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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브루 커피(cold brew coffee)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점적식과 침출식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더치 커피' 하면 흔히 떠올리는, 크고 아름다운 머신에서 한 방울씩 똑 똑 떨어지는 추출법이 점적식이고, 그런 복잡한 도구를 쓰지 않고 찬 물에 차 우리듯 우려내는 추출법이 침출식입니다. 침출식을 쓰면, 다음과 같이 집안에 굴러다니는(?) 주방용품으로도 커피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참 쉽죠?
1. 페퍼밀(후추갈이)은 핸드밀이나 커피 그라인더의 대용품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진에 나온 페퍼밀로 원두를 갈고 있습니다(로고는 가렸지만 알아보실 분은 알아보실 겁니다). 6천원이면 세라믹 날 페퍼밀을 살 수 있고 통후추 35g을 덤으로 끼워주는 좋은 물건입니다(...?). 뚜껑 열면 나오는 나사를 돌리면 굵기를 조정할 수 있습니다. 저는 끝까지 다 잠그고 나서 반바퀴만 풀어서 사용합니다. 될 지 안 될 지도 모르는 상태로 일단 원두부터 사서 갈아봤는데 의외로 잘 갈렸습니다.
5월 20일 추가 : 원두를 조금 쪼갠 다음 페퍼밀에 넣으면 더욱 잘 갈립니다. "예비 분쇄 + 페퍼밀 ≅ 커피 핸드밀?"을 참조하세요.
후추를 갈던 페퍼밀을 원두 가는 데 쓰려면, 날을 한 번 씻어서 말려주고(세라믹 날이면 씻을 수 있습니다. 금속제 날은 물로 씻는 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쌀알을 조금 갈아주고 나서 쓰면 됩니다. 한동안 페퍼밀에서 후추 냄새가 좀 나지만 커피의 맛과 향에는 영향이 없었습니다.
2. 계량컵을 쓴 이유는─① 밑면이 넓어 원두 가루가 밑바닥에 얇게 깔리고, ② 주둥이가 있어 커피를 흘리지 않고 따르기 좋고, ③ 유리병이나 주전자에 비해 청소하기가 편하고, ④ 비교적 싸고 쉽게 구할 수 있어서입니다. 주방용품 코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플라스틱제 500mL 계량컵은 대체로 위의 조건을 충족합니다.
침출식 추출법에서는 밑면이 넓어 원두 가루가 밑바닥에 얇게 깔릴수록 좋습니다. 바닥에 두툼하게 원두 가루가 깔려버리면 밑쪽에 깔린 원두 가루에서는 추출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밑쪽에 깔린 원두 가루 근처의 물은 금방 포화 상태가 되어 더 이상의 성분이 녹아나올 여지가 없거든요. 휘저어서 섞어볼 생각도 했지만 원두 가루가 금방 가라앉아서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밑면이 넓은 그릇을 써서, 원두 가루를 밑바닥에 얇게 깔리게 만드는 편이 좋습니다.
컵을 써서 추출한 커피가 생각보다 너무 묽어서 중간에 몇 번 휘저어도 보고 추출 시간을 24시간까지 연장해보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는데… '약탕기 유리포트'라는 별명으로 팔리는 2500mL 유리포트로 14시간 추출을 해 보니 차원이 다르게 진하고 향긋한 커피가 나왔습니다. 2500mL 유리포트로 한 잔 분량을 추출할 때 원두 가루가 바닥에 얼마나 넓고 얇게 깔릴 지를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대신 이렇게 극단적인 세팅을 하면, 포트를 옮길 때 물이 조금만 찰랑찰랑해도 벽에 달라붙어서 잉여잉여해지는 원두 가루가 너무 많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200mL 추출을 할 때 500mL 계량컵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플라스틱제 500mL 계량컵은 오픈마켓에서 2500원 정도에 팔리고 있습니다. 집 근처 주방용품 코너에서 4500원에 국산품이 팔리고 있었는데, 오픈마켓에서 배송비 물어가며 사는 것보다는 싸서 그냥 4500원 주고 샀습니다. 찬장에서 발굴한 아이스크림 통 뚜껑이 잘 들어맞아서 이걸 추출통 뚜껑으로 삼았습니다. (스티커를 떼어 버려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뚜루 파티타임 사이즈의 뚜껑이었던 것 같습니다. 파인트 사이즈 뚜껑보다는 훨씬 큽니다) 사진 상태가 별로 좋지 않지만 참고용으로 올려봅니다.
저렇게 세팅한 다음 냉장고에서 18시간 정도 추출하면 됩니다.
계량컵이 너무 멋없어 보인다면, 위에서 말한 ①, ②, ③ 조건을 충족하는 다른 용기를 찾아보셔도 됩니다. 유리 숙우, 드립 서버, 커피메이커 전용 유리포트(깨먹는 일이 생겨서인지 이것만 따로 팔기도 합니다), 유리포트, 크리머, 소스보트 같은 물건들 중에서 저 조건에 맞는 물건이 있을 겁니다.
3. 눈이 가는 체는 적당한 것을 쓰시면 됩니다. 종이 필터나 융 필터를 써도 됩니다만, 체는 종이 필터와 달리 커피의 유분을 걸러내지 않고 융 필터와 달리 씻기 편해서 필터 대신 체를 씁니다. 너무 가늘면 거르다가 막히기 일쑤니(이러면 체 위에서 내려가지 않는 커피는 다시 추출기에 따라놓고, 체를 씻은 다음 걸러야 합니다) 주방용품 코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 중 가장 가늘다 싶은 체 정도를 고르면 됩니다. 저는 처음에는 주방에 있던 체를 쓰다가, 균일가 코너에서 3000원에 팔리고 있던 좀 더 작은 크기의 일제 체를 사서 쓰고 있습니다.
눈이 가는 체 정도로는 커피 가루가 완전히 걸러지지 않기 때문에 바로 마시면 텁텁합니다. 지름이 작고 깊이가 깊은 컵에 걸러놓은 커피를 담아놓고, 숙성시킬 겸 냉장고에 넣어두면 바닥에 고운 커피 가루가 가라앉습니다. (콜드 브루 커피는 며칠 정도 숙성시켜서 맛을 깊게 할 수 있다는군요) 이렇게 가루가 가라앉으면, 흔들기 전에는 위로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조금 신경써서 마시면 커피 가루를 먹지 않고 커피만 마실 수 있습니다.
주방용품으로 콜드 브루 커피를 추출하다 보면, 이러라고 만들어 준 게 아닌 물건을 엉뚱하게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싸게 먹히는 건 그 다음 이야기지요. 한동안 이 구성으로 커피를 추출하다가 나중에 페퍼밀 정도나 한 번 업그레이드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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