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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글이 100개를 넘기도록 커피를 내리는 물에 대해서는 한 번도 다루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습니다. 저는 커피를 추출할 때 수돗물 대신 생수나 약수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커피의 맛을 돋우거나 제어하기 위해 특정한 물을 선택할 정도로 물에 신경쓰지는 않습니다. 물에 녹은 커피 성분에 비해, 원래 물에 녹아 있던 고형물(TDS : Total Dissolved Solids)의 양이 지극히 적기 때문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렇게 포스팅을 하게 되었으니, 잠깐만 신경을 써서 알아볼까 합니다.


 물에 녹은 커피 성분의 양은 얼마나 될까요? 확실한 측정을 원한다면 원두를 갈아 커피를 추출하고, 액체의 양을 재고 물기를 날린 다음 남아 있는 고형물의 무게를 재면 되겠지요. 하지만 귀찮은 관계로, 추정치를 사용하겠습니다. 네스카페 수프리모 크레마 1봉이 1.8g이니, 이만큼이 물에 녹는 성분이라 생각하고 계산하는 겁니다.


 네스카페 수프리모 크레마 1봉의 1.8g중 1.6875g만 물에 녹는다고 가정하고[각주:1], 1봉을 225mL의 증류수에 녹인다고 가정해 봅시다. 커피 성분 0.75g이 100mL의 물에 녹은 꼴이니, mg/L로 환산하면 7,500mg/L입니다. 이것이 조금 짜게 추정한, 물에 녹은 커피 성분의 양입니다. (편의상 이 글에서는 물에 녹은 커피 성분의 양을 커피-TDS로 줄여 부르겠습니다)


 커피-TDS를 조금 넉넉히 잡아서, 내용물 1.8g이 모두 물에 녹는다고 가정하고 1봉을 180mL의 증류수에 녹인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1g이 100mL의 물에 녹은 꼴이니, 이 때의 커피-TDS는 10,000mg/L입니다.


 네스카페 수프리모 크레마를 뜨거운 물에 녹이면 원두로 내린 커피의 맛에 그럭저럭 근접하니, 편의상 전자의 커피-TDS를 후자에도 적용하겠습니다. 원두로 내린 커피의 커피-TDS도 7,500~10,000정도가 되리라 추정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먹는 물의 TDS가 대략 어느 범위에서 움직이는지 알아보겠습니다.


 WHO의 <자료>[각주:2]에 의하면 먹는 물이 TDS 300mg/L미만이면 훌륭하고(Excellent), 300-600은 좋으며(Good), 600-900은 괜찮다(Fair)고 합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1,000mg/L도 일반적으로 용인될 만한 수준이라고 하고요.


 가이드라인을 살폈으니, 실제 먹는 샘물 제품(이하 샘물)의 TDS는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국내 샘물 생산자의 홈페이지에는 TDS가 명시되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 외국 제품을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쿠아마에스트로(Aquamaestro)라는 샘물 판매자의 <프랑스>, <영국과 아일랜드>, <이탈리아> 제품 컬렉션을 둘러보면 볼빅의 TDS는 109mg/L, 에비앙의 TDS는 357mg/L임을 알 수 있습니다. Speyside Glenlivet는 58mg/L로 아주 낮은 TDS를 보이고, Wattwiller, San Pellegrino, Badoit, Ferrarelle는 1,092~1,270mg/L로 상당히 높은 TDS를 보입니다. Contrex는 2032mg/L로 예외적으로 높은 TDS를 보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샘물 중에 TDS가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 것이 삼다수입니다. TDS 값 자체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칼슘 2.2~3.6, 칼륨 1.5~3.4, 나트륨 4.0~7.2, 마그네슘 1.0~2.8(단위 : mg/L)이라는 무기물질 함량은 알려져 있습니다.[각주:3] Speyside Glenlivet의 성분표를 보면 칼슘 13, 칼륨 0.7, 나트륨 4.3, 마그네슘 2.1로 삼다수와 그럭저럭 유사한 패턴을 보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삼다수의 TDS가 Speyside Glenlivet와 유사하리라, 즉 58mg/L에 가까울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TDS값 357mg/L인 에비앙[각주:4] 정도만 되어도 특징적인 물맛이 납니다. 처음으로 에비앙을 맛보았을 때, 무척 텁텁하고 뻑뻑한 느낌이 나서 '이게 뭐야' 싶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니까요. 당시 저는 삼다수보다 무기물질 함량이 좀 더 높은 진로 석수[각주:5]를 주로 마셨는데도 말이지요.[각주:6]


 커피의 맛을 돋우거나 제어하기 위해 특정한 물을 선택하는 상황을 가정할 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 TDS값 60mg/L - Speyside Glenlivet, 삼다수(추정) 등 연수 혹은 연수에 가까운 물.

 2. TDS값 357mg/L - 에비앙과 같이 고형물이 제법 녹아 있는 물.

 3. TDS값 1250mg/L - Wattwiller, San Pellegrino, Badoit, Ferrarelle 등 고형물이 많이 녹아 있는 물.


 1의 물로 커피를 추출하면 [물-TDS]:[커피-TDS]의 비는 1:125. 총 TDS에서 물-TDS가 차지하는 비율은 0.8%입니다.

