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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감미료

청정원 유기농 흑설탕

느린악장 2015. 1. 26. 09:12

 시중에서 팔리는 황설탕과 흑설탕의 상당수는 백설탕을 가공한 물건입니다. 제품 뒷면의 "원재료명 및 함량"을 확인했을 때 '캐러멜'이 들어가면 백설탕에 캐러멜 색소를 입힌 물건으로 이해해도 됩니다. 삼백식품(백미, 백설탕, 흰 밀가루)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황설탕과 흑설탕을 찾기 시작했고, 갑자기 늘어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제조사가 백설탕에 색깔을 입힐 생각을 했던 것이죠.


 이는 <슈거 블루스>가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후 사람들이 '무설탕' 식품을 찾기 시작했고, 갑자기 늘어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식품회사들이 설탕 대신 액상과당을 첨가한 다음 '무설탕' 딱지를 붙인 것과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액상과당이 설탕보다 좋을 게 없다는(어찌 보면 설탕보다 더 건강에 해롭다는) 게 알려지면서 액상과당의 입지가 좁아졌듯이, 캐러멜 색소를 입힌 "가짜 황설탕"과 "가짜 흑설탕"이 백설탕보다 좋을 게 없다는 게 알려지면서 이들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설탕을 제조하는 대기업도 이러한 시장의 흐름에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CJ제일제당은 2010년 9월 이후 흑설탕에 캐러멜색소 대신 흑당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 2013년 <기사>) 매장에서 원재료명 및 함량을 확인한 결과 CJ제일제당의 황설탕과 흑설탕에는 캐러멜색소가 들어있지 않았으며, 고객센터 문의 결과 해당 회사의 흑설탕은 "원당과 흑당으로만 만들어진 제품"이고, "원당은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것으로 설탕을 만드는 원료"이며, "흑당은 설탕을 가열하여 색을 진하게 만들어 낸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의 흑설탕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포장단위가 1kg이어서 좀 부담스러웠죠. 그래서 청정원 유기농 흑설탕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원심력을 이용한 분리 후, 추가적인 화학정제를 하지 않아 자연의 균형에 가까운 유기농 설탕입니다." 라는 포장지의 설명이 마음에 들었고, 454g이라는 묘하게 부가가치세 떼어먹은 듯한 용량이 부담없었기 때문입니다.


 청정원 유기농 흑설탕에는 "흑설탕"이라는 제품명이 붙어 있지만, 그 형태는 단단한 결정을 형성하고 있어 '황설탕'에 가깝습니다. 제가 편의상 '당밀취'라고 부르는 천연 설탕의 냄새(일 법한 냄새)를 제법 진하게 풍깁니다. 콜롬비아 유기농 비정제 설탕보다도 진합니다. 시중에서 소포장으로 구할 수 있는 저(低)정제 설탕으로서 이 정도면 훌륭하지요.


 집에서 시럽을 끓이면 참기름 빛깔의 시럽이 나옵니다. 음식이나 음료에 먹음직스런 빛깔을 보탤 때 유용합니다. 플레인 요거트나 모과차에 섞으면 꽤 예쁩니다. 맛과 향은… 백설탕과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뜨거운 물에 청정원 유기농 흑설탕만 잔뜩 풀어서 마신다면 그 차이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음식이나 음료에 미량을 첨가해서 그 차이를 느낄 정도는 아닙니다. 유기농·저(低)정제라는 심리적인 만족감과 참기름 빛깔의 비주얼 정도가 이 제품의 가치라고 할 수 있죠. 본격적인 사탕수수의 맛을 느끼려면 정말 '흑설탕'의 형태를 한 저(低)정제 설탕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흑설탕'의 형태를 한 저(低)정제 설탕으로 끓인 시럽은 메이플시럽에 가까운 특성을 보입니다. 뜨거운 물에 탔을 때 올라오는 당밀취가 메이플시럽에 가깝고, 선식이나 숭늉에 탔을 때 역한 맛이 난다는 점까지 닮았습니다. 때로는 백설탕에 가까운, 얌전하게 단맛만 내어 주는(…) 감미료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황설탕'의 형태를 한 저(低)정제 설탕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청정원 유기농 흑설탕은 꽤 유용한 물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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