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컵 프로파일 (Cup Profile)


 에티오피아 커피의 특성 중 제(Mark McKee)가 특히 높이 사는 것은, 지역마다 특성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하라(Harrar)는 확연한 나무(woodsy)[각주:1], 육두구(nutmeg), 계피(cinnamon)의 아로마를 가지며 커핑을 진행하는 동안 향미가 일정한 경향성을 갖습니다. 시다모(Sidama)는 풀시티 초중반[각주:2]으로 로스팅했을 때 자두(plum), 살구(apricot), 복숭아(peach), 꽃과 같은 아로마, 딸기류(berry)[각주:3]를 떠올리게 하는 특성을 갖는 경향이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원두를 로스팅할 때는 원두의 색이 제각각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합니다. 1차 크랙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특히 그러하지요. 하지만 면밀히 관찰하다 보면 1차 크랙이 시작되고 나서 온도가 10도 이내[각주:4]로 상승했을 때 원두의 색은 균일해집니다. 따라서 (약배전을 원하는 로스터는) 이 포인트를 2차 크랙이 시작되기 전으로 앞당기는 방향으로 원두를 다스릴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에티오피아 원두는 이 포인트에서 색이 균일해집니다. 빛깔이 제각각이라 '무지개 커피(rainbow coffee)'라는 별명이 붙을 만한 "야생마" 하라(Harrar)는 예외지만요.[각주:5]


 워싱턴 주 Redmond에 위치한 Caffe Lusso Coffee Roasters의 소유주이자 로스터인 Philip Meech는 앞서 말한 커피를 평가하며 흥미로운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이르가체페인 점을 감안해도 이 커피의 향미는 대단히 투명합니다(ultra clean). 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심지어 2차 크랙이 일어나기 직전[각주:6]에 끝마치는 로스팅을 권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생두의) 본래 특성이 손실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거든요." Meech는 이러한 약배전은 가공 과정(milling and washing)[각주:7]에 문제가 없는 원두에 한해 할 만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약배전은 가공 과정의 문제로 인한 결점[각주:8]을 두드러지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Meech는 커피 가루에 물을 주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베르가모트(bergamot), 자스민, 그리고 레몬을 떠올리게 하는 fragrance를 맡았습니다. 이는 베르가못과 자스민의 주된 특성을 이루었고 레몬향이 도드라진 커핑 결과와 일치한 것이었습니다.




 미래


 에티오피아 커피의 미래는 전도유망해 보입니다. (커피의 고향이라는) 전통을 가꾸면서 품질 관리로 앞서나가려 꾸준히 노력한다는 점에서, 특히 앞서 살펴본 사람들[각주:9]의 노력을 볼 때는요. 하지만 극복해야 할 방해물들도 많이 있습니다.


 1974년부터 1992년까지 에티오피아는 독재 정권[각주:10]의 지배를 받았고 국민의 권리는 짓밟혔습니다. 권리 침해의 한 예로 정부의 대규모 집단 농장 건설을 들 수 있습니다. 집단 농장의 농부들은 수확물을 시세보다 낮은 값을 받고 국가에 팔아야 했죠.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나서 정부는 법을 개정했고 농부들에게 협동 조합(의 결성)을 허용하고 제값을 청구할 권리(중개인의 개입 없이)를 부여했습니다. 그런데 (독재 정권 시절 집단 농장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집단이니 조합이니 하는 말이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기는 탓에, 농부들 사이에 조합을 결성하자고 하면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농부들이 조합을 결성하지 않으면 그들은 가격 결정력을 가질 수 없고 품질 향상을 주도할 세력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가 오랜 세월에 걸쳐 커피를 수출해왔기 때문에, 커피 시장은 자리를 잡은 중개상과 대규모 가공업자(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에티오피아 안에는 농사짓기에 적합한 농토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이 때문에 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늘리는 데 집중하는 것만이 유일한 타개책이 됩니다.


 거름 주기, 가지치기(pruning), 스텀핑(stumping)[각주:11]을 권장하는 농업 전문가들에 의한 교육 덕분에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늘어나는) 변화가 이제 막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공 공장[각주:12]에 엄격한 점검이 가해지면서 농장주들은 상품성이 좋은 커피 체리를 예전보다 비싼 값에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힘을 북돋아 주는 희망적인 징후라고 할 수 있지요.


