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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은 스크롤을 중간 정도까지 내리면 나옵니다. '파보일드 커피(Parboiled Coffee)'는 편의상 제가 붙인 이름입니다.
'티포트 브루 커피'에서 언급한 대로, 제가 주로 사용하는 추출법인 콜드 브루 커피, 터키시 커피, 티포트 브루 커피를 관통하는 지향은 ①주방용품으로 추출한다, ②종이 필터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③유분을 걸러내지 않아 맛을 보존한다, 이 세가지로 정리됩니다. 그중 ②번 사항은 환경 문제와 관련되어 있지요.
환경 문제와 맞물리는 이야기지만, 한국의 전기는 대부분 화력 발전을 통해 생산됩니다. 석탄이나 석유 같은 연료를 태워서 전기를 만드는 것이지요. 그 점에서 전기를 열원으로 쓰는 건 환경 측면에서 볼 때 명백한 낭비입니다. 처음부터 연료를 때면 열효율이 훨씬 좋을 텐데, 연료를 때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손실이 일어나고 전기를 열로 만드는 과정에서 손실이 일어나니까요. 1
저는 편리하다는 이유로 구리 냄비로 끓이는 터키시 커피보다 전기 포트로 끓인 물을 부어 추출하는 티포트 브루 커피를 선호했습니다. 하루에 한 잔씩 마시는 커피에 상당한 양의 열수가 필요한데(커피를 추출하는 데 약 200~250mL, 잔을 예열하는 데 또 200~250mL), 이걸 모두 전기를 열원으로 써서 끓인다고 생각하니 신경이 좀 쓰였습니다. 가스렌지로 물을 끓여 커피를 추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훌륭한 핑계가 생긴 김에 유리 주전자를 찾아보게 되었지요.
저는 용량이 500~750mL정도 되고 밀크저그와 같은 형태의 주둥이를 가진, 직화가 가능한 유리 주전자를 원했습니다. 유리 주전자는 구리 냄비보다 닦아내기 편하고, 스테인리스 주전자에 비해 커피 맛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적으니까요. 하지만 이 조건에 들어맞는 유리 주전자는 찾기 힘들었습니다. 가스불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유리 주전자는 하나같이 주둥이가 '주전자 모양'이었고, 약탕기 형태의 주전자는 제가 원하는 용량으로 나오지 않았거든요. 2
그래서 고민 끝에 하리오 드립서버를 골랐습니다. 제조사는 "직화(로)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直火は使用できません)."라고 명시한 제품이지만, 판매 직원의 말로는 제한적으로는 직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직화 용도로 개발된 제품이 아니라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지켜야 하지만, 어쨌거나 직화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요.
하리오 드립서버는 직화 용도로 개발된 제품이 아닙니다. 저는 다음 사항을 준수하여 이 제품을 직화로 사용해왔을 뿐, 이렇게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것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점 유념해 주시고 안전에 각별히 신경써 주시기 바랍니다.
1. 하리오 드립서버의 손잡이와 뚜껑은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내열온도는 140°C입니다. 가스불의 열기에 닿으면 녹을 수 있으니, 가스렌지의 가장 작은 불구멍에 올려놓고 약한 불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450mL가 아닌 700mL 모델을 고른 이유 중 하나는, 700mL모델이 밑판이 넓어 가스불의 열기가 손잡이에 조금이라도 덜 닿겠다는 생각 때문에서였습니다) 뚜껑은 벗기고 사용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2. 반드시 유리 표면의 물기를 닦아 주고 불에 올려 주세요. 물기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불에 올리면 유리가 깨질 수 있습니다. 이 주의사항은 비전냄비와 유리 약탕기를 포함한 모든 유리 제품에 적용됩니다.
3. 급격한 온도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조금 전까지 불에 올려놓았던 제품에 찬물을 부어 급히 식히면 유리가 깨질 수 있습니다. (드립서버 용도로 개발되었으므로, 실온에 보관하던 드립서버에 끓는 물을 들이붓는 정도는 괜찮겠지만, 냉장고에 보관하던 제품에 끓는 물을 들이붓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주의사항은 비전냄비와 유리 약탕기를 포함한 모든 유리 제품에 적용됩니다.
4. 그 외 충격에 주의하는 등, 유리 제품을 다룰 때 지켜야 할 사항을 준수합니다.
파보일드 커피는 처음부터 원두 가루를 넣고 끓이는 터키시 커피에 비해 쓴맛이 적고 신맛이 강한 커피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추출할 때의 포인트는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1. 주전자에 물만 넣고 끓이다가, 물이 끓으면 원두 가루를 투입하고 끓입니다. 3
2. 터키시 커피보다 짧은 시간 내에 추출을 완료합니다.
3. 드립과 프렌치프레스의 중간 굵기로 분쇄한 원두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1. 원두 가루를 투입할 때 갑자기 거품이 일어나며 물이 끓어넘칠 수 있습니다. 분쇄한 원두를 넣을 때에는 잠시 가스불을 끄고 아주 적은 양의 원두(1/2 ~ 1작은술)만 넣거나, 투입하기 전 원두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미리 뜸을 들인 다음 넣어 주세요. 정말 주의하셔야 합니다!
2. 유리 주전자로 파보일드 커피를 추출한다면, 위에 언급한 주의사항을 지켜 주세요.
다음은 제가 사용하는 추출법입니다.
준비물
물 200mL
원두 8g
유리 주전자 (여기에서는 하리오 드립서버)
전기 포트 또는 제2의 주전자
소스보트 또는 작은 밥그릇 (원두 가루를 뜸들일 때 사용합니다)
커피잔
커피 분쇄 도구
눈이 가는 체
기타 필요한 도구 (손잡이가 긴 작은술, 스톱워치 등)
1. 소스보트 또는 작은 밥그릇에 원두 가루를 담아둡니다.