 2의 물로 커피를 추출하면 [물-TDS]:[커피-TDS]의 비는 1:21. 총 TDS에서 물-TDS가 차지하는 비율은 4.76%입니다.

 3의 물로 커피를 추출하면 [물-TDS]:[커피-TDS]의 비는 1:6. 총 TDS에서 물-TDS가 차지하는 비율은 14.29%입니다.


 ※총 TDS는 [물-TDS]+[커피-TDS]입니다.


 이 숫자들을 바탕으로 짐작해 보면—1의 물을 사용한다면 커피 맛에 물이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고 2의 물을 사용한다면 물이 커피 맛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으며, 3의 물을 사용한다면 물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리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TDS값을 논하면서 언급한 4가지 고형물 성분(칼슘, 칼륨, 나트륨, 마그네슘)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알칼리 금속 혹은 알칼리 토금속으로써, 커피의 상큼한 신맛을 내는 주요한 유기산[각주:7]인 구연산(=시트르산, citric acid), 사과산(=말산, malic acid), 젖산(=락트산, lactic acid)과 반응하여 염(salt)을 생성합니다. 커피의 산미를 줄이고 짠맛이나 쓴맛을 보탠다는 이야깁니다.


 구연산칼슘[각주:8], 구연산나트륨[각주:9], 구연산칼륨[각주:10]은 짠맛이 나고, 구연산마그네슘[각주:11]은 고약한 맛이 난다고 합니다. 젖산칼슘은 빵의 pH저하를 위해 사용한다니, 젖산이 칼슘과 반응하여 젖산칼슘이 되면 신맛이 줄어들 것이 확실합니다. 젖산나트륨[각주:12]젖산칼륨[각주:13]은 조금 짭짤한 맛이 나며, 젖산마그네슘[각주:14]은 불쾌한 맛이 난다고 합니다. 말산 쪽은 눈에 띄는 자료가 없지만, 말산염이라고 딱히 맛이 좋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료를 조사하며 Coffee & Tea의 2012년 4월호 기사 <커피, 아무 물이나 써도 되나요>, 테라로사 라이브러리의 <커피 추출과 물>, <2%를 완성시키는 98%>를 읽고 나니 '커피를 내리는 물에 너무 신경쓰지도 말고 너무 소홀하지도 말자'는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저 세 편의 글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내용은 'TDS값이 상대적으로 높은 물은 커피의 신맛을 줄인다'='적당한 TDS값의 물은 커피의 산도를 조절해 준다' 정도입니다. 여기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사람들의 의견은 갈립니다.


김민선[각주:15] : TDS가 1L당 300mg이 넘는 미네랄이 많은 물을 커피에 사용하면 추출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 이런 경우 커피 맛은 밋밋해진다. 반대로 … TDS가 낮으면 굉장히 빠른 확산이 일어나 커피의 자극적인 신맛, 쓴맛 등을 유발한다.


김동욱[각주:16] : 미네랄 함량이 너무 많으면 맛 적으로는 쓴 맛의 커피를, 너무 적으면 밋밋한 커피가 만들어지고…


김준기, 한창주[각주:17] : 웅진코웨이 정수의 경우 쓴 맛이 강했으며, 식으면서 신맛이 살아나는 경향을 보였다. 루소랩 정수의 경우 무색무취의 중성적인 물로, 커피 맛에 크게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려웠으며, 독특한 냄새가 났다는 의견이 많았다.


신정민[각주:18] : 이번 모임의 결과 연수시설이 갖춰진 루소랩 물과 웅진코웨이 정수기 물이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을 확인했다. 연수가 커피의 좋은 맛을 잘 끌어내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황정윤[각주:19] : 개인적으로 순수 그냥 맹물, 그냥 정수기 물이 가장 커피 맛 잘 살려내서 놀라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석한 사람들의 평가가 모두 다 다르고, 느끼는 것도 달라 재밌었다.


 테라로사 라이브러리에 올라온 두 편의 글이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 두 사람 중 적어도 한 사람은 반드시 틀릴 수밖에 없겠지요. Coffee & Tea의 기사는 한 마디로 카오스입니다. 신정민씨와 황정윤씨 중 적어도 한 사람은 확실히 상황을 잘못 짚은 게 틀림없습니다. 실험 참가자의 반응을 정리한 기자의 내용과 각 참가자의 반응을 비교해 보아도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백가쟁명을 멀리하고 SCAA의 표를 가까이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Characteristic

Target

Acceptable Range

Odor¹

Clean/Fresh, Odor Free

-

Color²

Clear Color

-

Total Chlorine

0mg/L

-

TDS³

150mg/L

75-250mg/L

Calcium Hardness

68mg/L

17-85mg/L⁴

Total Alkalinity

40mg/L

at or near 40mg/L

pH

7.0

6.0-7.5

Sodium

10mg/L

at or near 10mg/L


1 Odor is based on sensory olfactory determination.

2 Color is based on sensory visual determination.

3 TDS measured based on 4-4-2 conversion.

4 원문에서는 Target이 4 grains of 68mg/L, Acceptable Range가 1-5 grains or 17mg/L, 85mg/L이었음. '4 grains of…'는 '4 grains or…'의 오타로 추정됨. (옮긴이주)


