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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쓰면 "바라차 앙코르"가 됩니다.


 스타벅스 돌체 라떼를 '돌체 라테'로 고쳐 불렀던 적이 있지만, 이는 돌체 라떼의 '라떼'가 일반명사 카페 라테의 '라테'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보아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해 수정했던 것입니다. '카페 라테' '라테류' 하다가 갑자기 '돌체 라떼' 하면 일관성이 없어 보이니까요.[각주:1]


 하지만 이 회사의 그라인더 이름 Encore는, 정해진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한 곡 더 해달라고 외칠 때 쓰는 일반명사 앙코르와 별 상관이 없다고 보아 판매자의 한글 표기를 존중하여 '엔코'라 부르겠습니다.[각주:2] 마찬가지로 회사 이름도 그들의 표기를 존중하여 '바라짜'라 부르겠습니다.




 실리트 페퍼밀을 사용하는 동안 점점 원두를 분쇄하는 양이 늘어났습니다. 2013년 5월 경 2g으로 시작한 원두 1회 분량은 2013년 6월에 3g, 이후 6g으로 증량되었으며 2015년 11월에 실측해 보니 실제로는 8g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번이긴 하지만 손으로 갈기에 슬슬 꾀가 날 만큼 많은 양이었고, 페퍼밀의 바깥쪽 세라믹 날[각주:3]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자 이 김에 그라인더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라인더를 구입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조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소량의 원두를 갈기에 편한가? : 원두 8g을 투입했는데 2~3g이 투입구 문턱에 걸려 안 들어간다든가, 날 홈에 끼어서 안 나온다든가 하면 곤란합니다. 한 번에 많이 분쇄하는 사람이나 청소 간격이 긴 사람이라면 이런 사항들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저는 조금 분쇄하고 청소하고 조금 분쇄하고 청소할 계획이어서 8g을 투입하면 8g 가까운 양이 나와주는 모델이 필요했습니다.


 2) 관리하기에 편한가? : 저는 하루 한 번 정도 커피를 마십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라인더 청소하느라 한참을 낑낑대기는 싫었습니다. 퓨즈 끊어지면 갈아주어야 하는 모델도 피하고 싶었습니다. 청소하기 편하고 유지보수가 편한 모델을 우선 순위로 고려했습니다.


 3) 분쇄된 원두를 원하는 통에 바로 받을 수 있는가? : 분쇄된 원두를 터키시 커피를 끓이는 구리 냄비에 바로 받을 수 있다면, 캐니스터를 청소할 필요가 없으니 일이 줄어들고 캐니스터에 달라붙는 커피 원두를 손해보지 않아도 됩니다. 도저리스 모델이나, 도저(캐니스터)를 빼고 사용할 수 있는 모델을 우선 순위로 고려했습니다.


 이 모델 저 모델 쓱쓱 지우고 나니 남는 게 바라짜의 제품들이었습니다. 국내에 수입되는 엔코(Encore), 버추소(Virtuoso), 버추소 프리사이소(Virtuoso Preciso)의 날이 모두 동일하다는 정보를 여러 게시판에서 확인하고는, 바로 원가절감형 모델인 엔코를 점찍었습니다. 플라스틱 외장? 버추소보다 조금 덜 균일한 것 같은 분쇄 품질? 그 정도는 저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라인더가 집에 왔습니다. 신세계가 펼쳐졌습니다. 커피 원두를 원하는 만큼 원하는 굵기로 갈 수 있게 되자 "콜드 브루 커피 진하게 추출하기"가 가능해졌습니다(핸드밀로 못할 건 없지만, 핸드밀을 써서 에스프레소 굵기로 원두 8g을 가는 건 중노동입니다). 손으로 갈 때보다 훨씬 균일한 굵기로 원두가 분쇄되니 미분이 줄어들고 터키시 커피의 맛이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페퍼밀을 붙들고 낑낑대던 시간이 줄어드니 커피를 훨씬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간증은 이쯤 하고, 실사용을 하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적어보겠습니다.


 1) 캐니스터를 빼고 포타필터, 드리퍼, 구리 냄비, 인퓨저나 스트레이너 등에 바로 분쇄된 원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외경이 9cm정도 되는 원통형 그릇은 슬쩍 기울여 들이밀면 되고, 그보다 작은 그릇은 그냥 들이밀면 원두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이게 가능하면 캐니스터를 청소할 필요가 없으니 일이 줄어들고 캐니스터에 달라붙는 커피 원두를 손해보지 않아도 됩니다.



