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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감미료

홈메이드 시럽 [1]

느린악장 2015. 3. 9. 12:07

 <건강을 위한 감미료는 없다>를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꿀의 주성분이 전화당(轉化糖)—포도당과 과당의 등량 혼합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꿀은 향기가 좋고 그 맛이 꿀맛(…)이지만 액상과당과 조성이 거의 같은 이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설탕이나 액상과당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비싼 돈을 주어가면서 꿀을 사먹을 이유도 별로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꿀을 대신할 감미료로 가장 무난한 것은 설탕입니다. 꿀처럼 향기롭지는 않지만, 비정제/저(低)정제 설탕은 나름의 풍미를 갖고 있지요. 하지만 완전히 녹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설탕을 넣고 꽤 오래 저어도, 음료를 다 마시고 나면 컵 밑바닥에 설탕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시럽을 만들어 쓰기로 했습니다.




 시럽은 당(糖) 수용액입니다. 당을 물에 녹인 것이죠. 그렇다면 당은 물에 얼마나 잘 녹을까요? 설탕(자당)의 용해도를 먼저 살펴보면…[각주:1][각주:2]


 0°C에서 약 64

 20°C에서 약 66

 90°C에서 약 80

 100°C에서 약 88입니다.


 따라서 0°C에서는 대략 [설탕64 : 물36]일 때 설탕 포화수용액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20°C에서는 대략 [설탕66 : 물34]일 때, 90°C에서는 대략 [설탕80 : 물20]일 때, 100°C에서는 대략 [설탕88 : 물12]일 때 포화수용액이 됩니다.


 정말 진한 시럽을 만들고 싶다면 [설탕 : 물]의 비율이 4:1(80:20)내지 8:1(87:13)이 될 때까지 졸이면 됩니다. (제가 실제로 만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이 정도의 농도라면 끓이는 중에도 결정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시럽을 끓이는 동안 절대 시럽을 휘젓지 마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스푼으로 젓는 정도의 충격에 의해서도 결정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시럽은 상온에서는 과포화수용액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포화수용액은 한 번 결정이 발생하면[각주:3] 일어난 결정을 다시 녹이기 힘듭니다. 포화수용액이나, 포화수용액에 근접한 농도의 불포화수용액이라면 결정이 잘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혹시 결정이 발생한다고 해도 다시 녹이기 쉽겠지요.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결정이 일어났다면, 냉장고에서 꺼내 실온에 두면 그 결정이 다시 녹아들어갈 겁니다) 그래서 시중에 나온 시럽은 대개 포화수용액에 근접한 불포화수용액으로 농도를 맞춘 상태입니다. 약 60~65% 정도로요.


 만들기도 힘들고[각주:4] 취급할 때도 조심해야 하는[각주:5] "아주 진한 시럽"은 생각보다 달지 않습니다. [설탕 : 물]의 비율이 8:1인 시럽은 2:1인 시럽에 비해 약 1.3배 달콤할 뿐입니다. 8:1짜리 시럽 3찻숟가락 분량의 단맛은 2:1짜리 시럽 4찻숟가락 분량의 단맛과 거의 같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2:1 시럽 4찻숟가락 쪽에 좀 더 많은 설탕이 들어 있습니다. 시럽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 재미를 느끼거나, 아주 진한 시럽을 만들었다는 데에 뿌듯함을 느끼는 분께는 "아주 진한 시럽"이 의미가 있겠지만, 커피에 넣어 단맛을 내는 정도의 용도라면 2:1 정도의 시럽으로도 충분합니다. "아주 진한 시럽"을 넣을 때보다 1찻숟가락 더 넣으면 충분히 달달할 테니까요.




 제가 시럽을 끓이는 방법은 좀 야매입니다.


 1) [설탕60 : 물40] 정도의 비율로 설탕과 물을 붓고 저어줍니다.

 2) 가스렌지는 약불.

  선택 사항 : 데워지는 동안 설탕을 조금 저어줍니다.

 3) 끓기 시작하면, 약 5분 정도 팔팔 끓입니다. (끓을 때는 시럽을 젓지 않습니다)

 4) 시럽을 식혀서 병에 옮겨 담습니다.

 5) 냄비 바닥에 설탕가루가 좀 남는데, 따뜻한 물을 부어 마십니다. (ㅋㅋㅋㅋㅋ)


 [설탕50 : 물50]으로 시작해 원하는 비율이 될 때까지 시럽을 졸이는 정석은 따라하기 힘들더군요. 졸이는 중에 시럽방울이 자꾸 가스렌지 위로 튀고, 냄비 안쪽 벽면에도 튀고, 시럽은 졸아드는 것 같지도 않고…


 설탕은 저울로, 물은 계량컵으로 계량해 나중에 섞어 주는 편이 좋습니다. 설탕도 계량컵으로 재면 정확한 양을 맞추기 힘들고[각주:6], 눈금이 있는 유리 주전자에 물과 설탕을 차례로 부어 가며 눈금을 보면 비율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각주:7].