 SCAA가 커피 추출에 적절한 물의 표준 수질을 정리하여 제시한 것으로, <커피 추출과 물>에서 재인용한 표입니다. 결국 이 범위에 드는 물이 SCAA가 보기에 '용인될 만한' 수준인 것이죠. 표에서 제시한 Calcium Hardness를 탄산칼슘(calcium carbonate)의 함량으로 본다면, WHO의 <자료>[각주:20][각주:21]를 참고하였을 때 SCAA가 제시한 수질의 물은 연수 혹은 연수에 가까운 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샘물 중에는 볼빅이 저 수질에 상당히 가까운 것 같네요.




 카페 관계자의 입장에서는 맛을 유지하고 머신을 잘 관리하기 위해[각주:22] 연수기를 설치하여 TDS를 제어할 필요가 있으며, 커퍼의 입장에서는 커핑을 할 때 원두의 산미를 정확하게 느끼기 위해 TDS나 알칼리도(total alkalinity) 등이 일정 범위 안에 드는 물을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외의 커피 애호가에게 TDS, 물맛, 수질과 같은 문제는 일단은 나쁘지만 않으면 되는—일종의 선택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연수 혹은 연수에 가까운 물을 선호합니다. 저는 커피의 산미를 좋아하므로, 물에 녹아 있던 고형물이 유기산과 반응하여 신맛을 줄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물은 통제변인입니다. 새로 산 원두, 처음 시도하는 블렌딩, 처음 도전하는 추출법이 어떤 맛을 내어주는 지 기존의 원두 · 블렌딩 · 추출법과 비교하려면, 물이 커피의 맛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일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 크게 깨달았을 때 "이 원두는 산미가 강하고 쓴맛 또한 강하니 칼슘이 많고 마그네슘이 적은 물로 다스려야 마땅하니라."같은 말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게 언제가 될 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각주


  1. 나머지 0.1125g은 녹지 않고 바닥에 가라앉는 미분으로 가정합니다. 원두 1알이 약 0.15g니, 미분의 무게로 잡은 0.1125g은 원두 1알이 조금 안 되는 양입니다. 원두를 부수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1알만 부수어도 프리미엄 스틱커피 1봉에 들어간 원두 미분보다 훨씬 많은 양의 원두 가루가 생깁니다. [본문으로]
  2. Total dissolved solids in Drinking-water [본문으로]
  3. 삼다수 제품 라벨에서 직접 확인한 값입니다. (2013/09/14 08:15 제조) [본문으로]
  4. 칼슘 80, 칼륨 1, 나트륨 6.5, 마그네슘 26(mg/L). [본문으로]
  5. 칼슘 15.0~49.6, 칼륨 0.8~2.4, 나트륨 2.1~9.2, 마그네슘 1.7~5.7(mg/L). [본문으로]
  6. 참고로 볼빅은 칼슘 11.5, 칼륨 6.2, 나트륨 11.6, 마그네슘 8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외국 샘물이면서 진로 석수와 그럭저럭 비슷한 구성을 보입니다. 앞에서 에비앙과 함께 볼빅이 언급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7. http://roastmagazine.com/education/RoastersDictionary.pdf ('acidity' 항목) [본문으로]
  8. Like citric acid, calcium citrate has a sour taste. Like other salts, however, it also has a salty taste. [본문으로]
  9. 무취, 산뜻한 짠맛이 있고… [본문으로]
  10. It is odorless with a saline taste. [본문으로]
  11. Magnesium citrate tastes bad to most people who drink it. [본문으로]
  12. …that has a mild saline taste. [본문으로]
  13. …liquid with mild salty taste; [본문으로]
  14. nasty tastes; [본문으로]
  15. <2%를 완성시키는 98%>의 글쓴이. (로스터) [본문으로]
  16. <커피 추출과 물>의 글쓴이. (바리스타) [본문으로]
  17. <커피, 아무 물이나 써도 되나요>의 글쓴이(=기자). [본문으로]
  18. <커피, 아무 물이나 써도 되나요>의 실험 참가자. (커피 바리스타, 커피클럽 회원) [본문으로]
  19. <커피, 아무 물이나 써도 되나요>의 실험 참가자. (소방공무원, 커피클럽 회원) [본문으로]
  20. Water containing calcium carbonate at concentrations below 60 mg/l is generally considered as soft; 60–120 mg/l, moderately hard; 120–180 mg/l, hard; and more than 180 mg/l, very hard (McGowan, 2000). [본문으로]
  21. McGowan W (2000) Water processing : residential, commercial, light-industrial, 3rd ed. Lisle, IL, Water Quality Association. [본문으로]
  22. 위에서 언급한 세 편의 글에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또 다른 내용이 있는데, 미네랄(혹은 수용성 염류)가 많이 녹아 있는 물을 에스프레소 머신에 공급하면 보일러(혹은 보일러 관)에 스케일이 낀다는 점이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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