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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외선 온도계를 사용해 고객에게 제공될 카페 라테의 온도를 재는 것은 가능한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까다롭고 비효율적이다' 가 됩니다.


 카페 라테에 들어가는 우유의 스팀 온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몇 도로 스팀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최적 범위가 몇 도에서 몇 도까지인가─에 대한 이견은 있겠지만, 최적 범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가 중요하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아마 이견이 없을 겁니다. 너무 뜨겁게 스팀하면 우유에서 가열취가 나고 폼이 거칠어지며, 너무 낮게 스팀하면 우유의 단맛이 살지 않고 폼이 떡지니까요.


 이 중요한 스팀 온도는 사실상 전적으로 바리스타의 손 감각에 의지해서 측정됩니다. 스티밍 중인 밀크 피처에 손바닥을 대었을 때 '앗 뜨거' 싶은 순간, 우유의 온도는 55도 내외라고 보는 식이죠. 문제는 이 손 감각이 일정하지 않다는 데에 있습니다.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이 열기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조금 낮은 온도에서 스티밍을 마치는 경향이 있고, 한두 시간쯤 바에서 일하며 열기에 익숙해지면 조금 높은 온도에서 스티밍을 마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날씨나 몸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찬물로 스팀행주를 빨아 손이 차가워지면 온기를 느끼는 시점은 빨라지지만 '앗 뜨거' 싶은 시점은 늦어지기 때문에 작업 습관에 따라 편차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피처에 손을 대는 것이 싫어서 '앗 뜨거'의 몇 초 전 온기를 기억한 다음 그 온기의 몇 초 후를 '앗 뜨거'로 간주하여 스티밍 시간을 보정하는 사람은 찬물로 스팀행주를 빨고 나서 평소보다 낮은 온도에서 스티밍을 마칠 것이고(평소보다 온기를 빨리 느끼기 때문에), 실제로 '앗 뜨거'를 기준으로 스티밍 시간을 잡는 사람은 평소보다 높은 온도에서 스티밍을 마칠 겁니다(찬물에 손을 담그고 나서 뜨거운 물체를 만지면 평소보다 열기를 잘 견딜 수 있기 때문에).


 탐침(probe)을 꽂아넣어 온도를 재는 일반적인 온도계는, 고객에게 제공될 음료의 온도를 재는 용도로는 부적합합니다. 탐침과 음료가 접촉하면서 오염이 발생할 수 있고, 음료의 형태를 망칠 수 있으며, 고객의 거부감('내가 먹을 음료에 뭘 담근다')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탐침을 꽂아넣지 않는 적외선 온도계라면 어떨까요? 접촉에 의한 오염에서 자유롭고 음료의 형태를 망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실험도구같지 않은 온도계를 구했고(권총처럼 생긴 적외선 온도계로 라테 온도를 측정하는 바리스타는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 보일 것 같았으니까요), 사용해 보았습니다.


 이런 젠장.


 탐침을 꽂아넣어 잰 온도는 60도였는데, 카페 라테의 표면에 적외선 온도계를 들이밀어 측정하니 40도가 나왔습니다. 몇 번 더 측정을 해 보니 온도계 자체의 측정오차가 형편없이 커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예상되는 원인은 다음의 두 가지였죠.


 1) 적외선 온도계가 측정하는 카페 라테 표면의 온도(우유거품의 온도)가 심부(深部)의 온도와 다르다.

 2) 우유거품의 물성이, 고체나 액체의 표면 온도를 재도록 설계된 적외선 온도계로 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물론 다음 조건이 충족된다면, 원인이야 어찌 되었든 통계적으로 측정값을 보정해 실제 온도(편의상, 이 글에서는 일반 온도계로 측정한 카페 라테 심부의 온도를 실제 온도로 간주합니다)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ㄱ) 갓 만든 카페 라테의 표면 온도와 심부 온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으며 r값이 충분히 높고 p값이 충분히 낮다.

 ㄴ) 우유거품의 실제 온도와 측정된 온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으며 r값이 충분히 높고 p값이 충분히 낮다.

 ㄷ) a, b의 상관관계는 선형적이며, 등분산이다.

 ㄹ) 온도계의 측정오차가 충분히 작다.


 ㄱ~ㄹ의 조건이 충족된다면 적외선 온도계로 측정한 온도(편의상 X로 칭하겠습니다)를 독립변수로, 카페 라테 심부의 온도(편의상 Y로 칭하겠습니다)를 종속변수로 놓고 데이터 쌍(X1과 Y1의 1번 쌍, X2와 Y2의 2번 쌍, … Xn과 Yn의 n번 쌍)을 충분히 모은 다음 단순회귀분석을 돌리면 됩니다. 회귀식이 Y=X+20으로 나왔다면, 적외선 온도계로 측정한 온도(X)에 20도를 더해서 실제 온도(Y)를 구할 수 있습니다. 적외선 온도계에 40도가 찍혀나왔다면 '실제 온도는 60도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만약 회귀식이 Y=1.15X+14라면 X에 1.15를 곱한 다음 14를 더해서 Y를 구하면 됩니다. 적외선 온도계를 사용해 실제 온도를 추정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말씀드린 건 이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위에서 설명한 방법을 현장에서 활용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음과 같은 문제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a) 충분한 양의 데이터를 확보하기 힘듭니다. (50개의 데이터 쌍을 확보하려면, 50잔의 카페 라테를 제조해야 하고 측정을 100번 해야 합니다)

 b) 회귀식의 계수가 1이 아닐 경우 암산으로 실제 온도를 추정하기 어렵습니다. 변환 테이블이나 계산기가 필요해지고, 현장에서의 활용도가 낮아집니다.

 c) 위 조건 ㄱ, ㄴ, ㄹ에서 발생하는 오차가 누적되면 회귀식을 사용한 추정 모델의 정확도가 낮아집니다. 기껏 계산해서 얻어낸 정보를 믿을 수가 없게 됩니다.

 d) 적외선 온도계로 측정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고객이나 동료 직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측정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안 해.


 저는 a~d가 충분히 발생 가능한 문제라고 보았고, 통계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할 계획을 일찌감치 접었습니다. 틈틈이 측정을 해 보고 적당히 써먹을 만하겠다 싶으면 주먹구구식으로 변환 테이블 비슷한 것을 만들어 써먹을 수는 있겠지만요. 현장에 계신 바리스타 여러분은 손 감각을 개발하고, 카페 라테의 온도를 재야 할 일이 있다면 탐침을 꽂아넣는 일반적인 온도계를 활용하시는 편이 쉽고 편하겠습니다. 혹시 적외선 온도계를 활용한 카페 라테 심부 온도 추정에 관심이 있는 분이나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는 분이 있으시다면, 온도계의 모델명과 설정된 방사율(보통 0.95 내외입니다)과 회귀분석 결과를 공유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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