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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가지 당류를 비교분석한 <건강을 위한 감미료는 없다>를 작성하면서 설탕(자당)이 생각보다 괜찮은 당류임을 알게 되었고[각주:1], 지금까지 먹어본 적 없는 종류의 설탕인 비정제 설탕을 먹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비정제 설탕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적은 양을 구입하기에는 배송료가 아깝고 많이 사서 쟁여놓자니 너무 오래 두고 먹게 생겨서 인터넷 주문을 하기엔 좀 애매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4 카페&베이커리 페어에 설치된 트라덱글로벌 부스에서 콜롬비아 유기농 비정제 설탕을 발견했고, 곧바로 구입했습니다.


 사람들이 황설탕과 흑설탕을 구입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제가 덜/안 되어 있어 몸에 좋을 것이라 믿기 때문일 겁니다. 정제 과정에서 (원재료에 있던) 무기질이 손실되기 때문이죠. 이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입니다만, 머스커바도의 자당 함량은 92%쯤 되기 때문에 한 티스푼의 머스커바도에 들어 있는 무기질은 0.4g 정도에 불과합니다.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인에게 크게 의미있는 수치는 아니죠.


 어쩌면 영양분(무기질)보다는 고유의 풍미가, 정제를 덜/안 한 설탕이 지닌 더 큰 매력일 겁니다. 몰라시스나 머스커바도의 풍미는 꿀이나 캐러멜로 흉내낼 수 없으니까요.


 여기서 잠깐 머스커바도(muscovado)와 몰라시스(molasses)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최대한 간단히 설명하자면—


 원재료(원당, 原糖) = 머스커바도 + 몰라시스


 입니다. 머스커바도를 정제하면 백설탕이 되는데, 원재료에서 머스커바도를 추출하는 과정[각주:2] 또한 '정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머스커바도는 '비정제'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몰라시스(당밀, 糖蜜)는 설탕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이기 때문에 '설탕'이 아니고, 정제 과정에서 얻은 부산물이니 '비정제'라고 부르기도 어렵습니다. 머스커바도나 몰라시스를 '비정제 설탕'으로 칭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만 "백설탕처럼 정제하지 않은"[각주:3] 감미료라는 의미로 '비정제 설탕'이라는 표현이 널리 퍼져버린 게 현실입니다.


 머스커바도는 원래 흑설탕처럼 생긴 덩어리입니다. 몰라시스(당밀)는 액체 상태고요. 그런데 머스커바도의 별명이 'molasses sugar', 즉 '몰라시스 설탕'이어서 흑설탕처럼 생긴 덩어리를 그냥 '몰라시스'라 부르기도 하고('빌링톤 몰라시스 비정제 설탕'은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황설탕처럼 밝은 빛깔의 저(低)정제 설탕을 '마스코바도'[각주:4]라 부르기도 하죠. 그래서 참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트라덱글로벌 부스에서 구입한 콜롬비아 유기농 비정제 설탕(사실상, 低정제 설탕)은 황설탕처럼 밝은 빛깔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설탕으로 시럽과 설탕절임을 만들었습니다. 시럽을 만들면(물과 설탕을 1:1 비율로 섞어 젓지 않고 끓인 다음, 약한 불로 졸였습니다) 상당히 짙은 빛깔이 나는 게 인상적이었고, 설탕절임을 만들면 깔끔한 맛이 났습니다. 고유의 풍미는 약한 편입니다. 풍미는 청정원의 "유기농 흑설탕"(생긴 건 황설탕에 가깝습니다)이 트라덱글로벌의 콜롬비아 유기농 비정제 설탕보다 강했고, 초콜릿을 닮은 아주 강한 향을 내뿜던 빌링톤 몰라시스 설탕과는 그 양과 질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였으니까요.


 고유의 풍미가 약한 편이기 때문에, 커피에 넣는 감미료로서 갖는 특징은 백설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메이플시럽도 커피의 맛과 향을 뚫고 올라오지 못하는데, 저(低)정제 설탕의 약한 풍미는 말할 것도 없지요. 설탕절임은… 글쎄요. 결과 자체는 괜찮았지만, 이 쪽도 고유의 풍미가 드러난다고는 하기 어려웠습니다.


 900g(300g×3봉)에 5천 원이라는 구입가격은 괜찮은 편이었고, 이것으로 만든 시럽의 짙은 빛깔이 주는 시각적인 만족감(플레인 요거트 위에 뿌리면 꽤 그럴싸한 빛깔이 나옵니다)이 좋아서, 그럭저럭 만족스러웠습니다. 아름다운가게의 마스코바도나 빌링톤의 라이트/다크 머스코바도 같은 '비정제 설탕'들도 한 번 맛보고 싶어지네요.




 각주


  1. 물론 적당량을 사용할 때 괜찮다는 이야기입니다. 저 글에서 비교분석한 포도당, 과당, 자당, 액상과당, 맥아당, 자일로스, 올리고당 중 마음놓고 듬뿍듬뿍 먹어도 되는 감미료는 없기 때문에, '적당량을 사용한다면'은 아주 현실적인 단서조항입니다. [본문으로]
  2. 불용성 물질 제거, 증류, 원심분리 등. [본문으로]
  3. 참고로 '백설탕처럼 정제하지 않았으니까 비정제 설탕'이라는 논리에는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가 들어있습니다. [본문으로]
  4. 참고로 muscovado는 포르투갈어 mascavado에서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스코바도'라는 표기가 눈에 자주 띕니다. 하지만 muscovado의 발음기호는 [ˌmʌskəˈvɑːdəʊ](Oxford Dictionaries), [ˌməskəˈvā(ˌ)dō, -vä(ˌ)-](Merriam-Webster online)이고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한글 표기는 "머스커바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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