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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에게는 보온병 수집가 기질이 있습니다. 가방이나 구두가 그러하듯, '딱 맞는' 물건은 드물고 사도 사도 살 게 있는 분야가 보온병이기도 하니까요. 덩달아 텀블러와 머그컵, 그리고 죽통까지 수집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필요한 도구는, 밖에서 아이에게 따뜻한 이유식을 먹이기 위해 필요한 도구와 많이 겹칩니다. 아이 한 명을 건사하는 것은 정말 큰 일이구나, 하는 걸 저는 보온병을 수집하면서 뼈 속 깊이 체험했습니다.


 손을 넣어 닦기 편하게 입구가 넓은 보온용기를 찾다 보니 푸드자(food jar)나 죽통 형태의 보온도시락이 나오더군요. 그리고 이런 물건의 상당수는 이유식 용도로도 팔립니다. 입구가 넓은 죽통은 상대적으로 보온력이 떨어져서[각주:1] 보온병 쪽으로 돌아서다 보니 이제 병을 닦는 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제가 쓰는 조지루시 보온병은 안쪽에 불소코팅[각주:2]이 되어 있는데, 커피의 유분을 씻어내기 위해 병솔을 넣어 문지르면 코팅이 벗겨질 수 있거든요. 벗겨진 코팅 성분이 몸에 들어오면 좋을 리가 없고요. 그래서 코팅이 상하지 않게 보온병 안쪽을 닦아낼 수 있는 부드러운 스폰지를 찾다 보니, 젖병 닦는 스폰지를 사게 되었습니다.





 밖으로 커피를 들고 나갈 생각이라면, 그리고 그 커피를 마실 때까지 따뜻하게 유지하고 싶어서 뭔가를 사고 싶다면, 대략 세 가지 도구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보온병

 2. 보온 기능이 있는 텀블러

 3. 보온 기능이 있는 죽통, 이유식통, 푸드자(food jar), 푸드캐니스터(food canister)




 '보온'이라는 측면에서 보온병을 뛰어넘을 도구는 없습니다. 평범한 텀블러나 죽통에 담은 커피는, 겨울의 추운 날씨 속에서 1시간 이상 이상 열기를 보존하기 힘듭니다.[각주:3] 겨울 날씨에 야외에서 1~2시간 정도 커피의 온도를 유지하고 싶다면 보온병을 쓰는 쪽이 가장 확실합니다.


 보온병을 쓰고, 커피를 담기 전에 보온병을 예열하고, 보온병만 믿지 말고 보온병 바깥에 또 뭔가 보온이 될 만한 것을 씌워서 가방에 넣는 식으로 외부의 냉기를 차단하는 방법을 총동원하면 열기 보존에 도움이 됩니다.


 용량이 클수록 보온병의 보온력은 탁월해집니다. 용량이 2배가 되면 액체가 품는 열량은 2배가 되지만 표면적은 ₃√2배밖에 커지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요. 정말로 확실한 보온을 원한다면 1리터~2리터들이 대형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아다니고, 필요한 만큼만 마시고 나머지를 버리면 됩니다(…). 이 정도 규모에서는 용량이 깡패라, 아폴로 보온병으로도 뜨끈뜨끈한 커피를 마시기에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그럴 생각이 없다면 대개 500ml나 그 이하의 용량에서 보온력이 탁월한 모델을 찾게 되겠지요. 스타벅스 톨 사이즈(355ml)에 가까운 350ml급이 혼자 마시기에는 부담이 적은 편이지만, 그란데 사이즈(473ml)에 가까운 500ml쪽이 보온력 측면에서 유리한 경우가 많아서 고민이 됩니다. 보온력은 끓는 물(측정하기에 따라서는, 95도의 물)을 병에 넣고 밀폐한 다음 상온(보통은 20도)에 방치하였다가 6시간 후의 물의 온도를 재서 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500ml급에서 스펙 상 보온력이 탁월한 모델은 써모스(Thermos)의 FEK-500입니다. 산악용 보온병으로도 유명한 모델입니다. 6시간 후에도 76도의 온도를 유지한다는군요. (SK-2000이 6시간 후에도 79도의 온도를 유지한다는 광고를 볼 수 있으나, 써모스 코리아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확인한 결과 SK-2000의 보온력은 6시간 후 73도였습니다. FEK-500이 SK-2000보다 보온력이 좋습니다)


 350ml급에서 스펙 상 보온력이 탁월한 모델은 써모스(Thermos)의 FEI-351과 에스비트(Esbit)의 350ml 모델입니다. FEI-351은 6시간 후 69도를 유지합니다. FEK-500에 비해 실망스러운가요? 조지루시 JB48 모델은 480ml 모델인데도 6시간 후 70도입니다. FEI-351정도면 체급에 비해 준수한 성능입니다.


