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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키시 커피를 만들어 마시게 된 지도 그럭저럭 두 달이 지났습니다. 8월 20일쯤 제즈베로 쓰기에 적당한 크기의 구리 냄비를 사고 나서 2분 30초 동안 추출하는 레시피를 꾸준히 유지하다 보니 이런저런 감상과 노하우(?)가 쌓이더군요. 공유하는 겸하여 글을 올립니다.




 #1.


 밑바닥 지름 9cm, 높이 5cm의 구리 냄비는 약 8g의 원두를 넣고 100ml의 물을 부어 1인분의 터키시 커피를 끓이기에 적당한 크기입니다. 어쩌다 2인분을 끓여야 할 일이 생기면 110ml 정도의 물을 붓고[각주:1] 약 12g의 원두를 넣어 끓여낸 다음, 뜨거운 물을 섞어 200ml를 맞춥니다. 일종의 1인분/2인분 겸용 냄비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렇게 진하게 끓여내어 희석해 2인분으로 만든 커피는, 처음부터 1인분으로 끓여낸 커피보다는 조금 연합니다.


 따라서 주로 2인분을 끓인다면 밑바닥 지름 11.3cm, 높이 6.3cm[각주:2] 정도 되는 구리 냄비를 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주로 3인분을 끓인다면 밑바닥 지름 13.0cm, 높이 7.2cm정도, 주로 4인분을 끓인다면 밑바닥 지름 14.3cm, 높이 7.9cm정도 되는 냄비를 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2.


 거품이 보글보글 치솟으면 냄비를 들어올려 거품을 가라앉히고, 가라앉으면 다시 불 위에 올려놓기를 세 번쯤 반복하면 터키시 커피가 완성됩니다.[각주:3] 터키시 커피의 추출 시간은 이렇게 어림잡혀 있지요. 따라서 추출 시간에는 직접 손을 대기 어렵습니다.[각주:4] 터키시 커피의 진한 정도를 바꾸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요인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① 원두의 양 : 원두를 많이 넣으면 진해집니다.

 ② 원두의 분쇄도 : 원두를 굵게 분쇄하면 쓴맛이 줄어들어 연하게 느껴집니다.

 ③ 물의 양과 희석 : 적은 양의 물로 끓여내어 나중에 뜨거운 물을 타 희석하면, 처음부터 적정량의 물로 끓여냈을 때보다 연해집니다.


 커피를 짧은 시간에 끓여내면 쓴맛과 잡맛이 줄어들고 향이 보존되므로, 추출 시간은 가능한 짧게 가져가는 편이 좋습니다. 물의 양을 유지하면서 추출 시간을 줄이려면 열전도율이 좋은 소재의 냄비를 쓰거나 화력을 늘리면 되겠지요.


 ①, ②, ③의 방법을 조합하면 터키시 커피의 진한 정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연한 맛을 선호한다면, 원두를 조금 굵게 분쇄하거나 나중에 뜨거운 물을 타 희석하는 방법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는 평소에 설탕 정도의 굵기(모카포트에 쓸 만한 굵기)로 터키시 커피를 끓입니다. 드립과 프렌치프레스의 중간 굵기로 분쇄한 원두로 터키시 커피를 끓여 본 적이 몇 번 있는데, 8g의 원두에 100ml의 물을 붓고 끓이니 평소보다 조금 부드러운 맛의 커피가 나왔습니다. 원두를 바꾸어 가며 마시다가 '이건 좀 많이 독하네?' 싶으면 1인분(100ml)에 30ml정도의 물만 섞어주어도 제법 연해져서 마실 만해집니다.




 #3.


 평소대로 1인분을 추출할 때[각주:5]는 원두를 먼저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물을 부은 다음[각주:6] 그대로 끓입니다. 별로 저어줄 필요가 없어요. 첫 번째로 거품이 치솟을 때 냄비를 들어올리면서, 거품층 위에 떠 있는 원두 가루가 골고루 흩어지게 냄비를 살살 흔들어 주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2인분을 추출할 때는 끓이기 전에 원두를 깔고 그 위에 물을 부은 다음 한 번 스푼으로 저어주고, 첫 번째로 거품이 끓어오를 때 거품층 위에 있는 원두 가루를 한 번 스푼으로 저어줍니다. 이렇게 저어주지 않으면 거품이 치솟는 데 한참 시간이 걸려 추출 시간이 길어지는데, 거품층 위에 있는 원두 가루에서는 제대로 추출이 일어나지 않고 냄비 밑에서 끓는 원두 가루에서는 과추출이 일어나서 맛이 나빠질 수 있지요. 가끔은 1인분을 추출할 때도 원두가 좀 많이 들어갔다 싶으면 거품층 위에 원두 가루가 둥둥 떠서 스푼으로 저어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4.


 제가 터키시 커피를 끓이는 방식의 장점을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① 핸드 드립 커피나 모카포트로 끓여낸 커피와 비교하면 원두를 비교적 적게 사용하고 종이 필터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서 좋습니다. 핸드 드립과 비교하면 비교적 낮은 추출 실력으로도 최소한의 맛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장점을, 모카포트와 비교하면 가스켓과 같은 소모품을 교체해 주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을 추가로 가집니다.


