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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원두 이야기

원두 쇼핑의 기술

느린악장 2014. 3. 22. 09:34

 원두를 구입해 커피를 추출해 마시는 생활을 한 지도 어느덧 열 달이 지났습니다. 판매자의 웹사이트를 열심히 돌아다닌 시간도, 프로모션의 기회를 잡고 쿠폰을 쓰기도 하며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원두를 사려는 머리싸움을 한 경험도 그만큼 쌓였습니다. 그리하여 판매자를 훌륭하게 벗겨먹는 쇼핑의 기술을 다루는 글을 한 편 쓸 정도가 되었습니다.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맹자(孟子)에 나오는 말이고, 오늘의 떡밥입니다. "하늘이 주는 좋은 때는 지리적(地理的) 이로움만 못하고, 지리적 이로움도 사람의 화합(化合)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전쟁을 할 때 아군에 유리한 좋은 때를 잡았어도 적이 우리보다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으면 승리하기 어렵고, 아군이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어도 적들이 한 마음으로 뭉쳐 있다면 승리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병법에 대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이 내용은 원두 쇼핑에도 어느 정도 적용됩니다. 人和─판매자와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면 좋은 가격 조건에 원두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고, 地利─판매자의 오프라인 매장에 들르기 좋다면(집 근처나 직장 근처에 판매자가 있다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만큼 원두를 구입할 수 있거나 배송비를 절약할 수 있는 등의 이득을 보며, 天時─판매자가 프로모션이나 할인을 진행하는 기간을 이용한다면 그만큼 좋은 가격 조건에 원두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화(人和)나 지리(地利)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므로 한 편의 글에서 모두 다루기는 힘드니, 이 글에서는 천시(天時)─즉 쇼핑의 타이밍에 한정하여 내용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언젠가는 地利에 대하여 '원두 쇼핑하기 좋은 곳(地域)' 정도의 테마로, 人和에 대하여 '커피 쇼핑몰 멤버십의 선택과 집중' 정도의 테마로 또 다른 글을 쓸 것도 같습니다. 방대하고 예민한 테마인 만큼 자료 수집과 글 다듬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1월부터 12월까지, 원두 판매자가 프로모션이나 할인을 자주 진행하는 때를 살펴보면 대략 넷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월~2월 사이의 설날 시즌

 3월~5월 사이의 신학기~가정의 달 프로모션 시즌

 9월~10월 사이의 추석 시즌

 12월의 크리스마스 시즌


 위에 명시된 것들 중에서 특히 중요한 때는 크리스마스에서 설날로 이어지는 연말연초 시즌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체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판매자나 오픈마켓이나 결제대행사(네이버 체크아웃 등)에서 쿠폰, 할인행사, 관련 이벤트가 몰아치는 때이니까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나 예멘 모카 마타리와 같은 값비싼 원두가 20~30% 할인된 가격에 나오기도 하고, 특가 선물세트 · 패키지 · 기획상품도 쏟아져 나옵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 시즌을 즈음해 원두가 떨어지게 재고를 관리하면(?) 연말연초 시즌의 폭풍과 같은 프로모션 때 이것저것 구입할 여유가 생깁니다. 시즌의 첫머리에 대량 구매할인 패키지(500g이나 1kg)를 덥석 구매해 버리면 연말 프로모션 때 사고 싶은 물건이 나와도 구매할 여유가 없으니, 12월 초중반의 프로모션 때는 대용량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끝자락과 신년 프로모션의 초입, 그러니까 12월 25일에서 1월 4일까지 약 열흘 사이에 대량 구매할인 패키지가 나왔다면, 설날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대부분 소비할 수 있는 범위에서 구매하는 편이 좋습니다.


 1964년부터 2014년까지 51년 동안 설날(당일)은 1월 22일[각주:1]과 2월 20일[각주:2] 사이에서 움직였습니다. 그러니까 1월 4일부터 설날까지는 그 해의 음력에 따라 보름에서 한 달 보름 정도의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입니다. 1주일에 100g쯤 소비한다면, 12월 25일~1월 4일 사이에 사서 쌓아둘 수 있는 원두의 최대량은 그 해의 음력에 따라 약 200g에서 600g 사이가 됩니다. 이 분량을 모두 소모할 때쯤 설날 시즌이 시작될 것이고, 다시 쇼핑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커피의 맛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원두의 신선도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미리 원두를 대량으로 사서 쌓아두는 건 별로 권장할 일이 아니죠. 하지만 시즌을 잘 이용해 원두를 미리 사서 쌓아두기로 결심하셨다면, <이 블로그의 커피 원두 보관 방법>의 ②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폭풍과 같은 쇼핑의 시간이 지나면 참회의 2월 말, 유혹의 3월 초, 그리고 잔인한 4월이 차례로 여러분을 맞이할 겁니다. 아마도요(…). 신학기~가정의 달 프로모션 시즌은 상당히 산발적이고 임의적인 시즌이라, 판매자에 따라 이벤트를 수시로 터뜨리기도 하고 그냥 지나가기도 합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프로모션이 그중 확률이 높은 편입니다만, 프로모션의 대상이 선물 패키지일 경우 구성에 비해 가격 조건이 그다지 좋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말 그대로 복불복인 시즌입니다.


 가정의 달 프로모션이 끝나면 추석 때까지는 각 쇼핑몰의 산발적 프로모션, 할인, 이벤트 외에는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을 것입니다. 컵 오브 엑설런스 경매가 하나둘 낙찰 단계까지 진행되고 한국 판매자들이 하나둘 '뉴 크롭' COE 커피를 풀기 시작하는 것이 이 시기 쇼핑에 활력을 불어넣는 몇 안 되는 요소입니다.


 그러다 추석 시즌이 시작되면 다시 폭풍이 몰아칩니다. 연말연초 시즌에 버금가는 온갖 쿠폰, 할인행사, 이벤트가 쏟아지지요. 따라서 추석 시즌을 즈음해 원두가 떨어지게 재고를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모션이 시작되면 이것저것 살펴본 다음에 사들이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쿠폰, 할인행사, 관련 이벤트가 가장 많을 때는 연말연초 시즌과 추석 시즌입니다.


 2) 연말연초 시즌은 비교적 긴 편이므로(크리스마스~설날) 시즌의 첫머리에 너무 많은 원두를 사서 쌓아두면 사고 싶은 물건이 나와도 구매할 여유가 없으니, 12월 초중반의 프로모션 때는 대용량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설날을 전후해서는 조금 많이 사서 쌓아두어도 됩니다.


 3) 추석 시즌은 비교적 짧으므로, 조금 많이 사서 쌓아두어도 됩니다.


 평소에는 주로 거래하는 판매자에게서 원두를 구입하다가 시즌을 만났을 때 이 요령을 쓰면, 평소에 선뜻 사먹을 엄두가 나지 않던 원두나 커피 도구를 구입할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각주


  1. 1966년, 2004년. 그 다음날인 1월 23일이 설날 당일이었던 해는 1974년, 1993년, 2012년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2. 1985년. 그 전날인 2월 19일이 설날 당일이었던 해는 1996년, 전전날인 2월 18일이 설날 당일이었던 해는 1977년, 1988년, 2007년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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