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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고 있는 2013년 현재, 우리는 인터넷 쇼핑을 하면서 배송료를 낸다면 대략 2500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배송료 2500원 중 택배기사의 몫이 900원 정도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는데, 이대로 가정하고 이야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택배기사가 월 270만원을 벌려면 약 3000건의 배달을 성공해야 합니다.[각주:1] 한 달에 3000건의 배달을 하려면, 한 달에 22일을 일한다 가정했을 때[각주:2] 하루에 약 136건의 배달을 성공해야 합니다. 하루에 12시간을 배달에 쓴다고 가정했을 때[각주:3] 1시간에 약 11건의 배달을 성공해야 합니다. 물건 하나를 배달하는 데 평균 5분 17초 이상 쓸 수가 없습니다. 아파트라는 주거방식이 아니었다면, 사실상, 이 단가로 먹고 살 수 있는 택배기사는 없었을 겁니다.


 만약 배송료가 2500원에서 3000원으로 오르고, 인상된 500원이 온전히 택배기사의 몫으로 돌아간다면, 따라서 한 건에 1400원을 받을 수 있다면, 택배기사는 하루에 약 88건의 배달을 성공하면 월 270만원을 벌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11시간 일하면서 1시간에 약 8건을 성공하면 되니 1시간 덜 일하면서 단위 시간당 업무량도 줄어들지요. 이게 배송료 500원이 올랐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배송료 500원을 더 부담하는 것으로 택배기사들에게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죠.


 공정무역이 가져올 결과도 대략 이와 비슷합니다. 예전에 썼던 글에서 알아낸 대로, 현지 수매상들이 생두를 사들일 때는 1kg에 $2.3정도를 지불합니다. 만약 우리가 생두 1kg당 70센트를 더 지불하고, 이 70센트가 온전히 농부의 몫으로 돌아간다면, 농부의 삶은 훨씬 나아질 겁니다. 농사에 동원했던 어린 자식들을 학교에 보낼 여유까지 얻을 수도 있지요.




 이쯤에서 공정무역의 '공정'이란 말에 대해 한 번 짚고 넘어가봅시다. 아시다시피 공정무역은 영어로 fair trade입니다. 옥스포드 비즈니스사전[각주:4]에 실린 fair의 뜻은 acceptable and appropriate in a particular situation입니다. a fair deal/price가 예시로 붙었으니, 이 풀이는 fair trade에 쓰인 fair의 뜻에 아주 가까운 풀이일 겁니다. 따라서 공정한 가격이란 '거래 상황에서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고 또한 적절한' 가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택배기사는 오늘도 한 건에 900원을 받으며 물건을 나르고, 농부는 올해도 고만고만한 값을 받으며 커피 농사를 짓습니다. 굳이 배송료를 500원 더 주지 않아도, 굳이 생두 1kg에 70센트를 더 주지 않아도 택배기사를 하겠다는 사람은 여전히 있을 것이고 커피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 또한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명목상으로는 현재의 배송료와 현재의 생두 가격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합의한 가격입니다. 총칼을 들이밀고 위협해서 결정한 가격이 아닙니다. 따라서 명목상으로는 '공정'합니다.


 진짜로요?


 생두 1kg에 70센트를 더 지불하는 게 '공정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특정한 값에 용역이나 재화를 제공하기로 양측이 합의했다고 해서 언제나 '공정한' 거래일 수만은 없다고 주장하려면, 보이지 않는 손의 '불공정한' 면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 가는 대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는 글이 산으로 가게 생겼으니 최대한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1ha정도의 땅에 커피 농사를 짓는 자영농이 1년 농사를 지어 수매상에게 팔면 $4,600정도를 손에 넣습니다.[각주:5] 가족이 5명이라면 1인당 $920, 10명이라면 $460정도의 소득입니다. 표현하기 죄송스럽지만, 이 정도면 근근이 먹고 사는 살림이지요.


 브라질의 몬테알레그레 농장은 18000ha가 넘고, 이 정도 규모의 농장에서 한 해에 쏟아져나오는 생두는 3만 6천 톤쯤 됩니다. 수매상이나 좀 더 규모 있는 원두 구매자와 밀고 당기려면 이 정도 물량은 되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1ha짜리 영세농가[각주:6]의 한 해 소출은 생두 2톤 정도. 이런 거래 하나쯤 엎어진다고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매상은 없습니다. 영세농가 입장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가격을 제시받아도 파는 게 수지요. (이쯤 되면 제가 예전 글에서 브라질의 몬테알레그레 농장 직수입 커피를 두고 '대형 농장과 직거래를 하는 것이 과연 공정무역이라는 말에 적합한' 것이냐 지적한 이유를 납득하실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한 가격에 생두를 거래하기로 합의했다면, 그 합의가 과연 공정한 합의일까요? 이론의 여지를 살피면 정말 산으로 갈 테니, 공정한 합의가 아니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짓고 글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좋든 싫든 팔 수밖에 없는 영세농가의 형편을 수매상이 '이용exploit'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수매상의 행위는 앞서 나온 옥스포드 비즈니스사전 풀이의 acceptable이나 appropriate과 같은 표현에 부합할 수 없다고 보았고요. 따라서 공정하지 않다고 본 것입니다.)




