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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생활은 귀차니즘과의 싸움입니다. 원하는 장비를 마련할 때까지는 돈과의 싸움, 원하는 장비를 마련한 다음에는 지름신과의 싸움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싸움에는 끝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만족을 하거나, 해탈을 하거나, 파산을 할 테니까요. 하지만 귀차니즘은 커피 생활을 접는 그 순간까지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커피 생활은 귀차니즘과의 싸움이라는 말로 이 글을 시작한 것입니다.


 제 마음이 간사한 탓인지, 쉬운 방법을 찾으면 좀 더 맛좋은 커피를 추출할 방법을 찾게 되고, 맛좋은 커피를 추출할 방법을 찾으면 좀 더 쉬운 방법을 찾게 되더군요. 그래서 이런저런 추출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간편하기로는 커피 잔 위에 차망을 걸치고 분쇄한 원두를 올린 다음 물을 붓는 추출법이 정말 간편한데—이번에는 그라인더 청소가 귀찮아졌습니다. 그라인더 청소를 게을리하기는 싫고 원두는 그때그때 갈아 쓰고 싶은지라, 한 번에 커피를 많이 추출해 유리 약탕기로 빠르게 식힌 다음 냉장고에 넣어 두고 마시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한 번에 커피를 최대한 많이 추출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집에 있는 도구 중 가장 용량이 큰 것이 하리오 드립서버였습니다. 700mL짜리죠. 파보일드 커피를 끓일 때는 거품이 보글보글 치솟기 때문에 가득 채워 끓일 수가 없습니다. 400mL정도가 한계지요. 그래서 분쇄한 원두를 넣은 드립서버에 뜨거운 물을 붓고 휘저어 우려낸 다음 눈이 가는 체로 걸러내는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거품이 치솟지 않기 때문에 서버를 가득 채워 쓸 수 있거든요. 프렌치프레스보다 설거지하기도 편하고요.




 다음은 제가 사용하는 추출법입니다.


 준비물

  물 675mL[각주:1]

  원두 32g

  유리 주전자 (여기에서는 하리오 드립서버)

  전기 포트

  추출한 커피를 받을 그릇

  커피 분쇄 도구

  눈이 가는 체

  기타 필요한 도구 (손잡이가 긴 작은술, 스톱워치 등)


 0. 유리 주전자를 예열합니다.


 1. 전기 포트로 물을 끓입니다.


 2. 유리 주전자에 원두를 분쇄하여 담습니다.


 3. 물이 끓으면 1분에 걸쳐 물을 따릅니다.[각주:2]


 4. 3분+@동안 기다립니다. 요즘에는 +@를 15초로 잡고 씁니다.


 5. 기다리는 동안 1분에 한 번 정도, 손잡이가 긴 작은술로 액체를 저어줍니다.


 6. 커피를 체로 걸러 그릇에 따릅니다.




 이렇게 거른 커피는 보통 유리 약탕기로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마시게 됩니다. 파보일드 커피로 추출하여 식힌 것보다는 산미의 표현이 좋지 않았고 터키시 커피로 추출하여 식힌 것보다는 바디의 표현이 좋지 않다는 약점이 있으며, 카페인 효율도 좀 떨어지는 편입니다.


 카페인 효율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프렌치프레스의 변법으로 650mL, 티포트 브루 커피로 350mL를 추출하여 혼합하였을 때 전자에는 4회분의 원두[각주:3]를, 후자에는 약 2회분의 원두[각주:4]를 넣었고 최종적으로 1L에 6인분의 원두를 넣게 됩니다. 이렇게 만든 커피의 1회 제공량은 약 166mL인 셈인데, 이만큼 마셔도 터키시 커피 1회분이나 파보일드 커피 1회분만큼의 활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이렇게 대량생산한 커피를 마시다가 터키시 커피나 파보일드 커피를 한 잔 끓여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들어서, 대량생산한 쪽의 카페인 효율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지요)


 프렌치프레스의 변법만 따로 실험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혼합액에서 프렌치프레스의 변법으로 추출한 커피가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었고 티포트 브루 커피가 카페인 효율이나 바디·산미의 표현에 큰 약점을 드러낸 방법은 아니었기 때문에 혼합액의 이러한 문제는 프렌치프레스의 변법 쪽에서 주로 유래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약점은 지니고 있지만, 콜드 브루 커피보다는 산미가 훨씬 좋고, 바디나 복합적인 맛 또한 나쁘지 않은데다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어 프렌치프레스의 변법과 티포트 브루 커피로 추출한 혼합액을 유리 약탕기로 식히는 방법이 콜드 브루 커피를 사실상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콜드 브루 커피는 aroma의 표현은 좋지만 맛의 표현에 약점을 가진 추출법이라, 요즘에는 원두의 aroma를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정도나 간간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각주


  1. 분쇄한 원두가 차지하는 공간과, 크레마와 유사한 거품이 솟는 공간 등을 감안하면 700mL보다 조금 적은 물을 붓는 게 좋습니다. 종이 필터를 사용해서 미분을 거르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므로, 저는 이 추출법으로 생산되는 최종적인 커피의 양을 650mL로 잡습니다. [본문으로]
  2. 약 1분에 걸쳐 물을 붓는 티포트 브루 커피와 유사한 추출 결과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물을 3~4차례에 나누어 붓고, 물을 부을 때마다 손잡이가 긴 작은술로 액체를 저어 분쇄한 원두와 뜨거운 물을 잘 섞어 주면 1분이라는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3. 제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추출법은 원두 8g을 1회 제공량으로 잡습니다. 650mL에 4회분 원두를 넣었으니, 1회 제공량은 약 162mL인 셈입니다. [본문으로]
  4. 350mL에 2회분 원두를 넣었으니, 1회 제공량은 약 175mL인 셈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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