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야쿠르트에서 커피가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몇 달 전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동네 야쿠르트 아줌마의 카트 위에 놓인 그 제품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메리카노만 집어들었다가 2종을 사면 블로그에 리뷰를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카페 라테까지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콜드브루 by 바빈스키 2종—이 제품이 내건 바빈스키는 2015 US 바리스타 챔피언의 이름, 찰스 바빈스키입니다(저에게 바빈스키는 발바닥을 건드렸을 때 발가락을 활짝 편 다음 구부리는 바빈스키 반사로 익숙한 이름입니다만, 아기 발바닥과 관련된 원시 반사를 커피 제품 이름으로 붙였을 리는 없겠지요).


 각 제품의 성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콜드브루 by 바빈스키 아메리카노

 커피추출액 A 6.936% [ 고형분 20% 이상 (에티오피아 40%, 콜롬비아 30%, 브라질 20%) ]

 용량 270mL, 카페인 130mg, 열량 10kcal


 콜드브루 by 바빈스키 카페라떼

 커피추출액 L 4.85% [ 고형분 20% 이상 (에티오피아 40%, 콜롬비아 30%, 브라질 30%) ]

 원유 49.35%

 용량 270mL, 카페인 96mg, 열량 100kcal


 콜드브루 by 바빈스키 2종은 로스팅한 원두를 3일간 숙성시킨 다음 추출을 하고, 로스팅 후 10일(따라서, 추출 후 7일)까지만 유통하는 대단히 혁신적인 제품입니다. 생산시설과 소매유통망(그것도 유통기한이 매우 짧은 유제품을 오랜 시간 판매해온, 검증된 소매유통망)을 모두 보유한 한국야쿠르트가 아니면 기획 단계도 통과 못 할 제품입니다. RTD 커피 제품의 유통기한을 생산 후 7일로 잡은 한국야쿠르트의 패기와, 실제로 그 기한 안에 유통을 해내는 한국야쿠르트의 유능함에는 경의를 표할 만합니다.


 야쿠르트 전단지에는 로스팅 후 3일간은 '커피가 숙성되는 시간', 3일 후부터 10일까지는 '최상의 풍미를 간직하는 시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문제는, 3일 후부터 10일까지 최상의 풍미를 간직하는 건 로스팅된 원두이지, 추출이 완료된 커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추출이 완료된 커피가 최상의 풍미를 간직하는 기간은 조건에 따라 추출 후 수십 초 이내로 짧아질 수 있고, 수십 일 또는 그 이상으로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실내에 방치된 에스프레소는 수십 초 이내에 맛이 가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 더치 커피(≒콜드 브루 커피)라면 수십 일 정도는 품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로스팅 후 3일~10일이라는 시간은 추출이 완료된 커피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숫자입니다.


 2015 US 바리스타 챔피언 찰스 바빈스키가, 커피가 최상의 풍미를 간직하는 기간을 로스팅 후 3~10일로 보았다면 그건 로스팅된 원두에 대한 의견으로 해석해야 마땅합니다. '커피'라는 말은 로스팅된 원두와 추출이 완료된 액체를 모두 가리킬 수 있지만, 신선도라는 측면에서 로스팅된 원두와 추출이 완료된 액체는 전혀 다르게 취급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위 문단에서 길게 논하였습니다) '커피'라는 말이 추출이 완료된 액체를 가리킬 수 있다고 해서, 바빈스키의 의견을 '추출이 완료된 액체가 최상의 풍미를 간직하는 기간은 로스팅 후 3~10일'로 해석하면 그건 곡해입니다.




 바빈스키 2종의 향미는 매우 진합니다. 바빈스키 아메리카노 기준 1.39% 이상의 고형분 함량은, RTD 커피 제품으로서는 기념비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높은 농도입니다[각주:1]. 문제는 향미의 질입니다. 비릿함, 쇠맛, 날카로움, 쩐 듯한 생담배 냄새는 콜드 브루 커피를 과추출하였을 때 나타나는 비교적 전형적인 특징들입니다.[각주:2] 원두를 어마어마하게 들이부어서 진한 원액[각주:3]을 얻은 게 아니라 수율을 높여 원액의 농도를 끌어올렸음이 분명합니다.


 제품의 품질이 이래서는 '로스팅 후 단 10일만 허용하는' 빠른 유통의 의미가 없습니다. 원두의 골수까지 뽑아낸 과추출 에스프레소를 손님에게 10초 내에 대령하면서 '추출 후 단 10초만 허용하는' 신선한 에스프레소라고 광고하는 꼴입니다. 네, 신선한 거 맞습니다. 신선한데 맛이 없잖아요.


 바빈스키 아메리카노의 향미는, 제가 예전에 맛본 아임카페 사(社)의 스틱형 더치커피 제품 더치프레소(DUTCHPRESSO)를 부정적으로 닮았습니다. 지독한 쓴맛, 텁텁한 뒷맛, 쩐 듯한 생담배 냄새… 우유에도 타 보고 거품을 낸 우유에도 타 보았지만 답이 안 나오던 그 스틱더치가 생각나더군요. 그리고 바빈스키 카페라테는 그 답이 없던 우유에 탄 더치프레소 맛이 났습니다. D'oh! (얼마 전 더치프레소를 검색하니 포장이 리뉴얼되었던데, 맛은 어떻게 좀 개선되었나 모르겠습니다)


 바빈스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남은 컵에서는 달달하고 구수한 향기가 났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은 감지할 수 없었던 좋은 특성들이었습니다) 원두의 질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추출 수율이 너무 높아 원두의 안 좋은 향미까지 추출되어서 제품의 향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겠지요.