 에스비트 350ml는 스펙 상 6시간 후 70도를 유지한다고 되어있는데, 500ml 모델도 6시간 후 70도를 유지한다고 되어 있어 좀 의심해볼 만한 수치입니다. 조지루시의 경우 JB48(480ml)은 70도, JB36(360ml)는 66도입니다. 이러한 추세를 따른다면 에스비트도 500ml와 350ml의 수치에 4~5도 정도의 차이는 있어야 할 텐데 없습니다. 500ml쪽 보온력이 과소측정되었거나, 350ml쪽 보온력이 과다측정되었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현재로서는 판단을 유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에스비트 750ml는 6시간 후 80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편의를 추구한다면 텀블러를 찾게 될 겁니다. 보온병보다는 조금 더 '잔'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고 있고, 커피 체인점에서 음료를 받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도 모양이 나지요. 보온병보다는 입구가 넓어 안쪽에 손을 넣어 닦아내는 것을 시도할 수 있고요. (아무래도 끝까지 손이 들어가지는 않아서, 안쪽 끝을 닦으려면 집게 끝에 수세미를 감아넣어 닦는 등의 수를 써야 합니다)


 제가 찾아본 모델 중에는 콜맨(Coleman)의 머그메이트(Mug Mate)의 보온력이 탁월했는데, 490ml 모델이 6시간 후 64도, 330ml 모델이 6시간 후 56.9도입니다. 보온병 형태에 비해서는 보온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그나마 콜맨은 완전 밀폐가 되는 단순한 구조의 뚜껑을 채용해서 이 정도의 보온력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바깥쪽 뚜껑에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구멍을 만든 텀블러는 보온력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6시간 후 물의 온도를 표시조차 하지 않는 모델도 꽤 많이 있습니다.




 색다른 선택으로는 죽통, 이유식통, 푸드자, 푸드캐니스터라 불리는 모델들이 있습니다. 아주 넓은 입구를 채택한 모델들이지요. 보통 입구가 70~75mm쯤 됩니다. 널찍한 입구 덕에 안쪽에 손을 넣어 닦아내기 편합니다. 단열이 되는 두툼한 뚜껑을 채용하였기 때문에, 가장 바깥쪽 뚜껑에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구멍을 만든 텀블러보다 보온력이 뛰어난 경우가 많습니다. 단점은, 아무래도 '잔'이 아닌 밥그릇처럼 생긴 디자인입니다.


 흔히 볼 수 있는 모델 중에서는 조지루시(Zojirushi)의 SW-ETE50(500ml), SW-ESE35(350ml)가 보온력이 좋은 편입니다. 500ml 모델이 6시간 후 64도, 350ml 모델이 6시간 후 57도입니다. 아웃도어용으로는 스탠리(Stanley)의 어드벤처 푸드자(Adventure Food Jar)가 있는데, 400ml와 300ml 모델이 있고, 300ml 모델이 6시간 후 60도 이상의 성능을 보여줍니다. (400ml는 9시간 후에도 60도 이상의 성능을 보여준다는데, 300ml 모델과 너무 차이가 나는 성능이고, 스탠리의 500ml 보온도시락조차 6시간 후 60도 이상의 성능을 보장한다는 것으로 봐서 400ml쪽 보온력은 과다측정된 것 같습니다)




 스탠리 아웃도어 보온머그컵 470ml모델은 죽통과 머그컵 사이에 놓입니다. 넓은 입구와 밀폐가 되는 뚜껑은 죽통에 가까운 기능성을 제공하지만, 손잡이가 달린 형태는 머그컵이니까요. 휴대성에 치중한 탓인지 보온력은 6시간 후 51도로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머그컵의 형태로 최대한의 편의성과 보온력을 추구했다고 보면 대략 이 제품이 놓이는 위치가 짐작이 갈 겁니다.




 커피를 담아 이동할 때는 보온병을 쓰기로 결정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보온병만큼 보온력이 뛰어난 텀블러, 죽통, 머그컵을 찾아 헤매는 건 힘들고 지루한 아이쇼핑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니 괜찮은 텀블러나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꾀가 났는데(이래서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는 건가 봅니다), 무엇을 살 지 고민중입니다. 조지루시 SW-ESE35를 텀블러로 전용할까 생각중이긴 합니다만, 스탠리 쪽도 만만찮게 매력적이어서요. 아웃도어 쪽 리뷰를 좀 더 탐독하…려다가 눈만 버리고, 대체 왜 산악회 연관검색어에 산악회 내연녀랑 묻지마 산악회가 뜨는 거죠? 그냥 SW-ESE35를 샀습니다.




 각주


  1. 진공단열처리가 된 몸통 쪽으로는 열기가 별로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전도를 통해 열기가 빠져나가는 주요 통로는 뚜껑 쪽이지요. 입구가 넓으면 뚜껑의 면적도 커질 수밖에 없고, 열을 많이 잃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입구가 좁은 보온병 형태에 비해 보온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으로]
  2. 불소수지 코팅, 테플론 코팅이라고도 불립니다. [본문으로]
  3. 전도를 통해 빠져나가는 열기를 막으려고, 텀블러와 죽통 뚜껑 쪽에 수건을 덮었는데도 버티지를 못했습니다. 텀블러나 죽통에 담은 커피는 가을 날씨에는 2시간 정도(밖을 걸어다니는 시간 30분 포함) 마실 만한 온도를 유지했지만, 영하의 겨울 날씨에 2시간 정도(밖을 걸어다니는 시간 30분 포함)에는 열기를 거의 보존하지 못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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