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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라 컵으로 터키시 커피를 추출할 때는 오래 끓여도 커피가 보글보글 치솟지 않아서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야 했습니다. 집에 돌아다니는 전자사전에 플래시 라이트(Flah Lite)로 제작된 스톱워치 앱을 넣어서 사용했지요. 티포트 브루 커피를 추출할 때 역시 스톱워치가 필요했습니다. 적정 시간 범위를 15초만 벗어나도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느껴져서였습니다.


 하지만 전자사전에 넣은 스톱워치 앱을 실행하려면 부팅에만 12초 정도가 걸리고, 스톱워치를 작동하려면 스타일러스 펜을 뽑아 화면을 터치해야 했습니다. 스타일러스 펜이 어디로 굴러가지 않게 하려면 스톱워치를 작동하고 나서 펜꽂이에 도로 꽂아두어야 했고요. 스톱워치에 괜한 돈을 쓰느니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지 하면서 쓰기는 했지만, 갈수록 귀찮아지고 꾀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버튼 하나 누르면 바로 작동하는 물건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인터넷을 돌아다녀보았습니다.


 들어서 이름을 알 만한 회사 중 신뢰도가 높은 스톱워치를 판매하는 곳은 세이코(SEIKO)였습니다. 쓸만한 물건이 7만원에서 20만원 사이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커피 우리는 시간이나 재기에는 많이 비쌌고 성능도 넘쳐나는 물건이었습니다. (백 단위의 랩타임을 제공했지만, 제가 끓이는 커피는 딱 한 잔이고…) 세이코보다 좀 더 싼 물건 찾을 때 둘러보는 카시오를 뒤적였더니 17000원 정도의 HS-3V와 5만 원 정도의 HS-80TW모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톱워치 기능으로만 봤을 때는 HS-3V로도 충분했지만 HS-80TW에는 카운트다운 타이머가 달려 있었습니다. 카운트다운 타이머가 있으면 화면을 뚫어져라 주시하지 않아도 삑삑거리는 소리가 날 때 바로 추출을 종료하면 되니까 편하겠다 싶었지요. 그런데 카운트다운 기능 하나 더 쓰자고 5만 원이나 되는 스톱워치를 사야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다이소에 갔습니다. ㅋㅋㅋㅋㅋ 결국 저에게 필요한 건 1/100초 단위로 정밀하게 시간을 재는 스톱워치가 아니라, 초 단위로 시간을 표시해주고 시간 다 되었을 때 삑삑거리는 소리나 내어주면 되는 카운트다운 타이머였으니까요. 역시 우리의 친구 다이소는 귀여운 키친타이머를 2천 원이라는 귀여운 가격에 준비해 놓았고, 저는 망설일 것도 없이 물건을 집어들고 계산대를 향했습니다.



 앞치마나 셔츠 앞자락 같은 곳에 고정하기 편하게 뒷면에는 집게가 달려있었습니다. 저는 타이머를 목에 걸고 싶어서, 집안에 굴러다니는 열쇠고리(정확히는, 도장 주머니에 달린 고리였습니다)와 핸드폰 목걸이줄을 꺼내 달아주었습니다. 집게의 생김새가 열쇠고리를 고정하기에 그럭저럭 괜찮은 형태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이소 키친 타이머에는 스톱워치 모드와 카운트다운 모드가 있습니다.


 그냥 Start/Stop 버튼을 눌러 작동을 시작하면 스톱워치처럼 버튼을 누른 이후 경과한 시간을 표시합니다. Start/Stop 버튼으로 중지할 수 있고, 분 버튼과 초 버튼을 동시에 눌러 Reset할 수 있으니 일반 스톱워치와 거의 같은 쓰임새입니다. 1/100초 단위는 없지만요.


 0분 00초가 표시된 상태에서 분 버튼과 초 버튼으로 시간을 설정하고 Start/Stop 버튼을 누르면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0분 00초가 되면 삑삑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 때 Start/Stop버튼을 누르면 비프음을 끊을 수 있습니다. 카운트다운이 진행되는 중에 Start/Stop 버튼을 누르면 중단할 수 있지만, 앞서 세팅한 시간으로 리셋할 수는 없습니다. 분 버튼과 초 버튼을 동시에 눌러 리셋하면 설정한 시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예 : 카운트다운을 4분 15초로 세팅하고 진행하다가 중지했을 때, 리셋을 하면 4분 15초 카운트다운 모드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0분 00초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0분 00초로 돌아간 상태에서 Start/Stop을 누르면 스톱워치처럼 작동합니다. 카운트다운 타이머로 사용하려면 시간을 다시 설정해주어야 합니다. (자주 쓰는 시간이 4분 15초인 게 다행이지, 4분 45초인데 세팅이 날아갔다면… 다시 설정하기 위해 초 버튼만 45번을 눌러야 합니다)




 모든 게 용서가 되는 가격입니다만, 그래도 세 가지는 아쉬웠습니다.


 1) 화면이 안 꺼집니다 : 처음 구입하고서 배터리가 전극과 접촉하지 못하게 막던 필름을 뽑아내면 화면이 켜지는데, 전원을 끌 방법이 없습니다. 이 문제를 지적한 분의 포스팅에 답글을 단 분이 다이소 측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는데, 화면이 켜진 것처럼 보여도 작동중인 상태는 아니라 배터리는 오래 갈 거랍니다. 그걸 보고 안심을 했지요. 답글을 단 분은 1년 째 잘 사용하고 있다 하였고, 저도 3개월 넘게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2) 카운트다운을 진행하다가 중지하면, 원래 카운트다운 시간으로 되돌릴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위에서 이미 말한 내용입니다. 한 번 추출을 시작한 커피와 한 번 조리를 시작한 요리는 기호지세이고 낙장불입이니 키친타이머에게는 없어도 크게 아쉽지 않은 기능이기는 하지만, 처음 이 상황을 겪었을 때는 좀 황당했습니다.


 3) LR41 배터리를 사용합니다 : 열 개 묶음을 1000원 정도에 파는 판매자들도 있지만 그렇게 많이 사서 쓸 일도 없습니다. 1개나 2개씩 구입하기는 힘들고, 시계방을 찾아가면 타이머 값보다 비싼 값을 줘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LR44였다면 다른 미니기기에도 제법 쓰이는 규격이라 배터리를 한 묶음 사서 나눠 쓸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타이머로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물건이라 아직 잘 쓰고 있고 앞으로도 잘 쓸 예정입니다. 굴러다니던 촛대 하나를 집어다가 클립을 활용해 타이머 걸이도 만들어 주었고, 손으로 집어올리기 편한 자리에 놓고서 거의 매일 쓰고 있습니다. 작정하고 구색을 갖춘다면 많은 돈을 순식간에 쓸 수 있는 게 커피 취미지만,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대용품을 찾다 보면 그리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영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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