 에티오피아 커피 시장에 힘을 북돋아 주는 동시에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도 자국 커피의 품질 향상에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르완다, 말라위, 짐바브웨가 시장에 새로 모습을 드러냈죠. 이것은 제가 보기에 커피 전문가가 아프리카 지역에서 예전보다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 같습니다. 한편, 커피가 기원한 곳을 기억하고—특히 그 고향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마실거리가 한층 더 고급스러운 커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각주


  1. "Roaster's Dictionary"에 의하면, 결점이 아닌 특성으로서의 woody(=woodsy)는 삼나무(cedar)나 백단(sandalwood)과 같은 고급 수종을 연상케 하는 기분 좋은 향미라고 합니다. 참고로 wood가 결점으로서 언급될 때는, 수확된 지 오래 된(혹은 오래 된 듯한) 커피나 저지대에서 재배된 커피에서 발견되는 특성이라고 합니다. [본문으로]
  2. 원문에 나타난 표현은 'light/medium full city roast'인데, 풀시티 초중반을 가리키려고 했던 게 아닐까 싶어 이렇게 옮겼습니다. [본문으로]
  3. 영어 이름이 berry로 끝나는 열매도 분류학상으로는 다른 경우가 많아 '딸기류'라는 애매한 표현을 취했습니다. 참고로 딸기, 검은딸기(blackberry), 나무딸기(raspberry)는 장미과, 블루베리와 넌출월귤(cranberry)은 진달래과, 구즈베리(gooseberry)는 범의귀과입니다. 구즈베리는 커런트(currant)의 친척입니다. 둘이는 같은 까치밥나무속(Ribes)에 속하거든요. 그나저나 크랜베리의 우리말 이름이 넌출월귤이었다니 참 새롭고 신선하네요. (넌출은 넝쿨 비슷한 식물 줄기를 가리키고 월귤(越橘, cowberry)은 글자 그대로는 '월나라에서 자라는 귤'입니다. 하지만 귤은 또 운향과라서 분류학상으로는 다르고 그렇습니다) [본문으로]
  4. 잡지 의 기사 "Saying Coffee : The Naming Revolution"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차 크랙은 약 400℉/205℃에서 발생합니다. 지금 번역하고 있는 문장의 10도를 이 문장의 10도를 화씨라 가정한다면, 약 400℉에서 410℉까지 진행된 미디엄~하이 사이의 로스트가 되고 10도를 섭씨라 가정한다면 약 205℃에서 215℃까지 진행된 하이 로스트(#65)가 됩니다. [본문으로]
  5. 원문의 표현과 문장 구조에 충실한 번역을 하다 보니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어색한 글이 나와버려서, 이 문단을 옮길 때는 자연스러운 한글 표현에 초점을 맞추어 손을 좀 댔습니다. [본문으로]
  6. 하이 로스트에 해당합니다. [본문으로]
  7. Philip Meech가 'milling and washing'을 열거적 의미로 썼는지 예시적 의미로 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번역의 안전성을 추구하면 전자를 취함이 마땅하지만, 이럴 경우 건조 과정이나 보관하는 과정의 문제로 인한 결점을 제할 수 없고, rioy, earthy, rubbery 같은 결점두가 섞인 원두를 약배전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고 맙니다. 약배전이 이러한 결점을 덮을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으므로, 저는 예시적 의미로 해석하여 '가공 과정'으로 옮겼습니다. [본문으로]
  8. 이 블로그의 "[번역]커피 가공 과정은 맛과 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3]"를 참고할 만합니다. [본문으로]
  9. 원문은 relationships. 1편에서 살펴본 relationship coffee와, 그 예로 든 DTC 지주회사가 Kebede Koomsa 가공 공장의 개선에 들인 노력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10. 멩기스투의 임시군사행정회의(PMAC)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11. 동사 stump의 사전적 풀이는 '(나무를) 베어서 그루터기로 하다, 짧게 자르다, 뿌리째 뽑다' 등입니다. 임업 용어 중 "뿌리뽑기(stumping)"라는 것이 있고, 구글 검색을 해 보니 나무에 가하는 조치 중 "stumping treatment"라는 것이 눈에 뜨이는군요. [본문으로]
  12. 원문의 washing station은 '습식 가공 공장'을 특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