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원두를 자동으로 볶아주는 로스터는 비쌉니다. 수명이 영원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누군가 이 물건을 산다면, 편리하고, 시간이 절약되고, 시행착오를 덜 겪어도 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그 값을 치르는 것이라 보아야 할 겁니다. 원대한 포부와 함께 구입한 도구들이 찬장으로 들어가 다시 나오지 못하는 일을 몇 번 겪고 난 사람이라면 편리한 도구를 자주 쓰게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되고, 버튼 하나 누르면 되는 머신의 값도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게 될 테고요.


 그런데 과연 내가 이걸 사서 남는 장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전자동이라는 점에서 '재미'는 이미 포기한 셈이고, 편리하기야 당연히 편리할 테니, 금전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면 살 만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생두 판매업자인 GSC 인터네셔널[각주:1]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다양한 생두의 가격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1kg단위로 주문할 수 있는 소매가를 확인해 보면 일반 등급의 생두가 kg당 1만 원 안팎, 몇몇 COE 생두가 kg당 5만 원 안팎[각주:2][각주:3][각주:4]이네요. 그럼 계산기를 한 번 두드려 보겠습니다.




 kg당 1만 원의 생두를 사용해 100g당 6천 원의 볶은 원두 수요를 대체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1kg의 생두를 투입하면 850g의 볶은 원두가 나온다 가정하면, 1만 원어치의 생두를 투입해 51,000원어치의 볶은 원두를 얻겠네요. 차액은 생두 1kg당 41,000원입니다.


 전기를 사용하는 전자동 커피 로스터를 사용한다면, 로스팅할 때 전기요금이 얼마나 들어갈까요?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요금은 누진세의 성격을 갖습니다. 편의상 한 달에 6만 8천 원~11만 5천 원 정도를 내는 401~500kWh[각주:5] 구간의 요금인 kWh당 406.70원을 기준으로 잡겠습니다.[각주:6]


 프레소 스마트 로스터의 평균소비전력은 1100W(=1.1kW). 생두 150g을 투입하는 1배치에 10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걸립니다. 예열 등을 감안해 1배치에 10분으로 잡으면 시간당 6배치. 배치당 전기요금은 406.70×1.1÷6=74.561667…원이 됩니다.


 참고로 이 기계를 한 달에 30시간[각주:7] 가동하면 33kWh의 전력을 소비합니다. 누진세 구간을 넘어가지 않는다면 33kWh의 전기요금은 13421.1원입니다. 기계를 30시간 가동해 얻을 수 있는 볶은 원두는 거의 23kg에 달하니, 어지간해서는 이만큼 전기를 쓰기도 힘듭니다. 2.5kg쯤 볶으면 1500원쯤 나오겠네요. 화력 발전소나 원자력 발전소에서 열에너지를 전기로 이미 변환한 것을 다시 열로 바꾼다는 점에서 전열기기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 요금 계산이 이렇게 나오는데 전기 로스터를 거부하기엔… 그 매력이 너무나 큽니다. (제기랄!)


 앞서 배치당 전기요금이 74.561667…원이라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생두 1kg을 볶으려면 6.667…배치를 돌려야 하니, 그 전기요금은 74.561667×10÷1.5=497.07778원입니다. 편의상 생두 1kg당 497원으로 자르면, 차액은 생두 1kg당 40,503원이 됩니다.


 프레소 스마트 로스터의 가격은 120만 원입니다. 생두 1kg을 볶을 때마다 40,503원을 버는 셈이라면, 120만 원짜리 이 기계가 고장나기 전에 29.63kg을 볶으면 본전을 뽑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한 달에 500g씩 꾸준히 볶는다면 약 59개월 1주…그러니까 5년이 다 되면 본전이고 그 뒤로 생두 1kg당 40,503원을 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소모품을 유상으로 교체한다거나 유상수리를 받는 등의 이유로 돈이 들어간다면 이 손익분기점은 더욱 뒤로 밀려나겠지요.


 COE 커피나, 스페셜티 커피를 집에서 볶는다면 좀 더 빨리 본전을 뽑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만, kg당 5만 원의 생두를 볶아 100g당 10,705원의 볶은 원두 수요를 대체해야 생두 1kg당 41,000원의 차액이 나옵니다. 200g에 22,000원, 250g에 27,000원쯤 하는 원두? COE나 스페셜티라면 이쯤 값이 나가는 원두가 흔합니다. 게샤나 블루마운틴은 더 비싼 값에 팔립니다만, 생두 값도 1kg에 10만 원 안팎이라 차액은 비슷합니다. 비싼 커피를 볶는다고 더 많이 남는 게 아닙니다. 본전을 뽑기 위해 볶아야 하는 생두의 양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한 달에 원두를 500g쯤 소비한다면 값비싼 전자동 커피 로스터를 사서 본전 뽑을 생각 하지 말고 내 입에 맞는 로스터리를 찾아다니는 게 좋다는 결론이 나옵니다.[각주:8] 집에서 로스팅을 하고 싶다면 이리조즈 같은 것을 사서 재미를 추구하거나, 컨벡스 오븐을 사서 다양한 용도로 쓰는 것이 좀 더 나은 선택일 테고요.


 이런 결론이 나온 까닭은 프레소 스마트 로스터가 나쁜 제품이어서가 아니라, 한국의 로스터리가 놀라울 만큼 싼 값에 볶은 원두를 팔고 있어서입니다. 한국은 커피 애호가가 살기에는 꽤 괜찮은 나라지만, 로스터가 살기에 좋은 나라는 아닌 것 같습니다.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로스터를 구입한 그들이 기계 값을 벌려면 대체 그들은 얼마나 많은 생두를 볶아야 하는 걸까요.




 각주


  1. 회사 이름이 인터내셔널이 아닌 인터네셔널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본문으로]
  2. 코스타리카 2014 COE #2 El Alto (90.03점) - 49,000원. [본문으로]
  3. 니카라과 2014 COE #2 El Naranjo Dipilto Maracaturra (90.15) - 49,500원. [본문으로]
  4. 온두라스 2014 COE #2 Moreno (90.81점) - 52,000원. [본문으로]
  5. 2013년 1월 14일 기준, 400kWh를 사용하는 가정은 67290원, 500kWh를 사용하는 가정은 111570원을 낸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본문으로]
  6. 편의상 비용을 넉넉히 잡고 손익분기점을 늦추어 잡은 것입니다. 한 달에 500kWh를 넘겨 사용하는 집이 아니라면, 이 계산에 나온 것과 동일하거나 그보다 많은 이득을 볼 것입니다. [본문으로]
  7. 180배치. 생두 27kg을 투입해 볶은 원두 22.95kg을 얻습니다. [본문으로]
  8. 한 달에 1kg쯤 소비한다면 2년 반만에 본전을 뽑으니, 전자동 커피 로스터를 사는 것을 고려할 만합니다.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