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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원두의 품종, 재배 환경[각주:1], 농법[각주:2], 수확법[각주:3], 가공법, 로스팅, 유통 및 보관 환경, 추출법… 이 중에서 마케팅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을 두 가지 꼽는다면 산지(←재배 환경)와 원두의 품종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른바 '세계 3대 커피'는 단지 자메이카, 하와이, 예멘 바니 마타르[각주:4]에서 생산되었다는 이유로, 특히 한국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팔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블루마운틴은 자메이카의 국가적 관리를 받고[각주:5], 예멘 스페셜티 커피 상회(Yemen Specialty Coffee Ltd.)를 통해 수출되는 커피는 2~3회에 걸쳐 결점두를 골라 내[각주:6]는 등의 QC를 받기는 합니다만, 잘 해 봐야 '하이 커머셜'—일반 등급의 커피 중 상등품에 속하는 정도의 물건이 COE 커피보다 아득하게 비싼 값에 팔릴 자격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산지가 커피의 가격과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극단적인 예인 셈이죠.


 쿠바 크리스털마운틴, 파나마 다이아몬드마운틴, 동티모르 카브라키마운틴과 같은 산 시리즈 네이밍은 어쨌든 오리지널(?)인 '블루마운틴'을 슬쩍 피했습니다. 하지만 파푸아뉴기니 마라와카 블루마운틴은 그냥 블루마운틴을 썼지요. 이들의 광고 문구 중에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과 동일한 티피카 품종"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게샤 혹은 게이샤로 알려진 게샤 품종을 전면에 내세운 파나마 원두, 원종 이름 투샤(tusha)를 전면에 내세운 케냐 원두가 다른 파나마 원두나 케냐 원두보다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합니다. 이들은 원두의 품종이 마케팅의 수단이 되는 예들입니다.




 사실, '유전 대 환경'은 작년 8월에 밑그림을 그려 놓고 여덟 달이 지나도록 쓰지 못한 어려운 주제입니다. 대략 그 무렵 투썸플레이스 쌍문점 커피교실의 강사에게 비슷한 주제로 질문을 했는데, (재배지가 일정 수준 이상이라는 전제 하에) 재배환경보다는 품종이 커피 맛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요지의 답변을 받았고, 뭔가 석연찮은 느낌에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두의 품종이 상당히 특징적인 맛과 향을 지녔다고 보는, 따라서 유전 대 환경 중 유전 쪽에 상당한 무게를 둔다고 할 수 있는 글을 몇 개 뽑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Typica : 상큼한 레몬향, 꽃향 등을 느낄 수 있고, 달콤한 뒷맛이 있다.

 Bourbon : Bourbon 특유의 맛과 향을 가졌는데, 와인에서 느낄 수 있는 새콤한 맛, 달콤한 뒷맛 등이며, 이를 Bourbon Flavor라고 부른다. —<기초 커피 바리스타>[각주:7]


 게이샤종 : … 파나마 게이샤종의 향미는 화려하고도 과일 향이 진하며, 누가 마셔도 기억에 남을 만큼 강한 개성이 있다. —<커피 교과서>[각주:8]


 다만, 같은 대상을 두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외나무다리 매치'가 벌어지기도 하므로 커피 관련 서적에 나온 품종과 관련된 평을 100% 믿을 수는 없습니다.


 SL-28은 … 케냐 커피 고유의 신맛의 풍부함을 떨어뜨림으로써 케냐 커피의 다채로움을 잃어버리게 했다는 애호가들의 비판이 많다. —<인디커피교과서>[각주:9]


 SL28은 특히 향미가 뛰어난 품종이며, 케냐 커피의 훌륭한 특징(감귤계와 와인을 연상시키는 산과 바디가 조화를 이루며 맑고 깨끗한 맛)은 이 품종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커피 교과서>[각주:10]




 반면 환경 쪽에 큰 무게를 두는 글도 찾아볼 수 있지요.


