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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 : 모닝 블렌드 120g

 입수일 : 2015. 10. 9.

 출처 : 비비다이어리 (2015 카페&베이커리 페어에 설치된 부스에서 구입)


 저의 예순여덟 번째 커피는 비비다이어리의 모닝 블렌드였습니다.



 선물받은 커피입니다. 2015 카페&베이커리 페어에 함께 간 단짝이 사 주었습니다.



<참고 : 이 블로그의 별점과 그래프>


 비교적 가벼운 바디, 다크초콜릿(촉감), 정향·계피·후추(향), 삼나무(향)


 처음으로 리뷰하는, 둘 이상의 나라에서 생산된 커피를 배합한 블렌드입니다. 코스타리카 레디쉬 코코파나마 게샤 블렌드는 같은 나라에서 생산한 원두를 배합한 것이었죠.


 비비다이어리 부스에서 맛본 모닝 블렌드는 맛이 좋았습니다. 단짝이 저에게 묻더군요. "블렌드인데, 괜찮을까?" 제가 지금까지 블렌드를 구입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 신경쓰였나 봅니다. 제가 (뭉툭한 의미에서의) 싱글 오리진을 선호하는 이유는 그 '식별가능성'[각주:1][각주:2] 때문이지 블렌드를 싫어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음 결과가 좋은 원두를 거부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핸드 소트 결과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날 카페&베이커리 페어 현장에서 산 원두는 모두 5종이었는데(타라주 SHB EP, 자바 G1, 시다모 구지 G1, 니카라과 SHG, 모닝 블렌드) 모닝 블렌드에서 나온 결점두가 가장 많았습니다. 퀘이커로 간주하고 골라내는 옅은 황토색 콩, 실버스킨이 벗겨지지도 않는 쭈글쭈글한 콩, 벌레 먹은 콩, 기형/미성숙 콩… 이 블렌드에 들어가는 브라질 생두의 품질이 안 좋아서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실망스러운 게 아니라 당황스러울 정도로, 만약 결점두의 대부분이 브라질에서 나온 게 맞다면 핸드 소트 결과 블렌드 배합 비율이 바뀌었겠다 싶을 만큼 결점두가 많았습니다. (에티오피아가 건식 G4였다면 거기에서도 결점두가 좀 나왔을 수 있겠지만, 블렌드 비율이 10%에 불과해 에티오피아에서만 결점두가 나왔다고 보기에는 너무 많았습니다. 콜롬비아는 결점두 측면에서는 믿을 만한 커머셜이니, 결국 의심이 가는 건 브라질이었지요)


 시음 결과는 괜찮았기 때문에, 핸드 소트를 완료한 모닝 블렌드는 좋은 맛을 내어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비비다이어리 부스에서 시음용 커피를 내릴 때 핸드 소트를 하지 않은 모닝 블렌드를 썼다면, 많은 결점두가 섞여들어갔는데도 그 정도의 맛을 내어준 모닝 블렌드는 정말 괜찮은 원두가 맞을 것이고… 거기에서 결점두를 골라냈다면 더 좋은 맛이 날 게 틀림없으니까요.




 모닝 블렌드는 향신료 계열의 구수함과 복합적인 맛, 그리고 적당한 단맛과 쓴맛이 어우러진 무난한 마일드 커피였습니다.


 정향(clove), 계피, 후추, 삼나무… 제가 '에스닉함', '구수함'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노트의 조합이죠. 에티오피아 건식이나 인도네시아에서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향미입니다. 이들 커피를 (뭉툭한 의미에서든 그렇지 않든) 싱글 오리진으로 마셔 보면 그 결이 거칠기 쉬운데, 달달하고 고소한 특성이 있는 원두를 섞으면 부드럽고 균형 잡힌 맛이 나옵니다(개성은 좀 희석되지만요). 모닝 블렌드는 대략 이런 식의 접근법으로 만든 블렌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티포트 브루 커피로 추출하면 좀 더 에스닉한 커피가 됩니다. 다크초콜릿 같은 촉감이 강해지고, 향신료 계열의 향미도 조금 진해지고, 약간의 감칠맛도 느껴집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건식 가공한 커피를 마실 때 느낄 수 있는 구수한 향미가 입 안에 남습니다. (원두를 갈 때 와인의 느낌을 암시하는 비릿한 냄새가 퍼졌는데, 실제 커피에서는 와인의 느낌이 거의 감지되지 않아서 좀 의외였습니다)


 파보일드 커피로 추출하면 좀 더 깔끔한 커피가 됩니다. 다크초콜릿 같은 촉감은 약해지고 바디가 가벼워지며, 향신료 계열의 향미가 줄고 볶은 곡물의 고소함과 약간 감귤 같은 산미가 감지됩니다.


 터키시 커피로 추출하면 에스닉함과 깔끔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커피가 됩니다. 달달함은 터키시 커피로 추출한 결과물에서 잘 느껴졌습니다(이것도 좀 의외였습니다).


 적당한 온도가 매우 중요한 커피입니다. 뜨거울 때 탄내와 탄맛, 그리고 탄맛에 기반한 쓴맛이 감지되기 때문입니다. 조금 식으면 단맛과 향신료 계열의 향미가 올라오고, 적당한 온도에 진입하면 쌉쌀함과 달달함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산미도 조금 올라와 상당히 맛 좋은 커피가 됩니다.



 소수점 이하는 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별점 정책 상, 만족도가 별 2.8개쯤 되는 원두에게는 별 둘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만한 부족함을 이유로 별 하나를 빼는 것은 좀 미안한 일이지만, 에티오피아 시다모 구지 G1이나 니카라과 SHG 같은 원두와 나란히 별 셋의 자리에 올려두는 것은 그들에게 훨씬 더 미안한 일이니, 어쩔 수 없네요. 모닝 블렌드로 내린 커피는 만족스러웠지만, 원두로서의 모닝 블렌드는 적지 않은 아쉬움이 남는 제품이었습니다.



★★


"구수하고 부드러운 마일드 커피."



 각주


  1. 식별가능성은 고전적 관현악에 대한 다음 설명에서 따온 개념입니다. "고전적 오케스트라는 3개의 악기집단들로 구성된다 : 현, 관(목관, 금관), 타악기가 그것이다. 어떤 악기가 어느 그룹에 속하는지는 매우 명확하다 : 각 그룹들은 서로에 대해 배타적인 음색을 주장하며 그 속에서 각 악기들은 매우 식별가능(identificable)하다. 악기들의 식별(identification)을 방해하는 어떤 종류의 총체적인 관현악적 음색 융해도 없었다." —김진호 (2002) <관현악법과 음악분석> 벨로체. p.72 [본문으로]
  2. 고전음악을 구성하는 각 악기의 소리가 매우 식별가능하듯, (뭉툭한 의미에서의) 싱글 오리진 원두로 내린 커피의 맛과 향을 구성하는 요소도 상당히 식별가능합니다. 구성 요소가 식별가능하면 리뷰를 분석적으로 할 수 있고, 제가 원하는 맛과 향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 쉬워져 다음 원두 구매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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