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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SS 시즌 트렌드는 콜드 브루 커피인가 봅니다. 스타벅스, 카페베네, 할리스 등 이름난 커피 체인점에서 저마다의 콜드 브루 메뉴를 출시하는 걸 보면 말이죠.


 비 오는 날에는 따뜻한 카페 라테가 생각납니다. 에스프레소 초이스를 넣은 숏 사이즈 카페 라테는, 이름 길고 달달한 거 마시러 간다는 별다방에서 의외로 괜찮은(?) 커피 메뉴 중 하나입니다. 오랜만에 스타벅스에 갈 생각을 하고 홈페이지에 접속해 이달의 에스프레소 초이스 원두가 무엇인지 확인하려는데… 에스프레소 초이스 페이지가 간 곳이 없는 겁니다. 매장에 전화를 걸어 문의하니 '지금은 에스프레소 초이스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답을 받았고, '확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가을이 되면 에스프레소 초이스가 돌아올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각주:1]


 그리하여 저는 비 오는 날에 콜드 브루를 마시러 스타벅스에 가게 되었습니다. 날씨에 걸맞은 메뉴는 아니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콜드 브루 리뷰도 쓰고 여름에는 에스프레소 초이스가 안 된다는 말도 쓰고 유입 키워드도 확보하고, 어차피 생일쿠폰을 받기 위해 조만간 별★을 적립하러 스타벅스에 한 번 갈 필요가 있었으니 그것도 해결할 겸해서 별다방 나들이를 하게 되었습니다(앞뒤가 단단히 바뀐 것 같지만 모른 척 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타벅스의 콜드 브루가 처음 런칭되었을 때는 일부 매장에서만 제공되었는데, 지금은 전 매장에서 콜드 브루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콜드 브루 마시러 상계백병원 맞은편 지점까지 찾아갔다가 앉을 자리가 없어 돌아나온 걸 생각하면, 훨씬 나아진 셈입니다.



 스타벅스의 콜드 브루는, 강배전의 명가 스타벅스답게 쌉쌀합니다. '아오 누가 스타벅스 아니랄까 봐 또 태웠네 또 태웠어' 하는 투덜거림이 나올 만큼 쓰고, 삼나무 향기와 스모키와 삼나무숯 사이를 넘나드는 향취가 정신을 얼얼하게 만듭니다. 의정부에 위치한 카페 오리(Cafe Oree)의 에스프레소를 맛본 덕분에 강배전 특유의 향미에 좀 익숙해진 뒤였고, 콜드브루 by 바빈스키와 카페베네의 콜드 브루 크러쉬를 맛본 덕분에 양산되는 콜드 브루 커피에 대한 기대가 적당히 조정된 뒤여서 컬처쇼크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 카페베네의 콜드 브루와 비교하면, 스타벅스의 콜드 브루가 훨씬 썼고, 수율은 스타벅스 쪽이 좀 낮은 것 같았습니다.[각주:2]


 산미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단맛은 뒷맛에 희미하게 비치는 정도입니다. 중배전한 과테말라에서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제가 다크초콜릿이라 표현하는 향미 또한 거의 감지되지 않고 강배전한 원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삼나무[각주:3]와 스모키한 향취가 감지됩니다. 섬세한 향미는 거의 감지되지 않습니다. 꽃향기도 없고, 과일의 느낌도 없고, 견과류의 고소함이라든가 볶은 곡물의 고소함 같은 것도 없습니다.


 콜드 브루 커피는 향미의 디테일에 강점이 있는 추출법입니다. 맛과 향이 엷지만 그 결이 곱고 고급스러운 원두를 콜드 브루 커피로 추출하면, 뜨거운 물을 사용한 추출법으로 추출할 때에 잘 드러나지 않던 특성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테일이 살아나는 거죠. 제가 보기에 스타벅스의 콜드 브루는 영혼까지 태워 버린 원두로 제조되었고, (강배전 특유의 쌉쌀함이나 스모키함은 있지만) 콜드 브루로 살려낼 만한 향미의 디테일이 없기에 콜드 브루 커피라는 추출법의 장점이 발휘될 여지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제품입니다. 색다른 맛을 내기는 하지만(어쨌거나 콜드 브루 특유의 '느낌'은 있었습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비해 이건 확실히 낫다 싶은 특장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에스프레소보다 훨씬 수고로운) 콜드 브루로 추출한 보람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과물의 품질만 따져 보았을 때 말입니다)


 차라리 '아이스 블렌드'를 이달의 에스프레소 초이스 원두로 선정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에스프레소 초이스가 무료!"와 같은 프로모션을 진행했다면, 비용도 적게 들고 간편하고 실효적이었을 겁니다. 프로모션 대상을 아이스(iced) 메뉴 전체에 적용한다면 효과는 좀 더 강력해지겠죠.[각주:4]


 스타벅스의 콜드 브루는 선호가 확연히 갈릴 만한 음료입니다. 강배전 특유의 강렬한 맛을 좋아한다면,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가격에(톨 사이즈가 4,500원입니다) 조금은 색다른 맛을 내는 스타벅스의 콜드 브루가 입에 맞을 겁니다. 하지만 스타벅스의 강배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보통 미디엄 로스트 원두 중에서 선정되어, 좀 더 부드러운 맛의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에스프레소 초이스가 빠지고 대신 들어온 콜드 브루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을 겁니다.


