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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립 커피는 참으로 심오한 세계입니다. 포스팅 하나에 그 내용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복잡한 추출법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추출법에 대한 포스팅은 먼 훗날로 미루고, 드립 커피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인, 드립 커피 배우기입니다. 주제의 성격 상, 이 글은 커피 입문자 혹은 드립 커피 입문자를 위한 글이 될 것입니다.



 드립 커피 배우기에 대한 내용을 적기 전에, 드립 커피라는 추출법은 대략 어떤 추출법이고 이 글에서 다룰 드립 커피의 범위는 어느 정도인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드립 커피를 내리는 방법은 크게 푸어오버 방식과 일본식 정드립의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하리오 드리퍼를 사용하므로, 이 글에서 다루게 될 드립 커피는 하리오 드리퍼를 사용한 푸어오버와 정드립(그 중에서도 나선형 드립)이 될 것입니다.


 1. 푸어오버

  1) 약 20g의 원두를 투입하여 240~300mL의 커피를 추출합니다.

  2) 다소 가늘게 분쇄한 원두를 사용하여 빠르게 추출합니다. 추출 시간은 약 2분.

  3) 난류가 일어나 원두가 떠다니며 뒤섞이도록 물을 콸콸 붓습니다.

  4) 정드립보다 연한 커피가 추출됩니다. (원두 투입량과 커피 추출량이 같을 때)

  5) 결과물의 편차가 적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2. 정드립

  1) 약 20g의 원두를 투입하여 240~300mL의 커피를 추출합니다.

  2) 다소 굵게 분쇄한 원두를 사용하여 느리게 추출합니다. 추출 시간은 약 3분.

  3) 난류가 일어나지 않도록 물을 살살 붓습니다.

  4) 푸어오버보다 진한 커피가 추출됩니다. (원두 투입량과 커피 추출량이 같을 때)

  5) 결과물의 편차가 큽니다. (대성공하면 아주 맛있고, 대실패하면 정말 맛없습니다)


 원두 투입량과 커피 추출량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제가 수강한 커피교실에서는 20g의 원두를 투입하여 240~300mL의 커피를 추출하는 조합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생각건대 이 정도가 초보자에게 가장 무난한 조합이어서 자주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취미생활 내지 교양 수준의 커피교실에서 가르치는 추출법은 대개 드립 커피입니다. 1~2시간 안에 간단한 이론 설명과 강사의 시연, 학습자의 실습까지 소화해낼 수 있는 추출법이 드립 커피여서 그렇습니다. 프렌치프레스는 '커피교실'의 외관을 갖추기 힘들고[각주:6], 에스프레소는 교육환경을 마련하기 힘들어서[각주:7] 탈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모카포트와 드립 커피 정도가 남는데, 열원을 필요로 하는 모카포트보다는 뜨거운 물만 있으면 되는 드립 커피가 수업을 진행하기는 훨씬 간편합니다. 생각건대 칼리타, 하리오, 고노 드립이 모두 들어가는 4주짜리 취미·교양 커피교실을 비교적 쉽게 구경할 수 있는 이유는 각 드리퍼의 개성이 또렷해서 전부 배울 가치가 높아서라기보다는[각주:8], 드립 모카포트 프렌치프레스 하는 식으로 추출 도구를 바꿔가며 4주 수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드리퍼만 바꿔가며 4주를 때우는 쪽이 훨씬 편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문제는 전술한 취미·교양 커피교실 강사의 상당수는 바리스타고, 그 바리스타의 대부분은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는 종류의 드리퍼에 한해서 프로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각주:9] 하리오 스페셜리스트가 고노 점드립을 가르치는 건 경제학 교수가 재무관리를 가르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교수는 맞는데, 교수 수준의 재무관리 강의를 기대하기는 곤란한 상황이죠. 한 자리에서 5년 이상 버텨낸 드립 커피 전문 카페의 사장, 즉 오너 바리스타의 직강[각주:10] 정도가 아닌 이상, 한 명의 바리스타가 여러 가지 드리퍼의 사용법을 가르치는 식의 수업은 수박 겉핥기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최근 드립 커피 업계의 대세는 하리오 푸어오버입니다. 맛의 일관성[각주:11]을 유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맛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쉽다는 건, A바리스타가 내린 커피와 B바리스타가 내린 커피의 맛이 거의 같고 A바리스타가 내린 각각의 커피 a1, a2, a3…의 맛 또한 거의 같으며 B바리스타가 내린 각각의 커피 b1, b2, b3…의 맛 또한 거의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쉬움을 의미합니다.


