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 커피는 참으로 심오한 세계입니다. 포스팅 하나에 그 내용을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하고 복잡한 추출법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추출법에 대한 포스팅은 먼 훗날로 미루고, 드립 커피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인, 드립 커피 배우기입니다. 주제의 성격 상, 이 글은 커피 입문자 혹은 드립 커피 입문자를 위한 글이 될 것입니다. 드립 커피 배우기에 대한 내용을 적기 전에, 드립 커피라는 추출법은 대략 어떤 추출법이고 이 글에서 다룰 드립 커피의 범위는 어느 정도인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드립 커피를 내리는 방법은 크게 푸어오버 방식과 일본식 정드립의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저는 하리오 드리퍼를 사용하므로, 이 글에서 다루게 될 드립 커피는 하리오 드리퍼를 ..
파보일드 커피의 최종적인 목표는 적당한 수준의 TDS를 유지하면서 향미의 경향을 과소추출 쪽으로 끌어당기는 겁니다. TDS는 커피의 농도와 관련이 있고 과소추출/적정추출/과다추출은 추출된 향미의 구성(프로파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과다추출이 되면 영혼 없는 쓴맛과 잡맛까지 우러나오고, 과소추출이 되면 쓴맛과 잡맛과 바디감이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산미가 부각됩니다. 과소추출이 되면서 TDS까지 낮으면 맹탕이 되는데, 맹탕이 되는 상황을 면하면서(=적당한 수준의 TDS를 유지하면서) 쓴맛과 잡맛을 줄이고 산미를 살려내는(=향미의 경향을 과소추출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파보일드 커피의 묘미입니다. 향미의 경향을 과소추출 쪽으로 끌어당긴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밸런스를 파괴하는 추출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보..
다이소 키친타이머를 사용하면서 두 가지 불만 사항이 추가로 생겨났습니다. 1) 타이머 설정이 불편합니다 : 이만한 가격대의 키친타이머에게는 흔한 단점입니다. 분 버튼, 초 버튼만으로 타이머를 설정해야 합니다. 4분을 설정하고 싶다면 분 버튼을 4번 눌러야 하고, 15초를 설정하고 싶다면 초 버튼을 15번 눌러야 하죠(버튼을 누르고 있어도 숫자가 올라가긴 합니다). 분 단위의 시간만 사용한다면 큰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파보일드 커피를 추출할 때 타이머를 45초로 설정해야 하고, 다른 추출법을 쓸 때 4분 15초라는 시간도 씁니다. 타이머 설정을 바꿀 때마다 '아, 귀찮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액정이 작고 시인성이 낮습니다 : 역시 이만한 가격대의 키친타이머에게는 흔한 단점입니다. 다이..
집에 있던 플라스틱 전기주전자의 내부에 자꾸 까만 것이 더덕더덕 달라붙어서 새 전기주전자를 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별 방법을 다 써도 떼어낼 수 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만 것이 거슬려서요. 처음에는 모험심이 발동하여 국내 중소기업 회사의 전기주전자를 구입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기분이 틀어지는 일이 발생하고—배송 문제였습니다—오프라인 매장에 찾아가서 필립스나 테팔 같은 무난한 회사의 무난한 물건을 사서 들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매장에서 저의 눈을 끈 것은 테팔 수비토였습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전기주전자였고, 붉은 색이 상당히 예뻤거든요. 그리고 세일중이었습니다(ㅋㅋㅋㅋㅋㅋ). 소비전력을 보니 2000W 이상… 왠만큼 신경써서 만들었다면 물은 빨리 끓겠네 싶어 곧장 사 왔습니다..
올해 봄에 하리오 드립서버를 구입한 이후 정말 오랜만에 지른 커피 도구입니다. 유리 약탕기로 추출한 커피를 빨리 식힐 때 예전에는 드립서버와 눈이 가는 체로 추출하는 프렌치프레스의 변법으로 650mL, 티포트 브루 커피로 350mL를 추출해서 1L를 만들어 썼습니다. 집에 있는 하리오 드립서버와 티포트의 용량이 그 정도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프렌치프레스의 변법은 파보일드 커피보다 산미의 표현이 좋지 않았고 터키시 커피와 비교하면 바디의 표현이 좋지 않다는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당시의 도구로 1L를 생산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을 뿐, 마음에 드는 방법은 아니었죠. (파보일드로 400mL, 티포트 브루 커피로 350mL를 추출해 섞는 방법도 있었지만, 글라스락 직사각 4호에 들어가는 원두 50g을 한 번에..
