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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제품의 이름은 프로방스 밀크팬 (プロヴァンス ミルクパン), 모델명은 PV-12M입니다. 에지리(EJIRY)는 후지호로(富士ホーロー)의 수출용 브랜드인 것 같습니다. 한글표시 스티커에 제조원이 Fuji Porcelain Enamel Co., Ltd.로 되어 있고, 일본어 취급설명서에는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후지호로 주식회사로 문의하라고 되어 있거든요.


 아리따운 자태 앞에서는 법랑의 단점 따위는 생각나지 않는 게 맞나 봅니다. 2014년에 리스 에델바이스 저그를 구입한 이후, 정말 오랜만에 들인 커피 도구입니다.



 하리오 드립서버는 아가리가 좁아 파보일드 커피를 끓일 때 뜸들인 원두를 투입하기 좀 불편했습니다. 손잡이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 중불(가스 레인지 중간 화구의 불꽃)의 화력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고요. 지름 12cm 정도 되는 밀크팬이 있다면 좀 더 편하게 파보일드 커피를 끓일 수 있고, 터키시 커피 200mL를 한번에 끓이거나[각주:1] 파보일드 커피 200~400mL를 한번에 끓일 수 있어[각주:2]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을 1년 정도 했습니다. 집안에 커피 도구가 너무 많아서, 사지는 못하고 생각만 했지요.


 그러다 작년에 하리오 드립서버가 깨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건조대를 잘못 건드려서 드립서버가 바닥으로 수직낙하하는 바람에 그만(지못미▶◀)… 사마도요 S-040 티포트로도 드립 커피 300mL를 받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으므로, 하리오 드립서버를 재구매하는 대신, 평소에 갖고 싶던 밀크팬을 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방문한 백화점에서 눈에 들어 온 세일중인 제품이 에지리 프로방스 밀크팬이었습니다.



 에지리 프로방스 밀크팬은 일본산입니다(에지리 제품 중에는 Made in Japan이 아닌 것도 있습니다). 에지리 법랑 제품은 알루미늄에 법랑을 씌운 것이라는(그래서 치매 위험이 있다고 호들갑을 떠는) 글을 본 기억이 나서 직원에게 물어 보았는데, 다른 회사의 제품과 마찬가지로 철판에 법랑을 씌워 만들었다고 합니다.


 법랑 제조 과정에서 생기는 '파여나간 듯한 자국'은 손잡이와 몸통이 이어지는 곳 아래쪽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 나 있습니다. (이 점은 리스 에델바이스 저그보다 낫군요) 코팅도 튼튼한 편이라고 합니다. (조심스럽게 다뤄도 어디에 살짝살짝 부딪히는 일을 100% 방지할 수는 없으므로, 법랑 코팅은 튼튼하고 봐야 합니다. 리스 에델바이스 저그도 코팅이 튼튼한 편이라고 합니다)


 이 제품은 손잡이도 법랑 재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뭔가를 끓일 때 장갑을 끼고 손잡이를 잡아야 합니다. 손잡이가 나무 재질로 된(따라서 맨손으로 집을 수 있는) 에지리 밀크팬이 옆에 있었지만, 꽃그림이 들어간 법랑 손잡이 쪽이 더 예뻐 보이더군요. 법랑에서 비주얼을 빼면 뭐가 남겠습니까? 당연히 예쁜 걸 골랐죠. 구리 냄비도 에델바이스 저그도 항상 장갑을 끼고 취급해온 저에게 법랑 손잡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법랑 재질이어서 유리로 된 드립서버보다 열전도율이 좋고, 가스 레인지 중불의 화력을 받아낼 수 있어서 파보일드 커피를 추출하기는 훨씬 편합니다. 예전에는 드립서버에 끓이는 물 따로, 원두 가루 뜸들이는 물 따로 준비해야 했는데[각주:3], 지금은 전기주전자에 물 200mL를 끓여서 일부는 원두 가루 뜸들이는 데에 붓고, (타이머를 작동하면서) 나머지는 곧바로 밀크팬에 부은 다음 가스불을 켜면 됩니다. 뜸들이기가 끝날 때쯤에는 밀크팬도 충분히 데워지고 물도 팔팔 끓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가스불을 끄고 뜸들인 원두 가루를 투입하여 추출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각주:4]



 법랑 제품은 설거지를 하고 나서 바깥에 맺힌 물기를 잘 닦아주어야 깔끔하게 마릅니다. 법랑 재질의 특성이 원래 그런 건지, 마른 행주로 바닥 부분을 닦으면 불꽃이 닿지 않았던 자리는 깔끔하게 물기가 닦여나가고 불이 닿았던 자리에는 수막이 남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수막도 아주 깔끔하게 마릅니다)



 이 제품은 가스불 위에 올려 놓고 사용해도 법랑 색깔이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커피를 끓여도 밀크팬 안쪽이 커피색으로 착색되는 현상은 (여덟 달째 사용중인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파보일드 커피 1인분(200mL)과 2인분(400mL)을 끓여내는 데 쓸 수 있습니다. 1인분은 쉽게 끓여낼 수 있고, 2인분을 끓일 때는 거품이 넘치지 않게 살짝살짝 저어주면 됩니다. 따라내는 주둥이가 양쪽에 달려 있어 오른손으로도, 왼손으로도 쉽게 커피를 따라낼 수 있습니다. 주둥이의 성능이 우수해서(…?) 조금 단호하게 커피를 따라내면 아주 깔끔하게 따라집니다. (주둥이에 남아 있다가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커피 방울이 거의 없습니다)


 지름 12cm 정도의 법랑 밀크팬은 파보일드 커피를 끓이기에 매우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지리 프로방스 밀크팬은 비싸지 않은 가격대에 구할 수 있는 예쁜 밀크팬이어서 좋습니다. (리스(Riess)에서 나온 납작한 밀크팬도 꽤나 예뻤습니다. 백화점에 갔을 때 그게 세일중이었다면, 그걸 구입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역시 주방의 꽃은 법랑이죠!




 각주


  1. <터키시 커피를 끓이는 도구 이야기>에 언급하였듯이, 터키시 커피 200mL를 한번에 끓이려면 냄비의 지름은 12cm정도는 되는 편이 좋습니다. 제가 보유한 구리 냄비는 지름이 9cm여서 터키시 커피 100mL 정도가 한계였습니다. [본문으로]
  2. 파보일드 커피는 터키시 커피보다는 화력에 의존하는 정도가 덜하기 때문에 같은 크기의 냄비로 좀 더 많은 양의 커피를 끓일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3. 뜸들이는 물 50mL를 계량해서 전기주전자에 부어 끓이고, 원두 가루를 뜸들이는 그릇에 그 물을 남김없이 털어넣는 작업은 어려울 것이 없지만, 손이 많이 갑니다. [본문으로]
  4. 파보일드 커피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화력 발전소나 원자력 발전소에서 열에너지를 전기로 이미 변환한 것을 다시 열로 바꾸는 손실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가스불을 사용해 드립서버에 받은 물을 끓였는데, 하다 보니 번거로워져서 요새는 전기주전자로 물을 끓이고 가스불은 재가열할 때에만 씁니다. (다행히, 터키시 커피는 가스불만 사용해 추출하는 과정이 그렇게 번거롭지 않아서 '전열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추출법'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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