 저는 냄비에 물을 먼저 붓고 설탕을 나중에 부은 다음, 저어준 다음 가열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설탕을 먼저 붓고 물을 부으면 냄비 안쪽에 설탕물이 튀기 쉬워서 역순으로 행하는 것이고, 물 위에 설탕을 부으면 설탕이 냄비 한가운데에 원뿔 형태로 두툼하게 쌓이기 쉽기 때문에 저어서 골고루 퍼뜨려주는 겁니다.


 한 번에 500mL 정도씩 생산한다면 가스렌지는 작은 화구의 약불로 시작해도 충분합니다. 끓기 시작하면 가스렌지 앞에서 냄비를 주시하다가, 거품이 치솟기 시작하면 화력을 더 줄입니다. 비교적 활발하게 팔팔 끓지만 넘치지는 않을 정도의 화력으로 5분 정도 졸이면 시럽이 완성됩니다. 뚜껑을 덮고 1~2시간 식혀준 다음 원하는 병으로 옮겨 주면 모든 과정이 끝납니다.


 처음에는 냄비를 써서 시럽을 끓였는데, 요즘에는 하리오 드립서버를 사용해 시럽을 만듭니다. (하리오 드립서버는 제한적으로 직화 사용을 할 수 있고[각주:8], 가스렌지의 가장 작은 화구의 약불로 7~8분 가열하는 정도는 견딜 수 있습니다) 아가리가 좁고 높아 설탕물이 가스렌지 바닥으로 잘 튀지 않고, 몸체가 투명해 시럽의 상태가 한 눈에 들어오고, 액체를 따르는 주둥이가 마련되어 있어 깔때기 없이도 유리병에 시럽을 따를 수 있어 편리하거든요.




 비정제/저(低)정제 설탕으로 만든 시럽에는 침전물이나 부유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제를 안/덜 했으니, 당연한 이야기지요. 시럽의 높은 당(糖) 농도는 미생물의 활동을 막아줄 수 있지만, 침전물이나 부유물의 산패 혹은 변질까지 막아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비정제/저(低)정제 설탕을 사용한 홈메이드 시럽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소비하는 게 좋고, 시럽 병도 매번 씻어 말려서 침전물이나 부유물을 제거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 하리오 드립서버에다 160mL 정도씩 시럽을 끓여, 용량이 170mL 정도 되는 자연주의 원터치오일병[각주:9]에 담아서 사용합니다. 시럽 16mL에는 약 2작은술(10g)의 설탕이 포함되어 있으니, 160mL 정도의 시럽은 저에게는 10회분인 셈이죠. 하루에 커피를 한 잔만 마시고 시럽을 자주 쓰지 않는 저에게는 이 정도씩 생산하는 편이 부담이 없어 좋습니다. 시럽을 좀 더 많이 소비한다면 350mL 내외의 병[각주:10]이나 500mL 내외의 병에 담을 만큼의 시럽을 생산할 수도 있겠지요.




 사실, 비정제/저(低)정제 설탕으로 만든 시럽의 풍미는 커피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빌링톤 몰라시스 비정제 사탕수수당으로 만든 시럽의 풍미는 꽤 독특하지만 풍미의 강도 자체는 No.2 메이플시럽보다 조금 약합니다. 메이플시럽의 강한 풍미도 커피의 맛과 향을 뚫고 올라오기 힘든데, 비정제/저(低)정제 설탕으로 만든 시럽의 경우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과일이나 채소를 갈아 주스를 만들 때 넣거나, 플레인 요거트나 우유에 섞는 용도로는 좋습니다. 특유의 풍미가 잘 드러나고, 주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편이니까요. 따뜻한 물에 시럽을 타서 당밀 음료처럼 마셔도 괜찮습니다. 귀하거나 비싼 비정제/저(低)정제 설탕의 디테일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방법 또한 따뜻한 물에 타 마시는 겁니다. 다른 재료와 섞으면 맛이 죽고, 찬물에 타면 맛과 향이 잘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홈메이드 시럽의 가치는 내가 원하는 설탕으로 시럽을 만들 수 있다는 점[각주:11]일 겁니다. 집에서 커피를 추출할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원두로 커피를 추출할 수 있다는 점과 비슷하다면 비슷합니다. 기술적인 완성도만 보았을 때 다소 미흡할 수 있지만, 그 '자유로움'이라는 가치를 높이 살 만합니다.