 그라인더가 충분히 무겁고 미끄럼 방지장치가 잘 되어 있어, 사진에서처럼 한 손으로 조작해도 그라인더가 뒤로 밀리지 않습니다. (저는 보통 오른손으로 통을 잡고 왼손으로 버튼을 눌러서 작동합니다) 원두를 받는 통을 너무 높이 치켜들면 배출구가 막힐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한글판 설명서는 번역은 멀쩡히 해 놓고 사진을 엉뚱한 걸 갖다붙여 사람 헷갈리게 합니다.


 2) 호퍼를 분리해서 보관할 때는, 나뚜루 아이스크림 작은 컵(편의점에서 3000원쯤에 팝니다)에 있는 뚜껑을 덮으면 대략 크기가 맞습니다.



 3) 실리콘 실[각주:4]을 끼우지 않아도 그라인더는 작동합니다. 하지만 실리콘 실 없이 작동하다 보면 그라인더 내부로 커피 가루가 들어가겠지요. 분해했던 그라인더를 조립해서 사용할 때는 실리콘 실이 장착되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4) 진공청소기를 사용해서 간편하게 청소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한글판 설명서에는 "본 메뉴얼에 나와 있는 내용에 따라 그라인더의 유지 관리를 위해 분리 및 조립하여 주십시오."라 되어 있으니 진공청소기를 사용해 그라인더를 청소하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무상 A/S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영상에 나오는 내용을 따라하기 전에, 이 위험요소를 반드시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Use at your own risk.




청소기로 빨아들이는 장면은 1분 30초부터 나옵니다.


 5) 호퍼 내부의 자잘한 가루를 빨아들일 때에도 진공청소기를 응용할 수 있습니다. 호퍼 뚜껑을 덮고, 진공청소기를 약하게 틀어 호퍼의 배출구 쪽에 들이밀면 윙↗소리와 함께 호퍼 내부의 자잘한 가루가 청소기로 들어옵니다. 호퍼 안쪽에 청소기를 들이미는 것보다 훨씬 쉽고 위생적입니다.



 6) 채프의 일부는 갈려나오고, 일부는 덜 갈린 채 나와서 배출구 주위에 날리고, 일부는 실리콘 실과 호퍼 사이의 틈에 달라붙습니다. 비교적 굵게 갈 때 채프 날림이 심합니다.


 7) 굵게 분쇄할 때는 날과 날 사이의 공간이 넓어져 제법 많은 원두가 낍니다. 에스프레소 굵기로 분쇄할 때는 별 문제 없다가도 모카포트 굵기(눈금 19)에서는 원두 3~4알 분량, 드립과 프렌치프레스의 중간 굵기(눈금 28)에서는 원두 5~8알 분량이 낍니다. 비싼 원두를 갈 때는 이렇게 낀 원두도 아까운데, 빼낼 방법이 있습니다. 원두를 다 갈고 나서 몇 번 짧게 그라인더를 공회전시키면 사이에 낀 원두가 빠져나오고, 호퍼 뚜껑을 열었다 닫으면[각주:5] 또 얼마간의 원두가 빠져나옵니다. 그라인더를 흔든다든가 들었다 놨다 한다든가(…) 하는 방법보다는 그라인더에 가해지는 충격이 훨씬 적겠지요.




 바라짜 엔코는 제가 지금 사용하는 커피 용품 중 가장 비싼 물건입니다. 잘 샀다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드는 물건이기도 하고요. 핸드밀보다 간편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이 전동 그라인더의 미덕이라면, 바라짜 엔코는 이 미덕의 정점에 선 그라인더라고 생각합니다. 청소하기도 편하고 소량의 원두를 갈기도 편하고 분쇄된 원두를 원하는 통에 바로 담을 수 있는 그라인더 중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하는 모델이니까요.




 각주


  1. 이론적으로, 상품명은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해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적어 주는 편이 좀 더 좋기는 합니다. [본문으로]
  2. 이 회사의 또 다른 그라인더 Virtuoso도, 탁월한 연주자를 가리키는 일반명사 비르투오소와 별 상관이 없다고 보아 판매자의 한글 표기를 존중하여 '버추소'라 부르겠습니다. [본문으로]
  3. 코니컬 버 세트를 채용한 그라인더에서는, 중앙부에서 돌아가는 원뿔 모양의 날을 코니컬 버(conical burr), 바깥쪽에 있는 고리 모양의 날을 링 버(ring burr)라고 부릅니다. 해당 문장에서 언급된 페퍼밀의 바깥쪽 세라믹 날은 링 버입니다. [본문으로]
  4. 그라인더 내부로 커피 가루가 들어가지 않게 막아주는, 검은 고무로 된 부품. [본문으로]
  5. 제 생각이지만, 호퍼 뚜껑을 열었다 닫을 때 일정량의 공기가 밀려들어가 사이에 낀 원두 가루를 밀어내고, 약간의 진동이 생겨 털어주는 효과가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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