 카페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커피의 맛을 약간 희생하더라도 맛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쪽을 선호하게 마련입니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M=10에 σ=2[각주:12]보다는 M=8에 σ=0.25[각주:13]쪽이 낫다는 것이죠. 이런 일은 카페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요식업이 운영되는 방식 또한 이와 같습니다.[각주:14]


 그래서 저는 하리오 드립, 특히 하리오 푸어오버를 가르치는 1일 커피교실로 드립 커피를 시작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일단 수강료가 싸서 좋고[각주:15],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각주:16]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일 커피교실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사전지식으로 무장을 단단히 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다음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각주


  1. 투입하는 원두의 양이 줄어들면 추출이 빨라지고, 물줄기를 굵게 하여 드리퍼에 머무는 물의 양이 늘어나 수압이 올라가면 추출이 빨라집니다. 원두 10g에 커피 120~150mL 조합이면 물을 조금만 많이 부어도 추출이 지나치게 빨라집니다. [본문으로]
  2. 주둥이가 좁은 드립포트로 물줄기를 내리꽂는다면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다만 원두 투입량과 커피 추출량이 달라지면 이 방법은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에, 기술을 연마할 가치가 크지 않을 뿐이죠. [본문으로]
  3. 하리오용 종이 필터는 300mL정도까지는 물빠짐이 양호하지만 400~500mL쯤 되면 물빠짐이 불량해져 필터를 통과하는 커피가 거의 없어지고 드리퍼에 물이 고이게 됩니다.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면 말이죠) [본문으로]
  4. 완전히 막히는 건 아닙니다. 물빠짐이 불량해져도 방울방울 커피가 내려오긴 하는데, 3분 내에 추출을 마쳐야 하는 상황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을 만큼 미미하기 때문에 막힌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본문으로]
  5. 원두 가루 덩어리 전체에서 추출이 골고루 일어나지 않고, 어느 지점에서는 과다추출이 다른 지점에서는 과소추출이 일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되면 바람직한 향미는 묽어지고 잡맛과 잡내가 늘어납니다. [본문으로]
  6. 이론이랄 것도 거의 없고, 시연할 내용도 간단하고, 학습자가 금방 따라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수업을 진행하면 30분 안에 이론 설명과 시연-실습 1순환을 마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너무 쉽게 끝나버리면 뭘 배웠다는 느낌이 들기 어렵습니다. (학습자가 성취감을 느끼려면, 과제의 난이도가 적당해야 하죠. 프렌치프레스는 너무 쉬운 과제입니다) [본문으로]
  7. 상업용 에스프레소 머신은 비싸고, 유지보수를 필요로 하며, 에스프레소 교육 전용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취미·교양 커피교실을 위해 이 정도 투자를 할 수 있는 카페는 흔치 않습니다. [본문으로]
  8. 물론 각 드리퍼의 개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칼리타, 하리오, 고노를 간단히 비교하면 칼리타는 비교적 표준적인 물빠짐과 표준적인 향미, 하리오는 빠른 물빠짐과 깔끔한 향미(묽을 수도 있습니다), 고노는 느린 물빠짐과 진한 향미(잡맛이 날 수도 있습니다) 정도로 요약됩니다. 그러나 칼리타, 하리오, 고노의 개성은 '드립 커피'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묶을 수 있을 정도의 제한된 개성이고, 모카포트, 프렌치프레스, 에스프레소 같은 다른 추출법과 비교할 수 있을 만큼 확연하지는 않습니다. [본문으로]