 홈메이드 시럽에 대한 첫 번째 글은 이 정도로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언젠가 두 번째 글을 작성하게 된다면, 팁이 될 만한 이야기나 이런저런 감상을 쓸 것 같습니다.




 각주


  1. http://www.sugartech.co.za/solubility/index.php [본문으로]
  2. http://chestofbooks.com/food/science/Experimental-Cookery/The-Solubility-Of-The-Sugars.html [본문으로]
  3. 추운 곳에 보관한 꿀의 표면에 결정이 일어나는 것도 일종의 결정화 또는 석출입니다. 이렇게 한 번 일어난 결정은 온도가 올라가면 다시 꿀 속으로 녹아들어갈 수도 있고, 다시 녹아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4. 100°C에서 [설탕88 : 물12]일 때 포화수용액이 된다지만, 처음부터 [설탕88 : 물12] 비율로 설탕과 물을 붓고 100°C까지 올린다고 설탕이 물에 다 녹아드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해 보면, [설탕60 : 물40]의 비율로 설탕과 물을 붓고 시럽을 몇 분 끓여도 바닥에는 약간의 설탕이 남습니다. 설탕을 완전히 녹여서 시럽을 끓이려면 [설탕50 : 물50]의 비율로 시작해 원하는 비율이 될 때까지 시럽을 졸이는 게 정석입니다. 약불로 몇십 분 졸이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몇 시간 정도는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으로]
  5. 실온에 보관하고,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각별히 주의하고, 충격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아주 진한 과포화수용액이라면 냉장고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결정이 일어날 수도 있고, 주둥이에 말라붙은 설탕 결정이 시럽 병으로 굴러들어갔을 때 그 결정을 중심(핵)으로 결정화가 발생할 수도 있고,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결정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6. 입자가 굵으면 입자 사이의 빈 공간이 많기 때문에 같은 부피를 계량해도 무게가 덜 나갑니다. 젖은 모래처럼 움직이는 흑설탕은 얼마나 다져주었느냐에 따라 같은 부피에 담기는 무게가 달라집니다. 고운 입자의 백설탕을 사용하는 통상적인 요리나 제과제빵에서는 설탕을 계량컵으로 재도 상관없지만, 여러 종류의 설탕을 사용해 시럽을 만들면서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설탕을 저울로 재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본문으로]
  7. 설탕 250mL와 물 250mL를 섞으면 500mL가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설탕 분자 사이에 물 분자가 파고들면서 500mL보다 적어집니다. (콩과 모래를 섞었더니 부피의 합이 줄어들더라, 하는 과학 실험과 같은 원리입니다) 분자 문제와 별개로 설탕 입자 사이에도 틈이 있어서 오차는 더욱 커집니다. 그래서 유리 주전자에 설탕 250mL를 먼저 채우고 500mL가 될 때까지 물을 부으면 의도했던 것보다 묽은 시럽이 되고, 물 250mL를 먼저 채우고 500mL가 될 때까지 설탕을 부으면 의도했던 것보다 진한 시럽이 되기 쉽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한 문제와는 또 별개로, 입자 굵기나 형태 때문에 설탕의 부피/무게 비율은 다를 수밖에 없어서 백설탕·황설탕·흑설탕은 같은 부피여도 무게는 제각각이고, 따라서 각각의 시럽 농도도 제각각이 되어 버립니다. [본문으로]
  8. 하리오 드립서버는 제조사가 "직화(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直火は使用できません)."라고 명시한 제품입니다. 조심스럽게 직화 사용을 하는 정도로 망가지지 않을 뿐이죠. 자세한 사항은 이 블로그의 "하리오 드립서버로 추출하는 파보일드 커피" 포스팅을 참조해 주세요. [본문으로]
  9. JAJU/자연주의 원터치오일병은 시노글라스에서 제조한 것입니다. 시노글라스에서도 사실상 같은 형태의 오일병을 판매하는데, 이 물건이 자연주의 오일병보다 쌉니다. [본문으로]
  10. 두 홉(약 360mL), 또는 12 fl. oz.(약 355mL)의 근사치이기도 합니다. [본문으로]
  11. 비정제/저(低)정제 설탕으로 만든 시럽은, 선택의 폭이 상당히 좁습니다. 오키나와 흑당 시럽 같은 제품이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비싸고, 빌링톤이나 청정원 같은 설탕으로 만든 시럽은 기성품으로 구할 수 없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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