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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 : 코스타리카 레디쉬 코코 (Costa Rica Reddish COCOA) 100g

 입수일 : 2014. 12. 26.

 입수처 : 모모스 커피


 저의 마흔아홉 번째 커피는 코스타리카 레디쉬 코코였습니다.



 'Reddish COCOA'를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쓰면 '레디시 코코아'가 됩니다. 영어 어말의 [ʃ]는 '시'로 적기 때문입니다(표기 세칙-표1 영어-제3항 마찰음-2). 하지만 이 포스팅에서는 판매자의 한글 표기를 존중하여 '레디쉬 코코'로 부르겠습니다.


 친구에게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원두입니다.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 묻기에 모모스의 레디쉬 코코와 부에나비스타라고 대답했거든요. 제 마음 속 장바구니는 항상 가득 차 있습니다. 커피 산지 순례를 즐기고, 집에서 직접 블렌딩하는 재미(반반커피 프로젝트)를 즐기는 저는 블렌딩 원두에 손을 대지 않는 성격입니다만… 코스타리카에서 생산된 원두만으로 블렌딩한 레디쉬 코코는 꼭 한 번 마셔 보고 싶었습니다. 서로 다른 세 가지 허니 프로세스(white/yellow/black honey process)로 가공한 코스타리카 원두가 어떤 맛을 내어 줄 지 무척 궁금했거든요.


 택배를 받자마자 포장을 뜯어 결점두를 골라내고 소분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나 COE가 아닌, '하이 커머셜' 정도의 등급에 해당하는 제품인데도 결점두가 적어서 꽤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빛깔과 생김새도 마음에 들었고, 향도 고소하니 좋아서 기대가 되었습니다.


 레디쉬 코코는 산미가 좋고 부드러운 커피입니다.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며 마시기에 좋은 커피이기도 하고요. 쓴맛이 적고 바디가 가볍기 때문에 잠을 쫓는 커피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편입니다.


 커피 한 잔 끓이고 환기하는 게 귀찮아지는 겨울이면 찬장 신세를 지는 구리 냄비가 모처럼 바깥바람을 쐬는 게 새 원두가 도착했을 때입니다. 평소에는 파보일드 커피를 1L씩 생산해서 유리 약탕기로 식혀 두었다가 꺼내 마시지만, 새 원두가 도착하면 ①맛과 향이 궁금하니까, ②원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니까, ③그래도 리뷰는 써야 하니까(…) 터키시 커피를 꼭 끓여 마시게 되거든요. 유리 약탕기로 식힌 커피의 맛과 향도 괜찮긴 합니다만, 갓 끓인 커피만큼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터키시 커피로 추출한 레디쉬 코코는 부드럽고 달달한 커피였습니다. 제가 쓰는 추출법 중에서 바디감의 표현이 가장 좋은 터키시 커피였는데도 바디는 가벼웠습니다. 산미가 올라오기 전의 뜨거운 커피에서 쉽게 느껴지는 쌉쌀한 맛이나 다크초콜릿의 느낌, 조금 탄 듯한 냄새도 올라오지 않아서 첫맛은 조금 밍밍한 편이었고요. 터키시 커피에서는 바디가 산미를 누를 때가 많은데, 레디쉬 코코의 산미는 바디를 뚫고 올라왔습니다. 바디가 산미를 누르기에는 너무 약한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요. 뒷맛이 상큼하고 양감도 평균 이상인 산미는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바디가 가볍고, 쓴맛이 거의 없고, 향이 달콤하고, 산미가 날카롭지 않아서 부드럽고 달달한 커피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터키시 커피로 추출했을 때 바디가 가볍고 산미가 있는 원두는, 파보일드로 추출했을 때 어떤 맛이 날 지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짐작해 보는 것과 실제로 마셔 보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끓여서 맛을 보았습니다. 바디는 더 가벼워졌고 복합적인 맛은 더 희미해져 '맑은 액체'의 느낌이 났습니다. 첫맛이 조금 쌉쌀한 게 의외였는데, 그나마의 바디가 숨기고 있던 쓴맛이 그대로 드러난 게 아닐까 짐작됩니다. 산미는 교과서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표준적인—'커피에 기대할 만한 산미'입니다. 감귤 같기도 하고 사과 같기도 한, 너무 날카롭지도 않고 밋밋하지도 않으며 양감이 중간 이상인 산미였습니다. 산미가 있는 마일드 커피로서는 상등품인데, 하와이 코나가 그랬듯이, 밑천이 좀 짧은 게 아쉬웠습니다. (100g에 8000원 하는 원두가 코나만한 밑천을 가지고 있는 건 대단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요)


 티포트 브루 커피로도 추출해 보았습니다. 산미를 조금 희생하더라도 그 외의 맛을 최대한 끌어내어 맛의 균형을 맞추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첫맛에는 쌉쌀한 맛과 다크초콜릿의 느낌, 조금 탄 듯한 냄새가 감지되어 한결 입체적인 맛이 났습니다. 바디는 여전히 가볍지만(이쯤 되면 바디는 포기하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 구수한 특성이 잡히고 복합적인 맛이 좀 더 나서, 파보일드 커피보다는 훨씬 균형잡힌 맛이었고 터키시 커피보다는 조금 '에스닉한' 느낌이었습니다. 왠지 안 어울리는 옷을 걸친 코스프레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지만, 구세계와 신세계의 중간 맛 같은 이야기는 그만둬야겠습니다.


 컨셉과 캐릭터가 명확한 원두는 한계가 명확한 원두, 다재다능하지 않은 원두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고(캐릭터를 명확한 원두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다재다능한 원두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원두의 완성도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합니다(레디쉬 코코를 커핑의 도마에 올려놓는다면 body/mouthfeel 분야에서 점수가 좀 빠지겠지요). 산미가 있는 마일드 커피를 좋아하는 저의 입맛에는 레디쉬 코코가 잘 맞았습니다. 언젠가 한 번 다시 마시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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