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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카페 리뷰

카페피스 의정부점

느린악장 2016. 9. 26. 07:39

 031-879-4325

 오후 7시까지 엽니다. 토요일에는 쉽니다.


 네이버 지도에 나오지 않는 카페[각주:1]. 버스로 찾아가려면 한 번쯤은 환승을 해야 하고[각주:2], 1호선을 타고 찾아가려 해도 경전철로 환승해야 하는[각주:3], 작정하고 찾아가야 하는 카페[각주:4]. 그리고,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자리에 위치한 카페[각주:5]. 길 가다 우연히 발견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운 곳입니다. 하지만 정만섭 선생이 결국에는 음반을 손에 넣듯이 저는 이곳을 발견했고, 찾아갔으며, 아주 맛 좋은 커피를 마셨고,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기존 피스카페나 피스커피와 조금 다른 "카페피스"라는 표기를 사용하지만, 동티모르 원두를 사용하는 그 곳이 맞다고 합니다. 피스커피 홈페이지에 매장소개가 올라오지 않은 이유는 (본사가 아닌) YMCA 의정부 지부에서 운영하는 곳이라서, 그 외에도 몇 가지 사정이 더 있어서라고 합니다.


 제가 리뷰한 곳 중 카페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자리에 위치한 카페로 유로스타커피 창동점, 작정하고 찾아가야 하는 카페로는 나무들을위한숲 가능점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리뷰할 카페피스 의정부점은 둘 다에 해당하면서도 그 정도가 TOP인, 도전의지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매우 어려움' 난이도입니다.


 세 번 방문하는 데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걸 보면 난이도가 높은 곳이 맞는 것 같습니다(제가 이 원고를 작성한 시점은 작년 9월 24일이고, 제가 세 번째로 카페피스 의정부점을 방문한 것은 올해 9월 1일입니다). 그 사이에 바리스타도 두 번 바뀌었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바리스타를 만난 셈입니다.




 카페피스 의정부점 근처에는 의정부세무서와, 세무사 사무실과, 상당히 큰 교회가 있습니다. 번화가가 아닌 곳에 위치했지만 세무서 직원, 세무사 사무실의 손님, 교회 손님이 찾아와 가게는 유지된다고 합니다. 오너바리스타 한 명이 운영하는 소규모 카페를 오픈할 생각이라면 이런 자리도 좋겠다 싶더군요.


 두 번째 방문 때 만났던 바리스타가 저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에스프레소 샷을 매우 긴 시간 동안 추출하였는데, 추출하는 동안 샷잔을 손으로 받쳐 스파웃에서 떨어지는 커피를 받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샷을 천천히 뽑은 이유는 '그렇게 해 보았더니 향이 풍성해지고 입안에 퍼지는 느낌이 좋아서', 샷잔을 받치는 이유는 '정성을 들이는 마음가짐', '커피 방울이 잔 벽에 튀지 않게 하기 위해', '커피가 스파웃에서 나와 잔까지 떨어지는 동안 손실되는 향미를 최소화하기 위해'라고 하더군요.


 두 번째 방문을 했던 2016년 2월 19일에 저는 에스프레소를 마셨습니다. 노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문헌의 평가[각주:6][각주:7][각주:8]와 달리, 제법 바디감이 있고 케냐와 유사한 와인의 느낌, 약간의 짭짤함이 있어 [커피의 향미가] 밋밋하지 않다. 쓴맛은 중간 정도. 카페 라테의 벨벳 밀크와 같은 촉감이 느껴질 정도로 크레마가 도톰하고 풍성하다. 샷을 추출하는 시간이 상당히 길고, 샷을 추출하는 동안 샷잔을 손으로 받쳐 스파웃에서 떨어지는 커피를 받는다. (…) 샷을 긴 시간 동안 추출하기 위해, 별도의 기기 세팅을 하였다고 한다.


 이사오 사사키 같은 진지함, 단정함, 꼼꼼함이 인상적. 구도자 같은 바리스타. (어린이대공원점과) 같은 원두로 이런 맛을 낼 수 있다는 게 놀랍고—역으로, 같은 원두로 다른 맛을 내려면 이 정도의 정성은 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커피의 퀄리티는 감히 평가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을 만큼 황송하다. 정성이 가득한 에스프레소와 상차림.