 '힘의 비대칭 상태'쯤으로 이름붙일 수 있는 상황에서 결정된 가격은 상대적으로 약자[각주:7]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공정한 가격이 있다면 힘의 비대칭 상태에서 결정된 가격보다는 높아야겠지요. 이 가격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가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 얼마나 더 주어야 하는가?

 ② 왜 그만큼 더 주어야 하는가?


 생두 1kg에 70센트를 더 지불하고, 이 70센트가 온전히 농부의 몫으로 돌아간다면, 산체스 씨네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겠지요. 어쩌면 1달러를 더 지불했을 때 비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집을 수리할 수 있을 것이고, 1달러 40센트를 더 지불하면 산체스 씨네 아이들이 LED TV에 Wii를 연결해서 방과 후에 집에서 재미있는 게임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산체스 씨네 게임기 살 돈까지 생각해주어야 합니까?


 1달러로 돌아가서, 비바람이 새는 집을 수리하는 이야기를 짚어봅시다. 비바람이 새는 집에 살아서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집에 비바람이 새면 불쌍해서입니까, 아니면 인간으로서 비바람이 새지 않는 집에서 살 만한 권리쯤은 가지고 있어서입니까?


 공정무역 커피 판매자들은 소비자가 이 커피를 구입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극적인 변화를 묘사하느라 무진 애를 씁니다. 이 커피를 사면 먼 나라의 어느 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다는데, 동생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데, 여기에 대고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온한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 짧은 시간 안에 소비자를 설득하기에 이만큼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하지만 저는 판매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까?


 불쌍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베풀어 변화를 일으키려 한다면, 공정무역 사업가의 손길이 사라지는 순간 그들은 다시 불쌍한 사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동정은 요구하는 게 아니니,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게 불쌍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전부일 겁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권리를 돌려주기 위해 변화를 일으킨다면, 공정무역 사업가의 손길이 떠나더라도 그 변화는 유지될 겁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요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니까요.


 여기까지 오면 복잡하게 얽혀 있던 ①과 ②의 문제가 풀립니다. 학령기의 아동이 학교에 가는 것은 (사실상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인간으로서의 권리입니다. 따라서 (공정무역 사업가의 손길이 떠나더라도) 농부들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70센트를 더 요구할 수 있습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행동으로 나설 수도 있겠지요. 이것이 바로 공정무역이 불러와야 할 변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바람이 새지 않는 집에서 사는 것은, 조금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인간으로서의 권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농부들은 70센트가 아닌 1달러를 더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LED TV와 Wii는? 글쎄요, 일단 2013년에 살고 있는 제 생각에는 아닌 것 같네요. 따라서 1달러 40센트를 '인간으로서의 권리'라는 명목으로 더 달라 요구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고,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정한 가격을 논할 때, 이 정도의 땀방울에 어느 정도의 값을 쳐 주어야 하는지를 논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빼놓고 공정한 가격을 논하는 자리는, 막연한 동정과 냉혹한 시정(市井)의 리얼리즘이 맞붙는 싸움터가 되기 쉽습니다.


 공정무역 커피는 그리 비쌀 필요가 없습니다. 생두 1kg에 1달러를 더 지불하고, 이 1달러가 온전히 농부의 몫으로 돌아가고, 유통 과정에 있는 다른 사람들(수매상, 해운업자, 로스터, 판매자 등)이 '공정무역 커피'라는 이유로 평소보다 많은 이윤을 원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원두 200g에 250원 정도[각주:8] 더 부담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250원이 온전히 농부의 몫으로 돌아간다면, 그래서 농부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저는 기꺼이 공정무역 커피를 구입할 것입니다. 아무래도 절정(絶頂)위에는 서 있지 않고 조금쯤 옆으로 비켜 서 있는 저에게—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위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비행기를 타고 이역만리를 돌아다닐 용기가 없는 저에게, 공정무역 커피는 소박한 삶을 살면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니까요.




 ※ 이 글에서 언급된 70센트, 1달러, 1달러 40센트, 그리고 250원은 허구로 설정된 수치임을 밝힙니다.


 각주


  1. 그렇다고 270만원이 택배기사의 '순이익'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유류비를 비롯한 차량유지비용을 자비로 지출해야 할 테니까요. [본문으로]
  2. 토요일과 일요일을 쉬면 한 달에 약 21~22일을 일하게 됩니다. [본문으로]
  3. 상차와 하차에 걸리는 시간, 차고지(혹은 집)에서 영업소까지 차를 몰고 이동하는 시간 등은 제외한 것입니다. [본문으로]
  4. Oxford Business English Dictionary ⓒ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본문으로]
  5. 앞서 말한, 3000ha 규모 농장의 2011년 한 해 매출 $13,800,000을 3000으로 나눈 값입니다. [본문으로]
  6. 1ha는 약 3000평, 논으로 치면 15마지기, 밭으로 치면 10마지기쯤 됩니다. 작물 값에 차이가 나다 보니 이만한 땅을 가지고도 영세농가로 취급되네요. [본문으로]
  7. 이 글에 등장한, 택배기사와 영세농가를 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8. 1달러=1,250원으로 가정하였을 때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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