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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베이커리 페어를 다녀왔습니다. 2012년 페어 후기를 검색하다 보니 이런 저런 볼멘소리가 들려서 조금 불안하기도 했지만,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목표 중 하나가 갓 볶은(혹은, 적어도 최근에 볶은) 공정무역 커피를 구입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전 글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공정무역 커피가 시장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들[각주:1]을 해결하려는 접근법이라면 마이크로 로트, 스페셜티 커피, 컵 오브 엑설런스는 시장논리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접근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스페셜티 커피와 컵 오브 엑설런스에 대한 글을 많이 썼지요. 산지별로 달라지는 커피의 맛과 향이 저의 관심을 많이 끌었고, 그 '산지별로 달라지는 커피의 맛과 향'의 정점에 스페셜티 커피와 컵 오브 엑설런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후각과 미각, 그리고 커피의 맛과 향에 대한 기억력과 묘사력에 큰 한계를 느끼면서 스페셜티 커피와 컵 오브 엑설런스에 대한 저의 관심은 조금씩 식어갔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나 컵 오브 엑설런스가 아닌) 일반 등급에서도 '기억력을 기반으로 한 커피의 구별'[각주:2]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정도 능력으로 비싼 커피를 탐닉해 봐야 호사 부리기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으니까요.


 그러는 사이 접어 두었던 공정무역 커피에 대한 관심이 살아났습니다. 일반 등급의 커피를 꽤 괜찮은 가격에 구할 수 있으면서, 생산자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공정무역 커피니까요. 예전에는 200g씩 원두를 사는 게 제법 부담스러웠는데, 원두 소비량이 늘어나면서 200g정도는 해볼 만한 용량이 되면서 200g씩 파는 경우가 대부분인 공정무역 커피에 도전(?)해보게 되었습니다.


 공정무역 커피를 사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신경쓴 건 로스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커피임을 확인하고 구입해야겠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로마밸브가 달린 백에 담은 원두는 유통기한을 몇 달쯤은 잡을 수 있는데,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즉, '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로스팅한 지 한 달이 지난 원두를 팔 때도 있습니다.[각주:3] 로스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 원두를 원하는 소비자에게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도 없지요.


 카페&베이커리 페어에서 만난 관계자와 이 문제로 잠깐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관계자의 이야기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습니다.


 "초기에는 공정무역 커피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위해, 원두를 많이 출고하는 데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많이 뿌리면 일단 뿌린 만큼은 팔릴테니까요. 하지만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올라가면서 (로스팅한 지 오래 된 원두를 산 소비자가 불만을 표시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로스팅한 지 3~4일이 지나기 전에 출고되도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답이 무척 인상깊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주요 공정무역 커피 판매자의 웹사이트를 돌아다녀 보니, 갓 볶은 커피나 로스팅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커피를 출고하려고 노력하는 판매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1. 아름다운커피 (아름다운가게)


 네팔, 우간다, 페루 커피를 각각 히말라야의 선물, 킬리만자로의 선물, 안데스의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습니다. 1주일에 한 번, 매주 화요일에 로스팅한다고 하며, 화요일 1시 이후 주문부터 새로 로스팅한 커피로 발송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2. 비마이프렌드 (기아대책)


 멕시코 치아파스, 인도네시아 자바 커피를 각각 공기 좋은 치아파스의 맛있는 커피, 살아숨쉬는 자바섬의 맛있는 커피라는 이름으로 팔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로스팅한 지 3~4일이 지나기 전에 출고된다고 말한 관계자가 이곳 소속이었습니다.


 3. 피스커피 (YMCA)


 동티모르 커피만 파는데, 로스팅 정도에 따라 에스프레소 용도로 강하게 볶은 커피와 드립 용도로 적절히 볶은 커피를 나누어 팔고 있습니다. 1주일에 1회 로스팅한다고 하며, 요일이 유동적이라서 로스팅한 지 오래되지 않은 커피를 원한다면 전화문의를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4. 그 외 사회적 기업 및 공정무역 커피 전문 업체


 주문을 받고 나서 로스팅하거나, 당일 로스팅한 커피를 출고한다고 웹사이트에 명시한 기업 및 업체들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갓 볶은 공정무역 커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색 역시 좋은 편입니다. 가나다순으로 나열하였습니다.