 콜드 브루 라테는, 콜드 브루에 우유를 넣어 주는 메뉴입니다. 쌉쌀하고 강렬한 콜드 브루는 거기에 우유를 좀 섞는다고 해서 쉽게 부드러워지지 않습니다. 시럽이 필요하죠.[각주:5] 마이 스타벅스 리워드로 결제하면 바닐라 시럽, 헤이즐넛 시럽, 캐러멜 시럽 중 하나를 무료로 추가할 수 있습니다.[각주:6] 캐러멜 시럽을 1펌프 추가한 콜드 브루 라테는 적당한 쌉쌀함이 남아 있는 커피우유 맛이었습니다. 나름대로 괜찮았습니다. 워낙 강배전된 커피여서 그런지, 시럽의 특성 때문인지 뒷맛이 깔끔하지 않고 들치근했습니다. 이것도 선호가 갈릴 만한 음료인 셈입니다.



 콜드 브루 커피를 출시하면 바리스타의 부담이 줄어듭니다. 미리 추출해 둔 원액으로 커피를 만들어 제공할 수 있으니 커피 뽑을 시간에 블렌더를 돌릴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이스(iced) 음료를 만들기에 좋고, 아이스크림에 부어 아포가토를 만들거나, 우유얼음을 갈아 만든 눈꽃빙수에 부어 커피빙수를 만들기에도 좋습니다.[각주:7] 더운 계절의 한정 메뉴로 출시하기에 이만큼 적합한 아이템도 없습니다.


 하지만 콜드 브루 커피는 맛을 연출할 여지가 크지 않은 추출법이고, 강배전 블렌드로 콜드 브루 커피를 추출하였을 때의 결과가 예상을 벗어나기 힘든 추출법입니다. 스타벅스와 카페베네의 아메리카노 향미는 극과 극이지만, 콜드 브루의 향미 차이는 그만큼 심하지 않습니다. 브랜드의 개성이 희석되고, 그 유통과 품질 관리에도 많은 공이 들어갑니다.


 카페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기에 콜드 브루 커피는 양면성이 있는 아이템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반응이겠지요. 지금까지 강배전 커피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어 왔고, 또 더운 계절에는 쌉쌀하고 청량감 있는 커피에 대한 수요가 발생하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콜드 브루 커피를 출시한 보람이 있다면 내년 SS 시즌에도 이 아이템이 돌아올 겁니다. 보람이 없다면 내년에는 또 다른 아이템이 나올 테고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안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스타벅스의 콜드 브루는 강배전 특유의 강렬한 맛을 좋아하는 분께 어필할 만한 커피입니다. 콜드 브루 라테 또한 그러합니다. 여름 한정판 원두인 아이스 블렌드로 내린 오늘의 아이스 커피도 언제 한 번 맛보아야겠습니다.




 각주


  1. 콜드 브루가 출시되면 에스프레소 초이스가 빠지고, 콜드 브루가 빠지면 에스프레소 초이스가 돌아오게 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본문으로]
  2. 스타벅스의 콜드 브루를 마실 때는 과추출된 콜드 브루 커피 특유의 느낌이 덜했습니다. [본문으로]
  3. 강배전의 결과로 생겨나는 삼나무의 노트를 뜻합니다. (온두라스 라 우에르타처럼, 생두 자체에 삼나무의 특성이 있다면 약배전을 해도 삼나무 향이 납니다) [본문으로]
  4. 하지만 가끔은 획기적인 외관 그 자체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신메뉴 출시는 에스프레소 초이스 원두를 활용한 프로모션보다 훨씬 획기적일 수밖에 없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무난하고 쓸만한 프로모션보다는 눈에 확 들어오는 신메뉴 출시 쪽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으로]
  5. 쌉쌀하고 강렬한 콜드 브루 커피에 우유를 조금 섞으면, 향미의 디테일은 묻히고 쓴맛과 헙@ㅁ@! 하는 느낌은 우유를 뚫고 올라오는 애매하고 답 안 나오는 상태가 됩니다. 이때 시럽을 적당히 넣으면 쓴맛과 독한 느낌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부드럽고 마실 만한 커피가 되는 대신 원두의 특성은 많이 사라집니다만, 스타벅스의 콜드 브루는 워낙 특성이 강력해서 어지간한 우유와 시럽은 뚫고 올라왔습니다. [본문으로]
  6. 저는 화이트 초콜릿 시럽이나 돌체 시럽을 넣고 싶었는데, 그건 free extra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엑스트라 값으로 600원을 내면 넣어 줄 것 같긴 한데, 그 돈을 내고 추가할 효용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 그만두었습니다) [본문으로]
  7. 뜨거운 에스프레소 샷을 아이스크림에 부어 아포가토를 만들면 아이스크림이 순식간에 녹아 우유죽 비슷한 상태가 됩니다. 우유얼음을 갈아 만든 눈꽃빙수에 뜨거운 에스프레소 샷을 부으면 눈밭에 물 뿌린 것 같은 홈이 파이고 눈꽃처럼 고운 얼음이 더위사냥처럼 뭉치게 됩니다. 그렇다고 에스프레소 샷이 식기를 기다리면 샷이 죽어버리고, 얼음을 넣은 샷잔에 에스프레소를 받아 빠르게 식힌 다음 얼음을 걸러내고 샷만 붓자면 일이 늘어납니다. 처음부터 차갑게 나오는 콜드 브루 커피는, 아이스크림이나 눈꽃빙수에 부을 때 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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