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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반커피 프로젝트 그 첫번째 글을 올리고 넉 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았지요. 마음에 들었던 조합도 있었고, 그저 그런 조합도 있었습니다. 이쯤에서 한 번쯤 중간결산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마셔본 반반커피 중에 인상적이었던, 또는 반응이 좋았던 조합 몇 가지를 모아 보았습니다.




 먼저 소개하고 싶은 두 가지는 강렬한 맛이 나는 조합입니다.


 1. 에티오피아 하라 + 인도네시아 만델링 <관련 글>


 일명 커피계의 막사.


 쌉쌀함이 강하고 그 결이 거칠어 뭔가 제각기 날뛰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기름기 많은 식사를 하고 나서 한 잔 마시면 입안이 개운해지고 느끼함이 싹 씻겨나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삼겹살이나 자장면을 먹고 난 뒤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식사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 도저히 믹스커피를 끊을 수 없는 분이라면, 우선적으로 시도해 볼 만한 대체재입니다.




 2. 에티오피아 시다모 내추럴 + 과테말라 뉴오리엔트(또는 과테말라 안티구아) <관련 글>


 카페뮤제오 양양 블렌드(시다모 35% + 안티구아 65%)의 영향을 받아 시도한 반반커피입니다. 마침 집에 시다모 내추럴과 과테말라 뉴오리엔트가 있어서 섞어 보게 되었지요.


 쌉쌀하고 톡 쏘는 맛이 납니다. 시다모와 과테말라를 따로따로 마실 때는 쓴 맛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데, 마치 커피에 인삼청을 넣으면 커피의 쓴맛과 인삼의 쓴맛이 섞이면서 훨씬 강한 쓴맛이 나오는 것처럼 시다모와 과테말라를 섞을 때에도 둘의 쌉쌀함이 어우러져 그 강도가 증폭되는 것 같습니다. 잠을 쫓기 위해 커피를 마셔야겠다는 분께 추천해드리고 싶은 조합입니다.




 그 다음은 부드러운 맛이 나는 조합입니다.


 3. 에티오피아 시다모 내추럴 + 브라질 세하도 <관련 글>


 콜드 브루 커피로 추출했을 때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뜨거운 물을 많이 타서 연하게 희석하면 보리차와 같은 구수함과 아주 연해진 와인의 느낌, 그리고 부드럽고 달콤한 뒷맛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습니다. 휴일 아침을 부드럽게 깨우는 커피, 늦은 저녁에 한 잔 마시고 싶지만 잠을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마시는 온화한 커피에 아주 잘 어울리는 조합입니다. 반반커피 프로젝트를 결산할 때, '브렉퍼스트 블렌드(Breakfast Blend)'를 지정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이것을 고르겠습니다.




 그 다음은 묘한 맛이 나는 조합입니다.


 4. 예멘 모카 마타리 +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관련 글>


 일명 안알랴줌 블렌드.


 비교적 비싼 원두를 쓰는 조합이지만 조합을 통해 맛과 향이 탁월하게 좋아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상업적으로는 그다지 좋지 않은 조합이지요. 하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마실 때는 그냥 마일드 커피인데, 맛과 향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으로 마시면 진득한 바디감 안에 숨어 있던 것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묘한 중독성이 있는 조합입니다. 아주 조금 와인의 느낌이 나고, 아주 조금 감귤의 느낌이 나고, 아주 조금 고소하면서, 그다지 쓰지도 않고, 그렇다고 맹탕 같지도 않은 적절한 입 안의 감촉이 느껴집니다. 모카의 맛과 향은 블렌딩 과정에서 줄어들었지만, 모카의 바디감은 여전히 남아서 이런 감촉을 주는 것 같습니다. 콜롬비아를 베이스로 한 마일드 커피와는 다른, 아주 독특한 느낌의 마일드 커피입니다.


 별명을 저렇게 지은 이유는—첫 모금을 마시고 '에이 이게 뭐야' 하던 사람이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며 매력을 느끼고, '무슨 원두로 추출한 커피냐' 물어보면 "안알랴줌ㅋ"라고 대답하고 싶어서 지은 것입니다. (ㅋㅋㅋㅋㅋ) 예멘과 이르가체페는 따로따로 마실 때 와인 같은 느낌과 감귤 같은 느낌(클럽 에스프레소의 이르가체페는 산미가 아주 강해서, 마치 감귤 같았습니다)을 각각 느낄 수 있는 특색 있는 커피지만 섞으면 각자의 특성이 많이 죽어버려서, 블렌딩한 결과물을 마실 때에는 무슨 원두로 추출했는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반반커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마음에 들었던 조합은 많았지만, 이만큼 묘하고 중독성 있던 조합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형편이 조금 더 넉넉해져 조금 가격대가 높은 로스터리의 고급스러운 원두를 주문할 수 있게 된다면, '하우스 블렌드(House Blend)'로 삼고 싶습니다.


 (예멘 모카 마타리를 에티오피아 하라로 대체할 수도 있지만, 촉감이 진득하고 결이 매끄러워 느낌이 고급스러운 것은 예멘 모카 마타리 쪽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무난한 맛이 나는 조합입니다.


 5. 케냐 AA Top + 멕시코 치아파스 SHG <관련 글>


 반반커피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꾸미게 된 조합입니다. 2013년 카페&베이커리 페어에서 구입한 끄레모소의 케냐 AA Top은 풀시티 후반의 강배전이어서 터키시 커피로 마시면 헙@ㅁ@!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쓰고 셨습니다. 스트레이트로 마시기에는 힘이 들어서 멕시코와 반씩 섞게 되었죠.


 중간 정도로 중화된 바디감, 중간 정도로 중화된 산미, 멕시코 SHG의 특성에서 오는 부드러운 감촉과 뒷맛을 그 특성으로 가지는 커피입니다. 바디와 산미 모두 강한 톱을 부드러운 베이스로 감싸는 컨셉의 반반커피로서 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조합입니다.




 6.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 인도네시아 자바 <관련 글>


 일명 예가자바 블렌드.


 적당한 산미와, 적당한 쌉쌀함과, 상당히 인상적이고 복합적인 고소함을 그 특성으로 가지는 커피입니다. 산미가 강한 톱을 바디가 강한 베이스로 받쳐올리는 컨셉의 반반커피로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조합이죠.


 자바는 보통 만델링보다 쓴맛이 덜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생두 특성의 차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자바보다 만델링을 강하게 볶게 마련인 '관습'도 이러한 차이를 만든 중요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쌉쌀하고 거친 만델링이 하라와 잘 어울린다면,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자바는 이르가체페와 잘 어울리는 편입니다.


 안알랴줌 블렌드가 꿈의 하우스 블렌드라면 예가자바 블렌드는 실질적인 하우스 블렌드입니다. 저의 찬장에 예멘 모카 마타리와 이르가체페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보다는 이르가체페와 자바(혹은 만델링)가 동시에 존재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지요. 안알랴줌 블렌드와 같은 독특한 느낌이나 묘한 매력이 있지는 않지만, 무난한 가격의 원두로 무난한 맛을 내어 주는 보편타당한 블렌드라는 점에서 그 실용성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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