 게포커피

 그라나다카페

 짐마카페


 해당 단체나 업체의 웹사이트에서 직접 주문한 물건은 로스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물건이겠지만, 오픈마켓이나 종합 쇼핑몰과 같은 곳에서 팔고 있는 물건은 로스팅한 지 꽤 지난 물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해당 웹사이트에 찾아가 직접 주문하는 편이 가장 안전하며, 사정이 있어 다른 곳에서 구입해야 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확인을 하는 편이 좋습니다.


 목록에서 빠진 업체도 몇 곳 있습니다.


 비채커피는 '공정무역 지향'이라고 했지만 이곳에서 주력으로 팔고 있는 브라질 스페셜티는 몬테알레그레 농장에서 직수입한 커피입니다. 몬테알레그레 농장의 넓이는 18000ha가 넘습니다. 논으로 치면 약 27만 마지기, 옛날의 만석꾼 스물 일곱 명이 소유한 땅을 모은 면적입니다. 커피 영세농가는 대략 1ha 안팎의 땅에 농사를 짓는 걸 생각하면 어마어마하게 넓은 겁니다. 품질로 승부하며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대형 농장과 직거래를 하는 것이 과연 공정무역이라는 말에 적합한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뺐습니다. (2013년 10월경 출시된 에콰도르 SHB는 영세 조합 코프로카프와 거래하므로 공정무역이라는 말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지만, 정작 이 상품 소개 페이지에는 공정무역 지향이라는 말이 빠져 있습니다. 뭐라구요?!) (※2014년 1월 21일 수정 이전에는 18000ha가 대한민국보다 넓다고 적혀 있었으나 심각한 착오였습니다. 한반도의 면적은 약 223,348km²이고 이것만으로도 2천2백만 ha가 넘습니다─면적을 km²단위로 계산한 숫자에 0을 두 개 붙이면 ha단위가 됩니다. 부속도서의 면적을 합하면 이보다 더 넓어지겠지요)


 마카조은 커피는 강원도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고, 종류도 제법 다양하고, 가격도 좋습니다. 흠을 잡자면 4만 원 미만으로 주문할 때 붙는 배송료 4천 원이 꽤 부담스럽게 다가오며, 로스팅 일자를 명시하지 않아서 일일이 물어봐야 한다는 점이 있겠습니다. 이 때문에 목록에서 뺐습니다.


 아름다운커피, 비마이프렌드, 피스커피는 저에게 비교적 흔하지 않은 커피[각주:4]를 구할 수 있는 창구입니다. 다양한 산지의 커피를 마셔보고 싶은 저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이지요. 페루, 치아파스, 자바는 커피 블렌딩을 할 때 베이스로 삼기에 적당한 커피이기도 해서 앞으로도 가끔씩 찾게 될 것 같습니다.




 각주


  1. 노동력 착취, 단일경작에 의한 환경 파괴, 판매자와 구매자의 불평등한 관계… [본문으로]
  2. 오래 전에 마셨던 커피와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 또는 오래 전에 마셨던 커피 1과 오래 전에 마셨던 커피 2가 어떤 측면에서 다른 맛과 향을 가지고 있는지 떠올리고, 비교하고, 묘사하는 일. [본문으로]
  3. 몇몇 커피 체인점이나 대형 기업에서 파는 원두도 이렇게 한 달이 지난 경우가 있으니 이는 공정무역 커피만의 문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본문으로]
  4. 네팔, 우간다, 페루, 치아파스, 자바, 동티모르 커피는 상대적으로 파는 곳이 적습니다. 브라질, 콜롬비아, 과테말라 안티구아,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인도네시아 만델링, 케냐, 코스타리카 타라주 같은 커피들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확연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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