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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장미는 꽃과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도달할 수 없는 불가능의 상징이었습니다. 4천 여 년의 시간, 1만 5천의 교잡종, 셀 수조차 없는 수많은 시도 속에서도 '파란 장미'는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a blue rose'는 "있을 수 없는 것, 안될 말"을 뜻하는 관용어가 되었지요.


 그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은 이렇습니다. 장미에는 파란색을 내는 색소 '델피니딘'이 전혀 없습니다. '델피니딘'을 합성하기 위해 필요한 효소 '플라보노이드3(Flavonoids 3)', '히드록시라아제5(Hydroxylase 5)'가 장미에 없으며, 델피니딘은 pH 6-7의 액포(液胞, Vacuole) 속에서 생성되는데 장미의 액포는 pH 4-5로 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1945년 '그레이 펄', 1957년 '스털링 실버', 1964년 '블루 문'이 등장했지만 이것들은 실제로는 파란 색이 아닌 연보라색의 장미였습니다. 그 후에도 미국의 칼젠 연구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유장열 박사, 호주의 플로리진 사의 과학자들─그 외의 많은 유전공학자들이 불가능에 도전했습니다.


 2004년 6월 산토리홀딩스가 파란 장미를 개발했다는 기사가 올라왔지만, 사진을 확인해보면 여전히 연보라색입니다. 현재까지 나온 장미 품종 중 파란 장미에 '가장 가깝다'고 인정받을 뿐이지요. '파란 장미' 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떠올리게 마련인, 프러시안 블루를 하얀 광택지 위에 인쇄한 듯한 파란색의 모습이…아닙니다.


 이 쯤에서, <파라다이스 키스>의 한 장면을 보고 가겠습니다.



 인스턴트 커피에서는 크레마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크레마는 에스프레소를 제대로 추출했을 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부스타를 섞은 에스프레소 블렌드를 사용하거나 '크레마 필터'를 사용해 인공적으로 크레마를 만드는 것은 그래도 에스프레소라는 추출법의 범위 내에서 요령을 부리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인스턴트 커피를 물에 풀었을 때 크레마가 나타나게 하는 것은 요령을 부리는 정도가 아닙니다. 크레마가 아닌 것을 크레마처럼 보이게 수를 쓰는 것이지요.


 네스카페 수프리모 크레마나 칸타타 노뜨를 물에 풀면 일시적으로 크레마처럼 보이는 거품이 잔 위에 나타납니다. 그 정체는 아주 작은 공기방울입니다. 커피 가루를 다공질로 만들어 물에 녹을 때 공기방울이 올라오게 한 것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2g 안팎에 불과한 커피 가루로 만들어낼 수 있는 공기방울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생겨난 거품은 몇십 초 안에 사라집니다. 커피를 녹이고 첫 모금을 마시는 짧은 시간의 만족감을 주기에는 이 정도로 충분하겠지만… 이것은 진짜 크레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술가'의 크레마일 뿐입니다.




 칸타타 노뜨는 상당히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습니다. 프리미엄 스틱커피 3종 비교를 할 때 네스카페 수프리모 크레마가 들어간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이 때문이었습니다. 롯데마트나 롯데수퍼가 보이면 들어가서 커피 매대를 기웃거려 보아도 칸타타 커피믹스만 있을 뿐 프리미엄 스틱커피인 칸타타 노뜨는 없더군요. 롯데 매장에 롯데 커피가 없다니! 그러다가 얼마 전 아무 기대 없이 들어간 홈플러스에서 칸타타 노뜨를 찾았고, 저에게는 파란 장미만큼이나 '구할 수 없는 것'이었던(?) 커피를 드디어 마시게 됐습니다.


 칸타타 노뜨의 입자는 가느다랗습니다. 찬물에 잘 녹지 않고, 잔에 물을 먼저 붓고 그 위에 커피 가루를 부으면 깔끔하게 녹지 않습니다. 미분이 늦게 가라앉는 편이고 떠오르기도 잘 떠올라서 맛이 텁텁해지기 쉽습니다. <프리미엄 스틱커피 맛있게 추출하기>에서 언급한 내용을 모두 지킬 필요가 있는—참으로 까다로운 커피지요.


 유감스럽게도, 구하느라 고생한 보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개별포장된 커피를 뜯었을 때 파푸아뉴기니 마라와카 블루마운틴 티피카를 리뷰할 때 느꼈던, 로스팅 과정에서 배기가 제대로 되지 않은 듯한 탄내 내지 쩐내가 났습니다. 누군가 '화한 맛이 난다'고 표현했던 톡 쏘는 듯한 자극성 있는 맛도 났습니다. <Flavor Wheel, 커피의 맛과 향 [1]>에서 언급한 sharp한 맛, 백반 혹은 명반을 혀에 올렸을 때의 떫고 짜고 시고 한 날카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로스팅이 충분히 진행되지 않아 원두가 속까지 익지 않았을 때 난다는 떫은 맛이 이것인가 할 만큼 명확했으며, 특히 커피가 식었을 때 그 정도가 더했습니다. 종합적으로 추정해보면 원두를 로스팅하는 과정에서 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화력을 강하게 하고 로스팅 시간을 짧게 잡은 세팅이 원두 특성에 맞지 않아 이런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싶습니다.


 칸타타 노뜨는 어떻게 말을 만들어 보려 해도 포지션이 나오지 않는 프리미엄 스틱커피입니다. 구하기 편한 것으로는 카누만 못하고, 산미가 좋은 것으로는 네스카페 수프리모 크레마만 못하고, 마케팅은 루카만 못하고, 컬트적인 매력은 강글리오만 못하고… 롯데 커피인데도 롯데 매장에 없는 이유가 이해될 정도였습니다. 보온병이라도 예쁜 걸 끼워주든가 말이야


 그래도 이런 제품을 만든 것이 의미있는 도전이었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 주고 싶습니다. 그럭저럭 산미는 괜찮았고 강배전에 의한 탄맛이나 탄내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정을 다듬고 생산설비를 개선한다면 앞으로 개선될 여지는 충분히 있습니다. 짠돌이로 유명한 회사에서 돈을 들여 공정개선과 설비투자를 할 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파란 장미'에 대한 내용은 다음 세 편의 기사를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유전공학으로 '파란장미' 만든다 - 美 칼젠연구팀 실험한창> ─<경향신문 (1990.11.06)>[링크]


 <‘불가능’이라는 이름의 파란장미> ─<KISTI의 과학향기 (2004-04-26)>[링크]


 <성년의 날에 ‘파란 장미’ 선물하세요~> ─KISTI의 과학향기 (2010-05-10)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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