 커피의 향미는 생두의 질에 영향을 받는데, 생두의 질은 대부분의 경우 생산지에 의해 결정된다. 커피의 품종이 좋아야 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품종보다는 생산지가 우선한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우선 커피는 크게 고급 품종인 아라비카 종과 저급 품종인 로부스타 종으로 나뉘는데, 아라비카는 저지대에서 잘 자라지 못하고 주로 고지대에서만 자라고, 로부스타는 그 반대다. 다른 하나는, 아라비카 종에도 여러 변종들이 있지만 그 변종들이 만들어진 가장 중요한 원인이 생산지의 자연환경이라는 점에서다. (중략)

 같은 지역에서 재배한 아라비카 변종들이 갖는 차이를 인간의 미각으로 구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주장이 있는 것도 그래서다. 거의 모든 생두가 생산지의 이름으로 거래되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인디커피교과서>[각주:11]




 일본인이 지은, 혹은 일본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 사람이 저술한 커피 관련 서적을 읽다 보면 티피카(typica)와 부르봉(bourbon)은 생산성이 낮지만 맛이 좋고, 이들로부터 유래한(돌연변이나 교잡 등으로 만들어낸) 문도노보(mundo novo), 카투라(catura), 카투아이(catuai) 등은 생산성이 높지만 맛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식의 이분법적 프레임이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만약 저 프레임대로 문도노보, 카투라, 카투아이 같은 품종의 맛이 별로이고 환경적 요소로 품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면, 이들 품종은 절대로 COE 커피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경쟁에서 밀릴 테니까요. 하지만 제가 이번에 받아든 온두라스 COE 2013 #12 Guacamaya는 카투아이 품종이었습니다. 어쩌면 품종은 (아라비카 대 로부스타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결정적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직 '이거다' 싶은 확신은 없습니다. 다만 커피 가공법에 대한 기사를 번역하고 세계 이곳저곳의 커피를 마시면서 '그래도 유전과 환경 중 하나를 고른다면 환경 쪽이 좀 더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듭니다. 품종, 가공법, 로스팅 정도와 같은 다른 요소는 동일하고 산지만 다른 원두들을 비교시음해 보고, 또 산지, 가공법, 로스팅 정도와 같은 다른 요소는 동일하고 품종만 다른 원두들을 비교시음해 본다면 뭔가 확실해지겠지만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원두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언젠가는 이 주제로 비교시음을 해 보고 글을 쓰고 싶습니다.




 각주


  1. 햇빛, 강우량, 고도(와 이에 따른 일교차) 등. [본문으로]
  2. Shade grown coffee, sun grown coffee. [본문으로]
  3. 골라 따기, 훑어 따기(혹은 고르지 않고 따기), 기계로 수확하기 등. [본문으로]
  4. Mattari는 Matar의 속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켄타우루스 자리는 Centaurus, 켄타우루스 자리'의'는 Centauri인 것처럼—따라서 '알파 센타우리'는 '센타우루스(켄타우루스) 자리의 알파별'이 되는 것처럼, '모카 마타리'는 '마타르의 모카'로 풀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같은 원리로 사나니(San'ani)는 '사나(San'a)의', 히라지(Hirazi)는 '히라즈(Hiraz)의'로 각각 풀이됩니다. [본문으로]
  5. '법률로 지정된 블루마운틴 영역에서 재배되고 법률로 지정된 정제 공장에서 가공처리된 커피'에만 블루마운틴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하보숙, 조미라 (2010) <커피의 거의 모든 것> 열린세상. pp.170-197 (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6. 전광수 외 (2008) <기초 커피 바리스타> 형설. pp.168-174 (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7. 전광수 외 (2008) <(기초) 커피 바리스타>형설. p.36 (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8. 호리구치 토시히데 지음, 윤선해 옮김 (2012) <커피 교과서> 달. pp.20-22 (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9. 장수한 (2012) <인디커피교과서> 백년후. pp.148-167 (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0. 호리구치 토시히데 지음, 윤선해 옮김 (2012) <커피 교과서> 달. pp.156-197 (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11. 장수한 (2012) <인디커피교과서> 백년후. pp.24-2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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