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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의 내용은 2015년 12월 3일에 전면 개정되었습니다. <커피 추출법 개정 프로젝트> 문서를 참고해 주세요.
몇천 원짜리 시에라 컵으로도 끓일 수 있는 것이 터키시 커피입니다. 하지만 추출 시간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1 중화요리 주방장처럼 화력과의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손에 맞는 냄비를 찾아 끝없는 쇼핑을 시작하게 되고요. 외로운 구도자처럼, 열전도율이 좋고 형태가 적당하며 크기도 딱 좋은 편수냄비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닌 지 이제 3년이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제 마음에 쏙 드는 냄비는 없었습니다. 이러다가는 방짜유기 명장님의 공방에 선금과 예물을 들고 찾아가서 제발 이 모양으로 냄비 좀 만들어 주십사 설계도를 올리며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 같기도 한데… 농담이라고 썼지만 몇 년 뒤에 실제로 그렇게 될 것 같아서 좀 무섭습니다. 2
이 글에서는 터키시 커피를 끓이기에 좋은 냄비를 다룰 생각입니다. 터키시 커피를 끓일 때 가장 중요한 도구이기도 하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도구이기도 하니까요.
1. 냄비의 크기
밑면 지름은 불꽃을 받아내기에 충분할 만큼 넓어야 하지만, 커피가 밑바닥에만 깔릴 만큼 지나치게 넓어서는 안 됩니다. 터키시 커피 100mL를 끓일 냄비의 지름은 9cm, 200mL는 12cm, 300mL는 15cm 정도가 적당합니다. 냄비의 용량은 끓여낼 커피의 3~5배 정도가 적당한데, 끓여낼 커피의 용량에 맞추어 냄비의 지름을 정하면 냄비의 용량 조건은 보통 충족됩니다. (특별히 얕거나 깊은 냄비가 아니라면요)
보통 가정용 3구 가스 레인지의 약불(작은 화구의 불꽃)을 받아내려면 냄비 밑면 지름이 9~10cm, 중불(중간 화구의 불꽃)을 받아내려면 12~13cm, 강불(큰 화구의 불꽃)을 받아내려면 14~16cm는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9cm, 12cm, 15cm짜리 냄비는 각각 약불, 중불, 강불에 대응합니다.
2. 냄비의 소재
구리, 알루미늄, 티타늄 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구리 냄비의 경우 내부 공간(음식이 닿는 곳)에 주석이나 스테인리스를 입히게 됩니다. 구리&스테인리스 쪽이 좀 더 현대적이고 마감이 깔끔하지만, 저는 구리&주석의 고전적인 조합이 더 마음에 듭니다.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는 소재입니다.
알루미늄은 구리보다 싸고 티타늄보다 열전도율이 좋습니다. 적당한 코팅이 된 알루미늄 냄비는 터키시 커피를 끓이기에 좋은, 대단히 실용적인 도구입니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캠핑용 주방용품을 둘러보면 쓸만한 물건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티타늄은 반응성이 낮아 커피의 산과 반응할 일이 없고 관리하기 편하며 튼튼합니다. 가격대가 비교적 높고, 터키시 커피를 끓일 만한 크기의 티타늄 냄비나 티포트가 몇 종류 되지 않아 선택의 폭이 좁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알루미늄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캠핑용품입니다.
3. 냄비의 형태
12cm나 14cm 정도 되는 크기라면 주둥이가 있는 편이 좋습니다. 잘못하면 커피를 흘릴 수도 있거든요. 많은 냄비가 이 단계에서 탈락합니다. (9cm 정도라면 주둥이 없이도 커피를 붓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커피를 끓이려면 냄비가 얇아야 합니다. 거의 모든 스테인리스 스틸 냄비와, 본격적인 요리용 냄비가 이 단계에서 탈락합니다.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손잡이가 ㄱ자 형태로 꺾여 있는 형태를 하고 있거나 손잡이를 접을 수 있어 보관할 때 적은 공간을 차지하는 물건이 좀 더 좋습니다. 캠핑용품 중에 이런 물건이 몇 있습니다. 고전적인 주방용품 중 저그(jug)나 피처(pitcher)는 터키시 커피를 끓이기에는 너무 깊어서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4. 어느 크기의 냄비를 살 것인가
1인분(원두 8g)의 터키시 커피를 끓인다면 9cm나 12cm중에서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9cm짜리 냄비의 특징과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터키시 커피 100mL를 끓이기에 적당합니다.