이 제품의 명칭은 '그랏토'입니다. 나름대로의 뜻이 담긴 우리말 이름이죠. Grotto는 또 그 나름대로의 뜻이 있는 영어 이름입니다. 둘은 임의로 짝지어졌을 뿐이죠. 따라서 Grotto를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쓰면 '그로토'가 되므로 한글 표기가 올바르지 않다거나, '그랏토'를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맞게 쓰면 'Gratto'가 되므로 로마자 표기가 올바르지 않다는 식의 논의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카누 70봉지 패키지에 딸려온 텀블러를 2년 넘게 잘 쓰면서도 텀블러 욕심이 자꾸 났습니다. 보온병 수집가의 기질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사용중인 조지루시 ESE-35의 보온 능력과 밀폐 성능에는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텀블러는 그저 예쁘고 쓰기에 편하면 좋겠다 싶었지요. 스타벅스의 리저브 블랙 루시 텀..
보온병과 텀블러에 대해 예전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보온병 수집가의 보온병 이야기"죠. 그리고 아홉 달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보온병과 텀블러에 넣은 커피를 넣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수많은 아이쇼핑을 했고, 후속편을 써도 될 만큼 글감이 쌓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포스팅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사용중인 조지루시 ESE-35 죽통은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커피를 담아 다니는 용도로 쓸 때, ESE-35의 장점과 단점을 나열해 보면… 장점 - 입구가 넓어 설거지하기 편합니다. -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키가 큰 보온병이나 텀블러에 비해 안정적입니다. - 전용 가방이 기본으로 제공됩니다. (가방에 넣으면 보온이 좀 더 잘 됩니다) - 원터치 보온병보다 입구가 넓어 커피 체인점에서 음료를 받을..
'한 방에 가기'라는 주제로 글을 준비하면서 쓰고 싶었던 굵직한 이야기들은, 앞의 글들을 통해 대부분 풀어낸 것 같습니다. 이번 글은 제품의 '숨은 가격'—가격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사용하다 보면 어떻게든 우리에게서 돈과 시간과 수고를 빼가는 것들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익숙한 내용이나 상식적인 내용도 많겠지만,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간다는 생각으로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상당히 조야한 분류법이지만, '발생주의적 사고'와 '복식부기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이재(理財)에 밝고 '현금주의적 사고'와 '단식부기적 사고'에만 익숙한 사람은 이재에 어둡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시를 좀 들어볼 생각이었지만, 단순한 예시는 디테일을 껴안지 못하고 디테일을 충분히 살린 예시는 명쾌하지 않아..
예전 글 에서, 저는 '한 방에 가기'를 조건부 지지하면서 다음 조건을 제시한 적이 있습니다. - 오래 쓸 게 확실하다면. - 내가 원하는 성능을 갖춘 제품 중 가장 저렴한 축에 든다면.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틀린 데가 없는 조건들이지만 아주 추상적이지요. 오래 쓸 게 확실한지, 내가 원하는 성능을 갖춘 제품 중 가장 저렴한 축에 드는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당시에는 판단이 서지 않아 그쯤에서 글을 마무리지었습니다만, 영기준예산(ZBB, Zero-Base Budgeting)의 의사결정패키지라는 것을 얼마 전 알게 되었고 이거다 싶어 후속편을 쓰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덕질하는 데 쓸모가 있나 봅니다. 편의상 다음 상황을 가정하겠습니다. 당신은 에스프레소 머신을 한 대 사고 싶고, 그..
가격대 성능비는 상당히 간단하고 직관적인 기준입니다. 제품의 가격과 성능을 알면 가성비를 산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용편익분석이라도 하려면 기회비용과 소비자잉여를 알아내야 하는데, 이게 보통 수고로운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큰 돈을 움직이는 사업에서는 보통 수고로운 게 아닌 비용편익분석이 자주 쓰입니다. 가격대 성능비에는 없고 비용편익분석에는 있는 '그 무엇'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가격대 성능비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요? 가격대 성능비(이하 가성비)는 제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쓰일 수는 있어도 제품 구입의 타당성이나 구입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쓰기에는 좋지 않습니다. 가성비라는 기준이 무엇을 놓친다기보다는, 가성비라는 기준을 잘못 적용함으로써 무언가를 놓치게 된다고 말하는 편이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