 리뷰에 비난이나 비판의 말을 싣기는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제품은 많은 사람들의 많은 고민을 거치며 다듬어져 출시됩니다. 완벽하지 않은 제품에도, 그 제품이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수십 수백 가지의 이유가 들어 있습니다. 저는 비난의 말들을 늘어놓기 전에 그들이 의도한 바(내지는 의도했음직한 바)와 현실 사이의 괴리를 짚어보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많은 수의 비난은 이 과정에서 탈락하고, 최종 리뷰에는 '그들은 ○○을 의도한 것 같은데, ××라는 문제가 발생했던 듯하고, 이 제품의 문제 △△의 원인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형태의 문장이 실립니다.


 하지만 저는 야쿠르트가 원액의 고형분 함량을 20% 이상으로 잡은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너그러운 해석을 얻는 데 실패했습니다. 원액 농도 20%는, 적당한 추출 수율을 유지하며 얻기에는 지나치게 높은 값입니다.[각주:4] 수율을 높임으로써 생기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고 그렇게 했다면 그들의 시도는 보기 좋게 실패한 셈이고(과추출된 콜드 브루 커피에서 나타나는, 결점으로 취급될 만한 향미 특성이 나타나 버렸으니까요), 그 정도는 별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소비자의 수준을 너무 낮잡은 것이고, 품질보다는 생산성이나 수익성을 더 중시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 US 바리스타 챔피언의 이름을 앞세워 고객을 기만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야쿠르트의 콜드브루 by 바빈스키 2종은 향미의 질이 제품 자체의 혁신점을 못 따라가 안타까운 RTD 커피였습니다. ①RTD 커피로서는 기념비적으로 높다고 할 만한 1.4%급 농도 ②로스팅 후 3일간의 숙성(실무적으로는 degas) ③추출 후 7일까지만 허용하는 빠른 유통은 혁신보다는 혁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만큼 과감하고 담대한 시도입니다. 하지만 제가 맛본 바빈스키 커피의 맛과 향은 실망스러웠습니다. 비릿함이나 날카로움 같은 안 좋은 특성이 많이 드러났고, 고소함이나 달달함 같은 좋은 특성은 커피를 마시는 동안 거의 감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문제의 원인은 높은 추출 수율로 짐작됩니다. 수율을 적당한 수준으로 내리고 제품의 원액 함량을 높여 제품 농도를 맞춘다면 제가 지적한 문제들—비릿함, 쇠맛, 날카로움, 쩐 듯한 생담배 냄새 등—은 해결될 것 같습니다.


 콜드브루 by 바빈스키 2종은 개선의 여지가 있는 제품입니다. 아니, 개선이 필요한 제품입니다. 만약 제가 RTD 커피를 리뷰하면서, 원두를 리뷰하는 정도의 엄밀함으로 별점을 매겼다면 바빈스키 커피에 망설임 없이 별 하나를 주었을 겁니다. 야쿠르트는 과연 소비자의 반응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요? 그들은 과연 개선된 제품을 내놓을까요? 두고 볼 일입니다.




 각주


  1. [원액의 고형분 함량 20% 이상]×[원액 함량 6.936%]=[제품의 고형분 함량 1.3872% 이상]. 참고로 예전에 리뷰한 칸타타 오리지널 블렌드 제품의 커피 고형분 함량은 0.672%, 조지아 스위트 아메리카노와 고티카 스위트 아메리카노의 고형분 함량은 1.0074%였습니다. 참고로 SCAA는 1.15%~1.35%를 적당한 농도로 봅니다. 바빈스키 아메리카노 제품의 '고형분 함량 1.3872% 이상'이라는 값은, 농도에 한해서는 본격적인 브루잉 커피와 경쟁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높은 값입니다. [본문으로]
  2. 콜드 브루 커피를 추출하는 유리병을 냉장고에 넣어두다 보면, 깜빡하는 바람에 제때 추출을 마치지 못하고 몇 시간 더 묵혀둘 때가 있습니다. 자기 전 밤에 걸러야 하는 커피를 이튿날 아침에야 걸러서 6~8시간쯤 더 추출한 커피는 그럭저럭 마실 만하지만 아예 하루를 넘겨 24간쯤 더 추출한 커피는 쓰고 비리고 쩐 듯한 생담배 냄새와 쇠맛 비슷한 날카로운 맛이 나서 마시기 괴롭습니다. [본문으로]
  3. 농도 20%의 원액은 에스프레소보다 훨씬 진한 것입니다. 더블샷 용량을 60cc, 톨 사이즈를 360cc로 가정하면, 이 때 에스프레소의 농도는 아메리카노보다 6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메리카노의 농도가 1.2%라면 에스프레소의 농도는 그 6배인 7.2%가 되겠죠. 오버도징을 한 리스트레토 샷의 농도도 15%를 넘기지는 않을 겁니다. [본문으로]
  4. 위드오 제주 더치다방의 고형분 함량은 2.9% 이상이고, 핸디엄 더치 커피 워터 원액(커피추출액)의 고형분 함량은 3.5%입니다. 설탕과 커피향(합성향)으로 향미를 보완해야 했던 조지아 스위트 아메리카노와 고티카 스위트 아메리카노의 원액('에메랄드마운틴 커피추출액')의 농도도 13.8%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자신감으로 20%를 가기로 했던 걸까요?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