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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반커피 프로젝트'를 처음 글로 쓰면서 저는 커피를 산미의 유무에 따라 베이스와 톱으로, 바디의 유무에 따라 베이스와 톱을 각각 1/2, A/B로 분류하여 1A, 1B, 2A, 2B의 네 가지 접근법을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각 분류에 잘 들어맞는 가장 전형적인 커피를 나열하면 아마 다음과 같을 겁니다.


베이스1 [-산미][+바디] : 인도네시아

베이스2 [-산미][-바디] : 브라질, 콜롬비아 등

톱A [+산미][+바디] : 케냐

톱B [+산미][-바디] : 에티오피아(습식), 파나마 등


 실제로 마셔본 결과 몇몇 커피는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A의 톱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파푸아뉴기니는 생각보다 산미가 강하지 않았고 B의 톱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예멘이나 에티오피아 건식 역시 생각보다 산미가 강하지 않아 강한 산미를 특징으로 규정한 '톱'에 들어맞지 않는 커피였습니다. (파푸아뉴기니, 예멘, 에티오피아 건식의 산미는 생두의 특성과 로스팅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합니다)


 4분법 프레임에 딱 들어맞는 커피는 의외로 많지 않았고, 저는 '제3의 축'이 될 만한 중간 지점의 커피들을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중간 지점의 커피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을 겁니다. (몇 가지는 다시 마셔 보아야 확정할 수 있겠습니다)


[±산미][+바디] : 파푸아뉴기니

[±산미][-바디] : 멕시코 SHG(?)

[±산미][±바디] : 예멘, 에티오피아 건식,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이런 중간 지점의 커피는 반반커피의 접근법을 뒤흔들지 않으면서 새로운 특성을 추가하는 제3의 커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콜롬비아와 이르가체페를 반씩 섞은 블렌딩은 2B접근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산미는 중간 정도이고 바디는 강하지 않은 커피가 나오겠네요. 이 조합에 멕시코 SHG를 첨가하면 산미를 중간 정도로 유지하고 바디를 강화하지 않으면서 멕시코 SHG의 특성(다크초콜릿과 같은 aroma)을 더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1A접근법에는 [±산미][+바디]를, 1B접근법에는 [±산미][±바디]를, 2A접근법에는 [±산미][±바디]를, 2B접근법에는 [±산미][-바디]를 추가하면 산미와 바디를 유지하면서 제3의 특성을 더할 수 있습니다. (베이스+톱 조합의 특성 상 [-산미][±바디], [+산미][±바디]는 현재 반반커피 프로젝트에서 제3의 커피로 쓰기 애매합니다)




 제3의 커피를 '베이스나 톱의 변형'으로 그 용도를 확장한다면, 지금까지 산미를 중간 정도로 맞추는 반반커피의 형식적 완고함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중간에서 조금 강한 쪽, 중간에서 조금 약한 쪽으로 맞출 수 있는 것이죠.


 인도네시아와 케냐를 반씩 섞은 블렌딩은 1A접근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약 바디를 유지하면서 산미를 조금 강한 쪽으로 맞추고 싶다면, [±산미][+바디] 특성의 커피를 1번 베이스 대신 사용하면 됩니다. 파푸아뉴기니와 케냐를 반씩 섞은 블렌딩을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1번 베이스 대신 [±산미][+바디]를 썼듯, 2번 베이스 대신 [±산미][-바디] 특성의 커피를 쓰면 바디를 유지하면서 산미를 조금 강한 쪽으로 맞출 수 있습니다. 만약 산미를 조금 약한 쪽으로 맞추고 싶다면 A의 톱 대신 [±산미][+바디], B의 톱 대신 [±산미][-바디] 특성의 커피를 쓰면 됩니다.


 앞서 제3의 커피로 쓰기 애매하다고 말했던 [-산미][±바디], [+산미][±바디]는 산미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바디감을 중간에서 조금 강한 쪽이나 중간에서 조금 약한 쪽으로 맞추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콜롬비아+콜롬비아 풀시티, 인도네시아+콜롬비아 풀시티는 전자의 예로, 탄자니아+케냐, 탄자니아+이르가체페는 후자의 예로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이 조합은 사실상 베이스만 2개, 혹은 톱만 2개인 '반반커피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커피'라는 해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고 쓴 적이 있는 이르가체페+하라(또는 예멘 모카) 조합은 B의 톱에 [±산미][±바디]라는 제3의 커피가 섞인 조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산미][±바디]는 베이스나 톱의 대용이라 보기에는 특성이 명확하지 않은 커피여서, 반반커피 프로젝트의 관점에서 볼 때 베이스가 불완전한 커피라 할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든 콜롬비아든, 뭔가 하나를 끼얹어주면 이론적으로 베이스는 명확해지겠지만, 특유의 중독성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론적으로 불완전하더라도 맛이 좋으면 또 그대로 인정하는 융통성과 겸허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반반커피 프로젝트는 저에게 블렌딩을 시도하는 하나의 프레임입니다. 체계를 유지보수하면서 당분간 데이터를 모으다가, 2+1 정도의 느낌으로 제3의 커피를 추가하는 블렌딩을 시도하게 될 것 같습니다. 못 마셔 본 산지를 얼른 돌아보고, 몇몇 산지는 복습(?)도 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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