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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 : 온두라스 COE 2013 12위 Guacamaya (Honduras COE 2013 #12 Guacamaya) 100g

 입수일 : 2014. 4. 12.

 출처 : 한국커피 (2014 서울커피엑스포에 설치된 부스에서 구입)


 저의 스물여덟 번째 커피는 온두라스 COE 2013 12위 Guacamaya였습니다. 집안에 다시 커피잔치가 벌어져서, 스물여섯 번째 커피부터 서른두 번째 커피까지는 구입한(혹은 계획한) 순서가 아닌 다 마신 순서대로 리뷰를 포스팅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원두의 COE Score는 87.63점입니다.



 선물받은 커피입니다. 단짝과 함께 서울커피엑스포를 보러 갔다가 선물받은 것입니다.


 올해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커피엑스포는 작년 킨텍스에서 열린 카페&베이커리 페어 때보다 훨씬 많은 원두 판매자가 참여해 부스를 차린 것 같았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놀라운 가격에 팔리고 있는 원두가 저를 유혹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 엑스포에서 구입할 수 있는 원두에는 한계가 있었고, 단지 싸다는 이유로 원두를 골라들 수는 없었습니다.


 우선 순위로 점찍어 두었던 로스팅하우스의 부스에는 시음을 해 보려는 사람들이 부스를 빙 두르며 줄을 서 있었습니다. 판매대에 COE가 몇 종류 올라와 있었지만 차분히 뭔가 고르며 결정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부스에 올라온 제품의 판매 가격이 로스팅하우스 온라인 쇼핑몰에 비해 그다지 싼 것 같지도 않았고, 포장에 커핑노트가 적혀 있지 않아 시음 없이 제품을 선택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다음 순서로 잡아둔 한국커피 부스로 발걸음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한국커피는 자회사 팩토리 670을 통해 로스팅한 원두를 판매하는데, 팩토리 670은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기회에 사 봐야지요. 컵 오브 엑설런스 2013 경매 결과를 정리할 때 알게 된 회사이니 어쩌면 COE 커피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한국커피 부스에서는 온두라스 COE의 시음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부스 저 부스에서 커피를 홀짝여서 꽤나 얼큰해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무척 맛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곧바로 '이거 사 줘'를 시전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온두라스 COE 2013 12위를 손에 넣었습니다.


 파보일드 방식으로 추출한 온두라스 COE 2013 12위(이하 온두라스 COE)의 첫 인상은 COE에 기대했던 것에 비해서는 무난했습니다(사실, COE를 마시면 신이라도 영접할 줄 알았습니다). 다크초콜릿의 느낌이 났는데—지금까지 제가 다크초콜릿이라 표현한 것은 향과 입 안의 감촉에 한한 경우가 많았지만, 온두라스 COE는 맛에서도 '다크초콜릿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카카오 함량이 99%라는 초콜릿을 먹었을 때의 쌉쌀하고 조금은 텁텁한, 그런 맛이었거든요.


 제가 '산미가 올라오기 전의 커피'라 표현하는, 갓 추출한 뜨거운 커피는 경우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씁니다. 쓴맛이 제일 강하지요. 다크초콜릿과 같은 느낌[각주:1]은 이 쓴맛을 부드럽게 감싸주어 커피의 첫 인상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줍니다. 다크초콜릿 같지도 않고 그 외의 달달한 aroma[각주:2]도 없는 커피의 첫 모금은 '쓰다'는 것 외에는 마땅히 붙여줄 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원두의 질이 좋지 않으면 탄내가 나기도 해서, 조금씩 맛을 보며 산미가 올라올 때만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온두라스 COE의 첫인상은 더할 나위 없이 무난하고 좋았습니다. 아마 만델링이나 자바에서 이런 맛이 났다면 저는 그 커피를 "충분히 훌륭한 커피"라 평했을 겁니다. 즉 온두라스 COE는 산미가 올라오기 전에도 충분히 훌륭한 커피이며, 산미가 올라오고 나서는 더 이상 표현할 길이 없이 좋은 커피인 셈입니다.


 적절한 온도에 진입하면 좋은 산미가 올라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 핀카 히메네스에 가까운 히비스커스 느낌의 신맛이었고, 잔의 바닥으로 갈수록 맛이 진해졌는데, 특히 첫맛이 히비스커스와 같고 뒷맛이 감귤과 같은 산미의 복합적인 양상이 무척 고급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온두라스 COE는 저에게 '한 잔의 커피가 가질 수 있는 완성도'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커피입니다. 산미, 쌉쌀함, 복합적인 맛, 입 안의 감촉(바디감), 산미가 올라오기 전의 첫인상, 산미가 올라오면서 달라지는 맛의 전체적인 흐름… 처음으로 마셔 본 컵 오브 엑설런스는 저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각주


  1. 지금까지 리뷰한 원두 중 제가 다크초콜릿과 같은 느낌이 난다고 언급한 것에는 멕시코 치아파스(2013-10-25), 쿠바 크리스털마운틴(2013-11-09), 엘살바도르(2013-11-11), 과테말라 라 벨라(2014-04-18)가 있습니다. [본문으로]
  2. 과테말라 안티구아(2013-11-02)를 리뷰하면서 aroma로서 '꿀과 같은 달콤한 향'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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