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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있던 플라스틱 전기주전자의 내부에 자꾸 까만 것이 더덕더덕 달라붙어서 새 전기주전자를 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별 방법을 다 써도 떼어낼 수 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만 것이 거슬려서요. 처음에는 모험심이 발동하여 국내 중소기업 회사의 전기주전자를 구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기분이 틀어지는 일이 발생하고—배송 문제였습니다—오프라인 매장에 찾아가서 필립스나 테팔 같은 무난한 회사의 무난한 물건을 사서 들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매장에서 저의 눈을 끈 것은 테팔 수비토였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전기주전자였고, 붉은 색이 상당히 예뻤거든요. 그리고 세일중이었습니다(ㅋㅋㅋㅋㅋㅋ). 소비전력을 보니 2000W 이상… 왠만큼 신경써서 만들었다면 물은 빨리 끓겠네 싶어 곧장 사 왔습니다.




 테팔 수비토 전기주전자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물이 빨리 끓습니다.

 500mL의 물을 약 2분 만에 끓입니다.


 '약 2분'은 1차 실험(2:01), 2차 실험(1:59), 3차 실험(1:59)의 평균값입니다. 물 500mL를 부어서 주전자를 작동시킨 순간, 다 끓고 나서 스위치가 자동으로 끊어지는 순간까지의 시간을 재었습니다. 물을 끓이기 전 적어도 30분 이상 주전자를 방치해 주전자 온도를 실온으로 맞추었습니다(주전자가 아직 뜨거울 때 찬물을 붓고 물을 끓인다면, 평소보다 빠르게 끓게 될 테니까요). 실험은 실내에서 진행되었고, 물은 겨울철의 찬 수돗물을 사용하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실험결과는 해당 제품에 한합니다.


 가정용 전기주전자로 500mL의 물을 2분 만에 끓이면 상당히 성능이 좋은 편에 속합니다. 예전에 보았던 잡지에 전기주전자 비교 기사가 실린 적이 있는데, 2분 초반대가 성능이 좋은 편에 속하고, 2분 후반대에서 3분이 나쁜 편에 속했거든요. 열효율이 고만고만하다면 물 끓이는 속도는 결국 소비전력이 좌우할 수밖에 없겠지요. 왠만큼 신경써서 만들었다면, 2000W정도면 충분합니다.


 2. 스테인리스 스틸로 되어 있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제품을 선호하는 분들의 마음에 들 겁니다.


 3. 생각보다는 무겁지 않습니다.

 무게중심도 무난히 잡힌 편이어서, 다루기 무난합니다.


 4. 예쁩니다.

 붉은 색 모델이 상당히 예쁩니다. 채점용 색연필에 가까운 빨강인데, 형광빨강보다는 어둡고 와인(burgundy)보다는 밝은 색입니다.




 테팔 수비토 전기주전자의 단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눈금이 무성의합니다.

 눈금은 딱 세 개, 0.8L(min), 1.2L, 1.7L(max)입니다. 정확한 양의 물을 끓이고 싶다면 주전자의 눈금이나 눈대중에 의존하기보다는 계량컵으로 양을 재서 붓는 게 편합니다. 귀찮은 일이죠. 주전자 안쪽에 촘촘하게 100mL 단위로 눈금을 그어 놓은 모델도 있는데… 좀 아쉽습니다. 게다가 설명서에는 "최대 수위 표시를 넘거나 최소 수위 표시가 안 되게 내용물을 채우지 마십시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0.8L보다 적은 양의 물을 끓이는 것은 제조사가 권장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물론 신경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2. 주전자 밑바닥에 물이 고입니다.

 주전자 밑바닥(열판 주변)에 홈이 파인 구조여서, 주전자를 잘 기울여 물을 따라내도 1~2큰술(15~30mL)정도의 물은 바닥에 고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전자를 완전히 말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귀찮고, 정확한 양의 끓는 물을 부어야 하는 상황에서 주전자가 물을 먹으니 짜증이 납니다.


 3. 주전자 몸통의 마무리가 완벽하지 못합니다.

 주전자 몸통의, 뚜껑과 맞닿는 쪽 테두리가 조금 날카롭습니다. 라운딩 처리가 완벽하지 않은 것이죠. 손으로 만져 보면 서걱서걱한 느낌이 듭니다. 손을 베지 않게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4. 뚜껑 여는 버튼이 없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뚜껑이 열리는 반자동 뚜껑이 일반적인데, 수비토는 수동식 뚜껑입니다. 좀 귀찮고… 가끔 뚜껑 여는 손 위로 뜨거운 물방울이 튑니다. 뚜껑을 열 때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5. 뚜껑에서 플라스틱 냄새가 납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주전자로 끓인 물에서는 플라스틱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6. 주전자를 전기 받침대 위에 올려놓으면 험(hum) 노이즈 같은 잡음이 들립니다.

