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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차례에 걸친 시도 끝에 150ml의 물에 18g의 원두를 설탕 정도의 굵기(모카포트에 쓸 만한 굵기)로 갈아 넣고 20시간 정도 추출하는 콜드 브루 커피 추출법을 고안했지만,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산미였죠. 쌉쌀한 맛과 향기는 무척 진했지만, 산미는 제가 기대한 만큼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콜드 브루 커피 대신, 뜨거운 물로 추출한 커피를 차게 식혀 보관하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물

 - 2500mL 유리포트(약탕기 유리포트)

 - 유리포트를 찬물에 담글 때 사용할 바가지/대야

 - 유리포트를 식힐 찬물, 커피 추출 도구, 커피 보관 용기


 ① 뜨거운 물로 커피를 추출합니다. (터키시 커피든, 티포트 브루 커피든, 그 외의 방법이든)

 ② 유리포트에 커피를 옮겨붓습니다.

 ③ 바가지/대야에 찬물을 채우고 유리포트를 담가 식힙니다.

 ④ 필요하다면 찬물을 갈아주면서 커피를 충분히 식힙니다.

 ⑤ 충분히 식은 커피를 보관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습니다.


 선택 사항 : 커피를 옮겨부을 때 필터를 사용해서 미분을 걸러냅니다.




 '아이스 드립'이라는 간편한 방법도 있지만, 아이스 드립에 사용할 얼음을 조달하는 것이 전혀 간편하지가 않습니다(…). 건새우와 국물멸치가 자리잡은 냉동실에서 얼린 얼음에 비린내가 안 날 리 없으니 집에서 얼음을 얼리긴 힘들었고요. 편의점에서 파는 아이스커피 세트 중에서 얼음이 담긴 컵만 따로 500원~600원 정도에 파는 것을 사와서 쓰기에는 양이 적어 감당이 되지 않고(펄펄 끓는 터키시 커피 500mL를 부으면 흔적도 없이 녹아버립니다), 가게에서 파는 돌얼음은 양이 너무 많아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찬물로 커피를 식히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물을 한 번쯤 갈아 주면 그럭저럭 커피가 식고, 필터를 사용해서 미분을 걸러내는 동안 다시 식어서 냉장고에 넣을 만한 온도까지 내려갔습니다. (커피 식히는 데 쓴 물은 따로 모아뒀다가 설거지 할 때 헹굼물로 쓰면 됩니다) 커피를 식히고 미분을 거르는 데 공이 들기는 하지만 한 번에 1리터쯤 생산해서 넣어두면 며칠을 마실 수 있으니 매번 커피를 끓이고 뒷정리하는 수고는 덜 수 있어서 할 만 하다 싶더군요.


 진한 커피 1리터를 생산하는 데 원두 50g 정도가 들어가고, 이렇게 생산한 커피는 뜨거운 물을 섞어 1.5~2배 희석을 해도 맛이 좋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커피 1.5~2리터를 생산한 셈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콜드 브루 커피도 1.5~2배 희석이 가능한데, 같은 원두를 들였을 때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추출법이 훨씬 많은 커피를 생산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뜨거운 물로 추출한 다음 식힌 커피는 처음부터 찬물로 추출한 콜드 브루 커피에 비해 산미의 표현이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생산성 측면에서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고요. "숙성"이라는 미지의 요소가 남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콜드 브루 커피나 더치 커피의 숙성이라는 개념에 많은 회의를 품고 있습니다. 효소의 작용도 없고 보관 용기(위스키를 숙성할 때의 오크통이라든가)와의 상호 작용도 없는, 유리병에 담은 더치 커피에서 특별히 바람직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 않거든요.


 그리하여 저는 냉장고에 보관하는 커피를 대량 생산할 때 콜드 브루 커피로 추출하는 대신 프렌치 프레스에 준하는 방법으로 추출한 다음 유리 약탕기로 식히는 방법으로 갈아탔습니다. 가끔씩 콜드 브루 커피 특유의 진한 향이 그리울 때가 있는데… 다음 번 추출할 때 케냐의 절반은 콜드 브루 커피로, 나머지 절반은 뜨겁게 추출하여 식힌 커피로 만들어 비교해 보고 반반씩 섞어 마셔도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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