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치 커피는 (당연히) 원두로 추출하는 커피이기 때문에 각 원두의 특성을 많이 물려받습니다. 각 원두의 특성은 제가 예전에 올린 리뷰에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1. 게마드로① : 10월 20일 리뷰

 1-2. 게마드로② : 11월 27일 리뷰

 2. 구마르 : 12월 1일 리뷰

 3. 베베카 : 12월 4일 리뷰


 더치 커피는 뜨겁지 않은 물로 추출하는 진한 커피입니다. 이 때문에 각 원두의 특성 중 비교적 자극성이 강한 특성이 부각됩니다.


 게마드로 : 내추럴 특유의 다소 쏘는 듯한 향이 강조됩니다.

 구마르 : 풀 같은 쌉쌀함, 조금 쏘는 특이한 향(smoky, ashy)이 강조됩니다.

 베베카 : 다크초콜릿 같은 맛과 꽃을 닮은 aroma, 와인의 느낌이 강조됩니다.


 이러한 자극성 때문에 원액을 그대로 마시기는 부담스럽습니다. 물이나 우유 등에 희석해서 마시는 것이 좋지요. 물에 희석하면 자극성이 줄어들어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바디감은 좀 줄어듭니다), 향미와 뒷맛, 균형감, 달콤함은 유지되어 좋습니다. 뜨거운 물로 희석하면 고소함, 달콤함과 같은 특성이 찬물로 희석했을 때보다 좀 더 강하게 드러나는 편입니다. 우유와 섞으면 게마드로는 "달달", 구마르는 "쌉쌀", 베베카는 "달콤쌉쌀"한 맛이 납니다.


 구마르는 쌉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기에 좋습니다. 베베카는 우유와 섞었을 때 부드럽고 달콤한 특성이 잘 살아나서 좋았고, 약간의 쌉쌀함도 나타나서 균형감이 좋았습니다. 게마드로는 우유와 섞어 마셔도 좋고(비율은 더치1:우유2 정도가 입에 맞았습니다), 뜨거운 물, 두유, 설탕, 약간의 물엿을 섞어 맥심맛 커피(…)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각주:8]




 4편의 글을 계획하면서 쓰고자 했던 내용은 대체로 담아낸 것 같습니다. 이쯤이면 글을 마무리지어도 되겠다 싶네요. 지금까지 올린 리뷰 중에 이 글이 가장 긴 것 같은데, 백스페이스의 응징을 받기 전에(ㅋㅋㅋㅋ)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커피 애호가로서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모두 짜내어 리뷰를 진행했고, 리뷰를 마친 지금은 뿌듯하고 후련합니다. 이 경험은 앞으로의 커피 생활에 큰 자산이 되어줄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새 포스팅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각주


  1. 호기성 세균에 한해서입니다. [본문으로]
  2. 퀵다운(quick down, 급랭急冷 처리)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뚜껑을 열면 공기가 들어가면서, '딱' 소리와 함께 병이 펴집니다. [본문으로]
  3. 탄수화물 등. [본문으로]
  4. 뜨겁지 않은 물로 추출하는 더치 커피의 특성상, 휘발성이 특히 강한 향미 성분이 가열 과정에서 날아가기 쉬울 겁니다. [본문으로]
  5. 제가 아는 한 이런 살균법이 커피 생산 과정에 적용된 적이 없습니다. 선례가 없는 일을 처음 시도한다면,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으로]
  6. 우리 나라의 커피 시장 규모가 6조원인데, 그 중 4조원이 맥심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2조원 중에서 프렌치카페가 얼마를 가져가고, 카누가, 스타벅스가, 엔제리너스가… 그렇게 다들 얼마씩 가져가고 나면 통계에서 '기타'로 처리되는 작은 시장이 남습니다. 그 시장의 일부가 더치 커피의 몫입니다. [본문으로]
  7. 프리미엄 스틱커피에 들어 있는 커피 미분은 뜨거운 물에 닿아야 그 성분이 우러납니다. 찬물에 프리미엄 스틱커피를 타면 그 안의 미분은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본문으로]
  8. [뜨거운 물 2]:[두유 2]:[더치 1] 정도의 비율로 액체를 섞고 설탕과 물엿의 양을 잘 맞추면 가끔 맛 좋은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가 재현되는데, 아직 황금비율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참고로, 맥심 화이트골드를 엉뚱한 곳에서 맛보고 싶다면 스타벅스에서 마롱 라테를 주문한 다음 휘핑크림 부분만 재빨리 드세요. 맛 좋은 맥심 화이트골드가 남습니다.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