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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 원산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본격 비싸고 귀하신 원두"를 주제로 짧은 글을 한 편 쓸 만큼 글감이 모였습니다. 대체로 유명하고, 커피 애호가들이 선호하며, 수요에 비해 늘 공급이 딸려 가격이 높은 커피 원두 다섯을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을 겁니다. 이른바 전통의 강호들이죠.


 - 레위니옹 부르봉 포앙튀 (Burbon Pointu, Reunion)

 -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샤 (Esmeralda Gesha, Panama)

 - 세인트헬레나 커피 (St. Helena)

 -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Blue Mountain Coffee, Jamaica)

 - 하와이 코나 (Kona, Hawaii)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생산량이 다른 넷에 비해 월등히 많지만, 수요 또한 월등히 많습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생산량의 80%를 일본에서 비싼 값에 사 간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어지간히 경쟁이 치열한 시장입니다. 블루마운틴을 제외한 나머지 넷은 생산량마저 적습니다.


 이런 전통의 강호들은, 다른 산업분야의 전통의 강호들이 그렇듯이, 다른 제품들보다 한두 단계 높은 품질을 지녔지만 그 한두 단계를 위해 치러야 하는 값이 막대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돈을 쓸 용의가 있는 사람 여럿이 경쟁자라는 건 가격이 필요 이상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는 소리니까요. 일단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100g씩은 사 마셔 보고 싶네요.




 7월 22일 추가 :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샤가 '전통의 강호'라고 하기엔 역사가 짧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게샤가 최고급 커피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4년경으로, 파나마 커피경진대회에서 우승을 거두고 Don Holly가 "컵 안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고 감탄한 일(exclaimed that he had seen the face of God in that cup)이 유명해지면서부터입니다. 적어도 수십 년 동안에 걸쳐 비싸게 팔렸을 레위니옹 부르봉, 세인트헬레나,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에 비해서는 역사가 많이 짧습니다. '전통의 강호'에서 빼 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일단은 남겨 두기로 했습니다.


 글의 흐름에서 조금 벗어난 내용이므로, 나머지는 더보기 상자에 넣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비교적 생소한 이름이 맨 위에 보이실 겁니다. 아무래도 리유니온 버본 포인투라고 읽어야 할 것 같은(ㅋㅋㅋㅋ) 레위니옹 부르봉입니다. 커피 테마 여행상품 선전이나 커피 교양서적, 또는 바리스타 수험서 정도에는 얼굴을 내밀지만, 인터넷의 커피 애호가들이 커피 원두 이야기를 할 때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커피입니다. 한국 사람에게 차례가 잘 돌아오지 않을 만큼 생산량이 적고, 국내 쇼핑몰에서 팔지도 않고, 구매대행까지 해 가며 마셔봐야겠다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일 겁니다. 국내 커피 애호가에게 사실상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이 커피를 찾아낸 과정은 좀 엉뚱합니다.


 웹서핑을 하다 보면 '영국 왕실의 커피'라는 수식어가 붙는 커피를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그리고 가끔씩은 세인트헬레나커피에도 이 수식어가 붙습니다.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영국 왕실에서 진짜로 마시는 커피는 무엇일까요?


 영국 왕실 관계자에게 이메일을 냅다 보내기 전에, 예의상 구글 검색을 좀 해보기로 했습니다. 영국 왕실 납품업체는 Royal Warrant of Appointment 인증을 받는다는 정보가 나옵니다. 인증업체 협회 사이트를 뒤적여서 커피를 담당하는 업체의 목록을 뽑아서 어떤 커피를 팔고 있나 봤습니다.


 대부분은 국내 커피 쇼핑몰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허세력이 독보적인(…) Fortnum & Mason에서 꽤 인상적인 커피를 하나 팔고 있네요. 바로 레위니옹 부르봉입니다.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격을 보세요. 왠만한 원두는 사향고양이 내장 속에서 인고의 시간이라도 보내지 않는 이상 꿈도 꾸기 어려운 몸값입니다.



 레위니옹 섬에서 재배하는 부르봉 품종의 커피… 레위니옹은 지상낙원으로 유명한 외딴 섬이고 고산지대인데다가[각주:1] 섬이 크지 않아서 생산량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여기에 부르봉 품종의 원산지라는 프리미엄이 더해졌으니, 맛만 훌륭하면 비싸게 팔리는 건 일도 아니겠다 싶더군요. 실제로도 그런 모양입니다. 앞으로 어디서 커피 허세력 배틀이 벌어지면(?) 남들 다 알고 있는 코피 루왁 같은 것은 좀 넣어두고 레위니옹 부르봉을 제시해봅시다. 30초 정도는 커피 좀 아는 사람 행세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위에 언급한 다섯 종류는 일상적으로 마시기엔 상당히 비싸고 귀하신 커피이니, 그럭저럭 비슷한 맛이나 느낌을 내어 주는 대체재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궁리를 해 보았지요.


 레위니옹 섬의 부르봉 품종은 브라질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브라질 부르봉 No.2 "같은 이름으로 팔리는 커피들이 레위니옹의 후손들이죠.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생육 환경입니다. 브라질은 남인도양에 있는 섬이 아니고, 레위니옹 섬만큼 지대가 높지도 않습니다[각주:2]. 브라질보다는 지대가 좀 더 높은 콜롬비아나 멕시코 지역의 부르봉 스페셜티나 COE(컵 오브 엑설런스)를 찾아본다면 대체재가 될 만한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과 하와이 코나는 티피카 품종입니다. 재배환경의 영향을 받아 풍부한 향과 부드러운 맛을 갖추었다고 보아야겠지요. 파푸아뉴기니 마라와카 블루마운틴으로 불리는 커피가 제법 합리적인 가격에 나오고 있습니다. 마라와카 지역은 기본적으로 2000m가 넘는 고산지대이니[각주:3], 제법 기대가 되는 대체재입니다. 레위니옹 부르봉 vs 콜롬비아/멕시코 부르봉 스페셜티에 비해 마라와카 블루마운틴 vs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가격도 조금 만만하고 구하기도 쉬운 편이니 언젠가 비교시음을 해 보겠습니다.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샤는 프리미엄급에서 마땅한 대체재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늘에서 재배한다는 특성과 게샤 품종이 워낙 독특해서요. 대신 파나마 SHB 보케테가 눈에 들어오는군요. 향이 풍성하다고 합니다. 언젠가 마셔봐야겠습니다.


 세인트헬레나 커피는 일반적인 아라비카 품종이 아닌 자생종이어서 비슷한 것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냥 커피를 마시면서 나폴레옹… 나폴레옹… 이나 해 봐야겠습니다.




 한 잔 마신다고 눈 앞에 도원경이 펼쳐질 리 없겠지만, 이런저런 흥미와 생각을 일으키는 커피들을 알아가는 재미는 참 깨알같습니다. 예전엔 단순한 카페인 공급원이었던 커피의 맛과 향을 알아가는 재미 말이지요. 그럼 저는 얼마 남지 않은 콜롬비아 수프리모를 마저 사랑해주고, 다음에 살 커피나 좀 고민하고 있겠습니다.




 각주


  1. 구글 맵에서 등고선 켜고 살펴보면 2000m 넘는 곳도 수두룩합니다. [본문으로]
  2. 구글 맵에서 등고선 켜고 2012년에 조생종으로 COE 입상한 농장이 몰린 Minas Gerais주 Carmo de Minas 근처를 둘러보면 1200m 넘는 곳이 별로 없습니다. 레위니옹 섬에 비하면 많이 낮습니다. [본문으로]
  3.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 1100m 이상에서 재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척 높은 고도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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