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에 가기'라는 주제로 글을 준비하면서 쓰고 싶었던 굵직한 이야기들은, 앞의 글들을 통해 대부분 풀어낸 것 같습니다. 이번 글은 제품의 '숨은 가격'—가격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사용하다 보면 어떻게든 우리에게서 돈과 시간과 수고를 빼가는 것들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익숙한 내용이나 상식적인 내용도 많겠지만,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간다는 생각으로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상당히 조야한 분류법이지만, '발생주의적 사고'와 '복식부기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이재(理財)에 밝고 '현금주의적 사고'와 '단식부기적 사고'에만 익숙한 사람은 이재에 어둡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시를 좀 들어볼 생각이었지만, 단순한 예시는 디테일을 껴안지 못하고 디테일을 충분히 살린 예시는 명쾌하지 않아..
예전 글 에서, 저는 '한 방에 가기'를 조건부 지지하면서 다음 조건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 오래 쓸 게 확실하다면. - 내가 원하는 성능을 갖춘 제품 중 가장 저렴한 축에 든다면.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틀린 데가 없는 조건들이지만 아주 추상적이지요. 오래 쓸 게 확실한지, 내가 원하는 성능을 갖춘 제품 중 가장 저렴한 축에 드는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당시에는 판단이 서지 않아 그쯤에서 글을 마무리지었습니다만, 영기준예산(ZBB, Zero-Base Budgeting)의 의사결정패키지라는 것을 얼마 전 알게 되었고 이거다 싶어 후속편을 쓰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덕질하는 데 쓸모가 있나 봅니다. 편의상 다음 상황을 가정하겠습니다. 당신은 에스프레소 머신을 한 대 사고 싶고, 그..
가격대 성능비는 상당히 간단하고 직관적인 기준입니다. 제품의 가격과 성능을 알면 가성비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용편익분석이라도 하려면 기회비용과 소비자잉여를 알아내야 하는데, 이게 보통 수고로운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큰 돈을 움직이는 사업에서는 보통 수고로운 게 아닌 비용편익분석이 자주 쓰입니다. 가격대 성능비에는 없고 비용편익분석에는 있는 '그 무엇'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가격대 성능비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요? 가격대 성능비(이하 가성비)는 제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쓰일 수는 있어도 제품 구입의 타당성이나 구입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쓰기에는 좋지 않습니다. 가성비라는 기준이 무엇을 놓친다기보다는, 가성비라는 기준을 잘못 적용함으로써 무언가를 놓치게 된다고 말하는 편이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