 ② 종이 필터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원두의 유분을 거의 보존할 수 있습니다.


 ③ 투입하는 원두의 양, 분쇄도, 추출하는 데 쓰는 물의 양을 비교적 유연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원두 20g정도를 에스프레소 머신에 쓸 만한 굵기 정도로 갈아서 1인분을 끓이면 정말 진한 커피가 나오는데, 핸드 드립이나 모카포트로는 이 정도의 유연함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④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스테인리스 시에라 컵은 플라스틱 드리퍼보다도 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티타늄으로 코팅한 알루미늄 시에라 컵도 꽤 적당한 가격에 구할 수 있지요.


 당연히 단점도 있지요.


 ① 종이 필터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적어도 한 번은 추출한 커피를 다른 그릇(깊은 도자기컵 등)에 따라내어서 미분을 가라앉힌 다음 윗물만 따라 쓰는 식으로 걸러내야 합니다. 3~5분 정도는 식혀 줘야 하지요. 이 때 향이 손실되고 맛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② 핸드 드립 커피나 모카포트로 끓여낸 커피보다 거친 맛이 납니다. 냄비에 붙은 채 그을린 원두의 냄새가 커피에 더해집니다.[각주:7]


 ③ 구리 냄비는 비쌉니다. 남대문에서 구입한 지름 9cm, 높이 5cm의 구리 냄비는 7만원이 넘었습니다. 어지간한 알루미늄 모카포트보다 비쌉니다. 모비엘(Mauviel) 같은 브랜드 제품으로 가면 더 비싸집니다. 으악!


 ④ 구리 냄비는 관리하기 까다롭기로 알루미늄과 자웅을 겨룹니다. 물방울이 맺혀 있는 채로 말리면 물방울 모양으로 얼룩이 생기기 때문에 물방울을 닦아주고서 말려야 하고, 지문이 묻으면 지문 모양으로 녹이 슬기 때문에 지문을 제때제때 닦아주어야 합니다. 이왕이면 구리로 된 부분은 아예 손도 대지 말아야 하고요. 추출을 마치고 냄비를 제대로 닦으면 커피가 식고, 냄비를 대충 던져놓고 커피를 마시자니 불안해서, 추출이 끝나면 냄비를 적당히 씻어주고 물기를 닦은 다음 커피를 마시고, 커피를 다 마시면 냄비를 제대로 씻어주고 물기를 닦아 말리고 있습니다. 아마 저희 집 주방용품 중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녀석이 이 구리 냄비일 겁니다.




 #5.


 이러니저러니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터키시 커피는 반영구적인 주방용품으로 추출할 수 있는 가장 본격적인 커피일 겁니다.[각주:8] 미리 추출해서 보존해둘 필요가 있는 커피를 준비할 때는 여전히 콜드 브루 커피를 만들지만, 그때그때 추출해서 마실 커피를 준비할 때는 터키시 커피를 끓입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이 방법을 쓸 것 같습니다.




 각주


  1. 분쇄한 원두가 물을 머금은 채로 바닥에 남기 때문에, 원두를 더 넣으면서 물의 양을 유지하면 최종적으로 따라낼 수 있는 커피의 양이 줄어듭니다. [본문으로]
  2. 밑바닥 지름 9cm, 높이 5cm에 각각 ₃√2를 곱한 크기입니다. [본문으로]
  3. 혹시 거품이 보글보글 치솟지 않는다면, 보글보글 끓고 나서 30초 정도 기다린 다음 불을 끄면 대략 비슷한 정도로 추출이 됩니다. [본문으로]
  4. 냄비의 소재, 화력, 물의 양 등으로 추출 시간을 변경할 수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추출 시간이 짧은 편이 쓴맛과 잡맛이 덜 추출되고 향이 덜 날아가서 좋습니다. 따라서 열전도율이 좋은 냄비와 강한 화력을 유지하면서, 다른 조건(원두의 양, 원두의 분쇄도, 물의 양)에 손을 대는 편이 커피의 맛과 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본문으로]
  5. 원두 8g을 모카포트 굵기로 분쇄하여 넣고 물 100ml를 부어 끓입니다. 밑바닥 지름 9cm, 높이 5cm의 구리 냄비를 사용합니다. [본문으로]
  6. 이 때, 물줄기 때문에 원두가 밀려나 한쪽에 쌓이지 않도록 나선형으로 돌아가며 부어줍니다. [본문으로]
  7. 일반 등급의 커피를 즐긴다면 취향 정도의 차원에 머무는 문제일 겁니다. 강한 맛과 구수한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스페셜티 커피나 COE 커피를 즐긴다면 원두의 미묘한 맛과 향을 거친 맛과 그을린 냄새가 덮어버려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커핑 능력을 계발할 때 거친 맛이나 그을린 냄새에 익숙해졌다면 미묘한 맛과 향을 잡아내기 힘들어질 수도 있고요. [본문으로]
  8. 모카포트는 가스켓을 필요로 합니다. 드리퍼에 금속 필터를 사용하면 반영구적이긴 합니다만, 이쯤 되면 이미 주방용품에서는 한참 멀어집니다. '반영구적인 주방용품'은… 그냥 제가 가장 좋아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장르(?)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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