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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원두 리뷰

르완다 (Rwanda)

느린악장 2016. 8. 22. 07:10

 원두 : 르완다 (Rwanda)

 샘플 로스팅 일자 : 2016. 7. 12.

 생두 제공 : 카페티모르


 저의 여든다섯 번째 커피는 르완다였습니다.



 정광수님과 연이 닿아 테이스팅하게 된 원두입니다. 다양한 프로세스를 적용했던 동티모르 샘플 5종과는 달리 이 르완다는 별다른 프로세스를 적용하지 않고 그대로 로스팅한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맛본 르완다는, 여러분이 카페티모르(피스커피)에서 구입할 수 있는 르완다와 동일한 제품입니다.



<참고 : 이 블로그의 별점과 그래프>


 중간 바디, 삼나무(향), 파이프담배(향), 민트(향), 정향(향)


 존재감이 확실한 향미 노트


 노트의 종류는 적으나 그 존재감은 확실한 커피입니다. 굵은 글씨로 표시하고 싶을 정도로요. 폴 바셋의 호주 마운틴 톱을 리뷰하며 "판매자의 테이스팅 노트에 적힌 내용에 대체로 공감할 수 있었던 원두는 이게 처음인 것 같습니다."라고 적었는데, 저의 리뷰에 적힌 기상천외한 노트들(호두 속껍질 같은 떫음, 팝콘, 트러플 오일 따위)에 당황하셨던 분들도 이번 르완다의 향미 노트에는 98% 공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삼나무와 파이프담배가 이끄는 스파이시함 내지 스모키함은 강배전 원두에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노트입니다. 이러한 노트가 있고 강배전에서 오는 단맛이 있으며, 산미가 없고 로부스타의 구수함이 빠진 강배전 원두를 저는 편의상 '올드스쿨 에스프레소 블렌드' 같다고 평합니다. 실제로는 스타벅스 에스프레소 블렌드에 가깝지만[각주:1]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각주:2]에서 이름 길고 달달한 음료를 파는 제3의 공간이 된 지 오래인 지금 어떤 원두를 평하며 스타벅스 같다고 하면 싸우자는 소리로 들릴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에[각주:3] '올드스쿨 에스프레소 블렌드'라는 표현을 따로 만들어서 쓰는 것입니다.


 온두라스 라 우에르타를 리뷰하며 언급한 '치약의 화한 느낌'은 카페티모르의 르완다에도 조금 있습니다. 민트와 정향이 노트에 들어간 것은 이 때문입니다. 뜨거운 커피가 조금 식어갈 때 특히 잘 감지됩니다. 온두라스 라 우에르타나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처럼 강하지는 않고 비교적 은은해서, 거슬리거나 확 튀는 수준의 것은 아닙니다.


 커피를 맛보면서 살짝 감지했지만 노트 목록에 올리지 않은 것으로는 멸치액젓 비슷한 비릿함, 건열(dry distillation)류의 스모키함, 신선한 흙냄새, 소독약이나 테르펜이 연상되는 자극성 있는 휘발성 향미 등입니다. 멸치액젓은 지금까지 노트 목록에 올리지 않고 본문에서 다루었으니 이번에도 그리하였고, 건열류의 스모키함은 더 이상 노트를 특정하기 어려워 올리지 않았습니다. 흙냄새나 자극성 있는 휘발성 향미는 한두 번 감지했지만 목록에 올릴 만큼 또렷하지는 않아서 제외하였습니다.


 쓴맛과 단맛의 조화


 풀시티로 볶은 르완다로 커피를 추출하면 단맛이 납니다. 이 단맛은 강배전에서 오는 단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쌉쌀한 맛도 납니다. 이 쌉쌀함 또한 강배전에서 오는 성격의 것입니다. 커피 온도가 비교적 뜨거울 때에도 단맛이 느껴져서 첫 모금부터 쓴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룹니다. (단맛이 아니었다면 쓴맛과 스파이시함 때문에 커피의 첫인상이 상당히 독하고 강했을 겁니다. 이 단맛이 향미의 균형을 잡아준 셈입니다)


 향미 노트가 심플하고 산미가 약해 추출법에 따른 맛의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온도에 따른 맛의 차이도 다른 커피에 비해 적은 편입니다. (따뜻하게 했을 때 쓴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루며, 차게 식혔을 때 쌉쌀한 맛이 강해지고 커피가 묵직해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달달고소한 향기가 부족한 점은 아쉬움

 : 블렌드를 하거나 부재료를 넣어 약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음


 추출된 커피에서는 단맛이 나고, 추출을 마친 커피 가루에서는 달달한 향기가 나지만, 추출된 커피에서는 달달한 향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과일의 달달함(enzymatic ; fruity)이나 견과류의 달달고소함(sugar browning ; nutty), 캐러멜 같은 달달함(sugar browning ; caramelly) 같은 특성이 있는 원두와 블렌드한다면 좋은 에스프레소 블렌드가 될 것 같습니다. 스트레이트로 즐기기에 나쁜 원두는 아니지만, 달달고소한 향기가 있는 원두를 블렌드하거나 우유 같은 부재료를 넣어 약점을 보완하면 좀 더 나은 커피가 됩니다.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을 리뷰하며, 노트의 다양성과 독특함이라는 측면에서는 온두라스 라 우에르타 쪽이 우월했지만 균형감·조화로움·무난함이라는 측면에서 과테말라 스페셜 셀렉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강배전 원두에서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는 노트 위주로 구성된 카페티모르의 르완다 또한 노트의 다양성과 독특함은 부족하지만, 쓴맛과 단맛의 조화와 무난함이라는 측면에서는 괜찮은 원두라고 평하고 싶습니다.




★★★


"쓴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룬 커피."




 각주


  1. 스타벅스는 '맛과 향을 극대화하기 위해' 강배전을 하고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타버리'는 로부스타를 블렌드에서 제외합니다. —<10대를 위한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 이야기>, pp.65-66 [본문으로]
  2. 놀랍게도 초창기의 스타벅스는 커피 맛과 품질의 혁신을 주도하는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였습니다. 당시 미국 커피 시장은 미성숙했고, 오늘날에는 상식으로 통하는 것이 혁신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비상식적이었습니다'. 카페에서 커피메이커를 사용하지 않고 핸드드립이나 프렌치프레스로 커피를 추출해서 파는 것이 혁신이었고, 카페에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놓는 것이 혁신이었고, 카페 라테라는 메뉴를 도입하는 것이 혁신이었고, 풀시티를 넘어선 강배전 원두를 사용해 커피를 내리는 것이 혁신이었습니다. [본문으로]
  3. 풀시티를 넘어선 강배전은 커피의 향미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지만, 질이 낮은 생두의 결점을 감추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스타벅스는 '의외로 괜찮은' 생두를 사용하고, 상당수의 초저가 커피 체인점은 '의외로 중배전한' 에스프레소 블렌드(에스프레소 용 원두로서의 중배전은 풀시티 정도)를 사용하지만, 강배전→태웠다→질이 낮은 생두를 태워서 눈속임했다→나쁘다는 식의 판단 연쇄는 커피 애호가나 업계인 사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강배전의 아이콘인 스타벅스가 이러한 판단 연쇄의 희생자가 되는 일도 흔하게 발생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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