2. 유리 주전자에 150mL의 물을 담고 불을 지핍니다.
3. 유리 주전자에 담은 물이 끓을 기미가 보이면 50mL의 물을 끓입니다. 4 5
4. 50mL의 물이 끓으면 곧바로 원두 가루에 부어 45초 동안 뜸을 들입니다. 6
8. 천천히 마십니다.
원두 가루를 물에 넣고 끓인다는 점에서는 터키시 커피의 계열로 볼 수 있고, 굵게 분쇄한 원두 가루를 넣고 추출한 다음 거른다는 점에서는 프렌치 프레스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맛은, 쓴 맛이 상대적으로 적고 산미가 상대적으로 강해 드립 커피에 가깝습니다(원두를 굵게 갈고 짧은 시간 동안 추출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집에 있는 도구들 중에서 생산자의 의도대로 쓰이고 있는 제품은 전동 그라인더밖에는 없는 것 같네요. 커피 가는 페퍼밀, 커피 우리는 계량컵, 커피 우리는 찻주전자, 커피 끓이는 구리 냄비, 커피 끓이는 드립서버까지. 어떻게 하면 이 물건을 목적과 다르게 써 볼까 궁리하는 것도 하다 보면 중독됩니다. 재미있으니까요. 이제 전동 그라인더로 미숫가루만 갈면 마지막 예외도 없어질 것 같은데…
구리 냄비로 끓일 때보다는 한결 편합니다. 닦아야 하는 그릇의 숫자가 하나 줄고, 유리로 만든 드립서버는 구리 냄비보다 관리하기 쉬우니까요. 사전 세팅에 들어가는 시간도 적어서 10, 결과적으로 커피 한 잔을 끓이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 짧아집니다. 티포트나 텀블러로 커피를 우리게 된 이유가 시간 부족과 귀차니즘 때문인 걸 생각하면, 제 손에 제법 잘 맞는 추출법입니다. 당분간은 이렇게 끓여 마셔야겠습니다. 구리 냄비는 두유에 부어 마실 뜨거운 물 끓일 때 쓰는 식으로 새로운 용도를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고생해서 산 비싼 냄비를 놀리기는 아까우니까요. 11
각주
- 하지만 요리 측면에서 보면 열원으로서의 전기는 화력을 조절하기 편하고 요리에 냄새(석유를 태울 때의 냄새라든가)가 배지 않으며, 이산화탄소를 만들지 않으므로 환기를 거의 하지 않고도 조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요. 이러한 장점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으로]
- 주둥이가 '주전자 모양'이면 주전자 안에서 커피를 추출한 다음 잔에 부었을 때, 주둥이 안에 남은 커피를 닦아내기 까다롭습니다. [본문으로]
- 원두 가루 투입 시점의 온도를 높임으로써 추출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열전도율이 낮은 소재의 주전자로 약한 불을 사용해 끓여도 비교적 무난하게 추출할 수 있고요. [본문으로]
- 아주 작은 공기방울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펄펄 끓을 때까지 30초~1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 전기 포트 또는 제2의 주전자를 사용합니다. [본문으로]
- 이 과정에서 원두 가루 속에 남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고, 원두를 끓는 물에 투입하였을 때 갑자기 거품이 일어나며 물이 끓어넘치는 정도를 줄일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 불을 끄기 전의 물은 펄펄 끓는 상태여야 온도가 맞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양의 원두를 투입해 거품이 심하게 치솟지 않게 하고, 괜찮겠다 싶으면 원두를 담은 그릇을 기울이고 숟가락을 움직여 나머지 원두를 넣습니다. 틈틈이 저어주면서, 원두를 흘리지 않으면서, 물이 튀지 않게 원두를 투입하면서 45초 내에 원두를 투입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 상황에 따라 5~10초 정도 더 끓일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 식히는 컵에 부었다가 옮겨담는 과정을 생략하고, 커피잔을 예열하는 과정을 생략합니다. 원두를 드립과 프렌치프레스의 중간 굵기로 분쇄하면 눈이 가는 체를 통과할 만한 크기의 미분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니 식히는 컵에 부어 미분을 가라앉히는 과정을 생략해도 무방합니다. [본문으로]
- 구리 냄비로 끓이면 4개(냄비+원두가루 담는 그릇+식히는 컵+커피잔), 드립서버로 끓이면 3개(드립서버+원두가루 담는 그릇+커피잔). [본문으로]
- 200mL의 물이 끓을 때까지 몇 분 걸리는데, 그 사이에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고 30~50mL의 물을 전기 포트에 부어 세팅해둘 수 있습니다. 200mL의 물이 끓을 기미가 보이면 전기 포트에 세팅한 물을 끓여 원두를 뜸들이고, 뜸들이기가 완료되면 가스렌지 불을 끄고 원두를 투입하면 됩니다. 구리 냄비로 터키시 커피를 끓일 때는 불 위에 올려놓고 2분 만에 거품이 치솟으니, 이리저리 움직일 여유가 별로 없어 원두도 미리 갈아야 하고 구리 냄비 표면에 흘러내린 커피 물을 닦아낼 티슈(곧바로 닦아내지 않으면 구리 냄비에 얼룩이 생깁니다)를 미리 준비해서 식히는 컵 밑에 받쳐놓아야(받쳐놓지 않으면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날아가는 수가 있습니다) 하는 등, 자잘한 사전 세팅에 손이 갑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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