 ※2,800원짜리[각주:9]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는데, 이렇게 풍성한 쟁반이 나왔습니다. (커피를 다 마신 뒤에 사진을 촬영했고, 그릇에 담긴 스낵은 사진을 찍고 나서 먹었습니다) 다 마시고 난 뒤에도 크레마는 잔의 벽에 붙은 채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접사가 되는 카메라를 챙겨갔다면, 마시기 전에 벨벳밀크 같은 크레마를 선명하게 찍을 수 있었을 텐데…


 당시의 저는 커피의 맛은 원두가 좌우하며, 커피 추출이란 그 원두의 맛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여겼습니다. 나름대로 원두를 여러 종류 맛보았다는 자신감과, '내가 프로는 아니지만 바리스타만큼은 커피 맛을 안다'는 묘한 자부심 내지 우월감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날 백기를 들었습니다. 원두에 신경쓰면 추출에 소홀해질 수 있고, 기술을 중시하면 정성을 가볍게 여길 수 있지만 정성을 들인 추출을 통해 원두의 한계를, 정확히는, 한계로 간주된 지점을 돌파하여 그보다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음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이날 마셨던 에스프레소는 추출에 대한 저의 인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커피 애호가로서, 또 원두 리뷰어이자 카페 리뷰어로서 놓치면 안 될 것들에 어떤 것이 있는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루이틀 재방문을 미루다 9월이 되어서야 다시 카페를 찾아가니 사장님도 바리스타도 바뀌어 있었습니다. 1년을 기약하기 힘들 만큼 사람의 드나듦이 활발한 업계이기는 하지만,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하고 떠나보낸 것 같아서 섭섭하고 슬픈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샷을 추출하는 시간은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괜찮은 편입니다. 조금 쏘는 듯한 향이 나고 조금 튀는 산미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제가 맛본 동티모르의 특징이 대체로 잘 드러난 커피였습니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카페 라테 같은 기본 메뉴도 좋고 블루베리 요거트 스무디 같은 색다른 메뉴도 맛이 좋습니다. 들어가는 길은 좀 살풍경하지만, 카페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면 창밖으로 잔디밭이 보여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의정부시청이나 의정부세무서에 볼일이 있고 커피 한 잔을 마실 여유가 있다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주


  1. 글을 작성한 2016년 9월 현재까지도 네이버 지도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음 지도에는 나옵니다. [본문으로]
  2. 서울~의정부~양주~동두천~연천을 연결하는 버스는 대부분 평화로(3번 국도) 상에 있는 의정부역 동부광장을 지납니다. 시청 앞을 지나는 간선버스나 시내버스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3. 의정부경전철(U Line) 의정부시청역 근처에 위치합니다. 1호선 의정부역에서 내려 이곳을 찾아가려면 20분 정도 걸립니다(대로변 보도를 따라 걸을 때 기준). 회룡역에서 1호선⇄경전철 환승을 할 때 환승할인을 받으려면 환승 전용 게이트를 이용해야 합니다. (기존 개찰구를 통과하면 환승할인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본문으로]
  4. 근처에서 식사를 한 김에 들르기 애매한 자리입니다. 이순례손칼국수 정도가 가까운 곳에 있지만, 그 외의 맛집은 아크라티움이나 의정부역, 그 너머 행복로 일대에 모여 있습니다. 아크라티움 쪽에서 식사를 해결하면 근처 투썸플레이스나 할리스로 빠지기 쉽고(마침 평화로와 의정부역 쪽으로 가는 방향에 있기도 합니다), 행복로 쪽에서 밥을 먹었다면 정말 작정하지 않는 이상 여기까지 올 일이 없습니다. [본문으로]
  5. 주유소 옆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면 정말 뜬금없이 튀어나옵니다. 근처에 의정부세무서가 있기 때문에, 카페 근처에는 세무사 사무실과 복사집이 많고, 사무 건물 사이사이에 단독주택과 빌라가 들어서 있습니다. 카페피스 의정부점이 들어선 자리도 2012년에는 복사집이었습니다. [본문으로]
  6. "아주 희미하게 녹초 향이 난다. 비료를 적게 쓰기 때문에 바디감이 약하다. 로스팅은 하이로스트까지가 한계. 산뜻한 맛을 즐길 수 있다." —호리구치 토시히데 (2012) <커피 교과서>, 달. pp.78-80. (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7. "티피카 계의 깨끗한 커피콩이 특징이다. 밝은 산미에 부드러운 향미를 지니고 있다. 최근에는 유기비료를 쓰기 시작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연 재배를 한다." —하보숙, 조미라 (2012) <커피의 거의 모든 것>, 열린세상. pp.170-197. (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8. 2016년 7월 정광수님께 들들은 바로는 카페티모르/피스커피의 동티모르 생두에는 (문헌과 달리) 부르봉 품종이 상당량 섞여 있고, 문헌의 작성자가 맛보았을 커피를 재배한 곳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수확한 커피여서 (재배지의 기후와 토양도 달라) 문헌과는 달리 강배전이 가능하고 단맛이 있으며 초콜릿 향기가 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9. 제 기억에 의하면 2016년 2월 카페피스 의정부점의 에스프레소 가격은 2,800원이었습니다. 2016년 9월에 방문했을 때는 3,000원이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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