  9. 수업을 진행하는 3명의 바리스타가 각각 칼리타 스페셜리스트, 하리오 스페셜리스트, 고노 스페셜리스트고 그들이 번갈아가며 수업을 진행하는 건 꿈에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이런 식으로 바리스타 라인업을 짜서 시스템을 돌릴 수 있는 카페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칼리타 스페셜리스트가 오프인 날이나 시간대에는 칼리타 커피를 제공할 수 없고, 칼리타 스페셜리스트가 카페를 그만두면 후임 바리스타를 구하기 전까지 칼리타는 봉인됩니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면 특화분야별로 수 명씩 바리스타를 두어야 하고, 바리스타 십여 명을 고용하려면 건물 2~3층을 통째로 쓰는 대형 카페는 되어야 가능합니다. 건물 2~3층을 통째로 쓰는 대형 카페는 생산성을 위해 에스프레소와 배리에이션 커피를 주력으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드립 커피는 곁가지로 밀려나게 됩니다. 곁가지 메뉴의 스페셜리스트를 십여 명씩 고용할 카페는 없죠. 그래서 칼리타/하리오/고노 스페셜리스트로 라인업을 짠 카페를 구경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드립 커피를 주력으로 내세운 카페는 모든 직원이 칼리타/하리오/고노를 골고루 다룰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운영되거나, 드리퍼를 한 가지로 통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본문으로]
  10. 이러한 오너 바리스타가 가게에서 여러 종류의 드리퍼를 모두 다룬다면,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종류의 드리퍼를 가르치더라도) 연륜으로 커버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11. 이른바 (일본식) 정드립은 '손맛'을 타기 때문에, 매뉴얼을 준수하며 커피를 내려도 누가 내리느냐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특정 바리스타가 내려준 커피를 찾는 단골만 따로 생기기도 합니다. (낭만적이라고요? 그 바리스타가 카페를 그만두면 가게는 그 바리스타가 내려준 커피를 찾던 단골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맛이 표준화되었다면 잃어버리지 않았을 단골을요) 카페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 아니죠. 이 때문에 손맛을 거의 타지 않는 하리오 푸어오버로 갈아타는 카페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12. 이런 경우, (정규분포를 이룬다는 가정 하에) 신뢰수준 95%에서 커피 맛은 6.08~13.92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됩니다. [본문으로]
  13. 이런 경우, (정규분포를 이룬다는 가정 하에) 신뢰수준 95%에서 커피 맛은 7.51~8.49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됩니다. [본문으로]
  14. 자주 다니는 카페의 평균적인 맛을 기억을 바탕으로 통계 내어 '이 카페의 커피 맛은 M=10이니, M=8인 옆 카페보다 낫군' 하며 호평하는 손님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손님은 M=10에 σ=2일 때 11, 12, 13쯤 되는 커피가 나오면 그게 정상인 줄 알고, 6, 7, 8쯤 되는 커피가 나오면 '오늘 커피는 왜 맛이 이래?' 하는 반응을 보이게 마련입니다. 한두 번의 실망이 좋은 기억 여럿을 지우는 경우는 꽤 흔하기 때문에, 평균이 높아도 편차가 크면 실익이 없습니다. [본문으로]
  15. 대부분의 1일 커피교실은 무료로, 혹은 재료비 수준의 돈(많은 경우, 1만원)만 내면 수강할 수 있습니다. 4강에 20만원(따라서, 1강에 5만원) 정도 하는 커피교실보다 훨씬 저렴하죠. [본문으로]
  16. 많은 경우, 1시간~1시간 30분 정도입니다. 사전지식으로 무장을 단단히 하면 1시간은 조금 숨차게, 1시간 30분은 조금 여유롭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사전지식이 있어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1일 커피교실은 일반적인 수업보다는 워크숍이나 세미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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