- 바라짜 엔코의 원두 배출구에 냄비를 들이밀어 원두 가루를 받을 수 있습니다.
12cm짜리 냄비의 특징과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터키시 커피 200mL를 끓이기에 적당합니다.
- 1인분의 파보일드 커피를 끓이는 데에도 쓸 수 있습니다.
진한 커피를 좋아한다면 9cm를 선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더블샷 원액'을 자주 만든다면 9cm가 편하고요(12cm는 쿼드샷 원액을 뽑아서 절반만 덜어 써야 합니다). 연한 커피를 주로 마신다면 희석하는 과정 없이 곧바로 커피 200mL를 생산할 수 있는 12cm쪽이 더 편하고, 한 번에 좀 더 많은 원액을 만들어 냉장 보관하고 싶을 때에도 12cm쪽이 편합니다.
9cm와 12cm중에 어느 한 쪽을 선뜻 고르기 어렵다면 가스 레인지의 화력을 보고 결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가스 레인지는 약불 화력이 1kW, 중불 화력이 1.75kW이기 때문에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약불에 올려놓은 100mL가 중불에 올려놓은 200mL보다 좀 더 빨리 끓겠지요. 이런 경우라면 화력을 중시해 9cm를 선택하는 식입니다.
예상보다 추출이 늦게 이루어진다면 원두를 좀 더 굵게 분쇄하여 쓴맛을 줄이고, 추출이 너무 빠르게 일어난다면 원두를 좀 더 가늘게 분쇄하여 커피의 농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투입한 원두의 양과 물의 양이 같다면, 대략 다음과 같은 조합은 비슷한 맛을 내게 됩니다.
추출 시간 1분 30초 : 에스프레소 굵기 (≓꽃소금)
추출 시간 2분 30초 : 모카포트 굵기 (≓파르메산 치즈 가루, 산초 가루, 테이블 솔트)
추출 시간 3분 15초 : 드립 굵기 (≓좁쌀, 반토막 낸 참깨 … 푸어오버용)
이러한 '시스터 레시피'가 정확히 같은 맛을 내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시험삼아 커피를 한 번 끓여 보고 냄비를 구입할 수 없고 이미 구입할 냄비를 '커피가 빨리 끓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품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 구입한 냄비를 활용하는 데에는 이러한 시스터 레시피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각주
- 물론 가스 레인지, 커피잔, 원두를 분쇄할 그라인더나 핸드밀도 필요합니다. 커피 가루를 거를 체도 있는 편이 좋고요(오리지널 터키시 커피는 가루를 거르지 않습니다만, 커피 가루를 전혀 거르지 않으면 섭취하는 미분의 양이 늘어나고 그만큼 카페인 섭취량도 늘어납니다). [본문으로]
- 시에라 컵으로 3분간 끓인 터키시 커피보다, 구리 냄비로 2분 30초 동안 끓인 터키시 커피가 쓴맛이 적고 부드러워서 좋았습니다. [본문으로]
- 100mL의 커피를 끓여 그대로 마시면 진한 커피, 뜨거운 물로 부어 200mL로 희석하면 상대적으로 연한 커피가 됩니다. [본문으로]
- 2인분의 원두를 넣어 끓인 100mL의 터키시 커피를 작은 유리병에 담아 뚜껑을 닫은 채로 식힌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원액을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350mL급 텀블러를 예열한 다음 더블샷 원액을 붓고 펄펄 끓는 물 200mL 정도를 부으면 아메리카노 농도의 커피가 됩니다. [본문으로]
- 4인분의 원두를 넣어 끓인 200mL의 터키시 커피를 작은 유리병에 담아 뚜껑을 닫은 채로 식힌 것입니다. 싱글샷 원액 4회분이나 더블샷 원액 2회분처럼 나누어 쓸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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