 물을 끓이기 시작하면 잡음이 멈추고, 물이 다 끓어 스위치가 자동으로 끊어지고 난 뒤에는 잡음이 나지 않는데, 주전자를 전기 받침대 위에 (처음으로) 올려놓으면 이상하게 잡음이 납니다. 제가 받은 물건의 절연 상태가 좋지 않은 건지, 설계에 문제가 있는 건지… 물을 끓이지 않을 때는 주전자를 전기 받침대에 올려놓지 않는 것으로 대처하고 있습니다.




 이 제품의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1.7L, KI140FKR

 JU07898-12003A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AC 220-240V, 50/60Hz, 2000-2400W

 Zhejiang Shaoxing Supor Domestic Electrical Appliance Co., Ltd.


 시중에서 판매되는 거의 모든 전기주전자는 중국에서 제조됩니다. 필립스든 테팔이든 보국전자든 신일전자든 인증번호를 검색해서 제조사 이름을 확인하면 중국 회사입니다. 어지간한 가격대에서는 중국산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잘 만든 중국산, 대충 만든 중국산, 대충 만들고 브랜드로 팔아먹는 중국산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이 주전자의 청소 요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상적인 세척

  본체 : 물을 적신 스폰지로 세척합니다. 수세미는 안 됩니다. 전기 연결부 등에 물이 닿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필터 : 흐르는 수돗물로 헹구고, 마르고 나면 가볍게 솔질합니다.


 2) 물때 제거

  본체 : 식초 또는 구연산을 사용하여 물때를 제거하고 5~6번 헹굽니다. (식초를 사용할 때는 식초와 물을 혼합하여 주전자 안에 채우고, 가열하지 않은 상태로 1시간 동안 방치합니다. 구연산을 사용할 때는, 물 1/2리터를 끓이고 구연산 25g을 첨가한 다음, 15분 동안 방치합니다)

  필터 : 식초 또는 구연산(희석액)에 적시고 헹굽니다.




 3개월 정도 사용한 소감은, "5만원 정도 하는 스테인리스 스틸 전기주전자가 이 정도면 괜찮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전에 쓰던 주전자의, 까만 것이 내부에 더덕더덕 달라붙는 문제가 없어서 정말 마음에 들고 물이 빨리 끓어서 좋고 생김새가 예뻐서 좋습니다.


 주전자 밑바닥에 물이 고이기 때문에, 완전히 마른 상태의 전기주전자에 물을 붓고 끓이면 주전자에 넣은 물의 양보다 끓인 다음 따라낸 물의 양이 1~2큰술(15~30mL) 적은 문제, 이른바 주전자가 물을 먹는 문제는 이렇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주전자에 약간의 물을 넣었다가 따라버린 다음, 원하는 양의 물을 계량해서 주전자에 넣으면 됩니다.


 0. 완전히 마른 상태의 전기주전자

 1-1. (약간의 물)을 주전자에 붓는다.

  … 주전자 안에는 (약간의 물)이 있다.

 1-2.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따라낸다.

  … [(약간의 물)-(주전자가 먹는 물)]이 주전자 밖으로 나온다.

  … 주전자 안에는 (주전자가 먹은 물)이 있다.

 2-1. (원하는 양의 물)을 붓는다.

  … 주전자 안에는 [(주전자가 먹은 물)+(원하는 양의 물)]이 있다.

 2-2. 주전자를 기울여 물을 따라낸다.

  … [(주전자가 먹은 물)+(원하는 양의 물)-(주전자가 먹는 물)]≒(원하는 양의 물)이 나온다.

  … 주전자 안에는 (주전자가 먹은 물)이 있다.


 커피를 추출할 때는 어차피 잔을 예열해야 하니, 예열하는 데 쓸 물을 먼저 끓여 붓고, 커피를 추출하는 데 쓸 물을 나중에 끓이면 거의 오차 없이 원하는 양의 끓는 물을 부을 수 있게 됩니다. 1인분의 파보일드 커피를 끓일 때는 1~2큰술의 오차도 커피의 농도에 제법 영향을 주기 때문에 처음에는 물의 양을 맞추느라 고생을 좀 했는데, 이러한 방법을 알고 난 뒤로는 큰 불편함 없이 커피를 추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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