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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 :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Ethiopia Yirgachefe) 150g - 추정치
입수일 : 2013. 12. 11.
출처 : 클럽 에스프레소
저의 열일곱 번째 커피는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였습니다.
선물받은 커피입니다. 친구가 클럽 에스프레소에서 43번째 커피중독자 시리즈 500g을 사서 얼마간을 나누어준 것입니다. 보르미올리 피도 병에 담아서요(그렇습니다. 병도 선물받았습니다). 카페뮤제오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이르가체페를 다 마시지도 않았는데 또 이르가체페가 생겼지만 마냥 좋았습니다. 무난하고 훌륭하고 믿을 수 있는 커피는 아무리 쌓여도 좋거든요.
산미와 고소함의 양상이 무척 독특한 커피입니다. 생두의 특성과 로스터리의 스타일이 이렇게 드러나는가봐요. 한 모금 마시고 나면 혀의 양 옆에 찌르르한 느낌이 오는데, 뒷맛의 인상이 감귤의 신맛을 닮았습니다. (지금까지 마셔본 커피 중 산미가 강하다는 커피들도 이렇게 혀가 찌르르한 느낌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고소한 냄새는 볶은 곡물의 그것보다는 찐 고구마의 그것을 닮았습니다. 고소한 맛은 카페뮤제오의 이르가체페보다는 조금 더 강하고 확실하게 다가왔습니다.
클럽 에스프레소는 저에게 가격대가 높아서 선뜻 주문하기 어려운 로스터리였습니다. 하지만 맛이 이렇게 좋으니 가격 조건이 좋은 중독자 시리즈를 가끔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멘 모카 마타리가 거의 다 되어갈 때, 이르가체페와 반씩 섞어 마셔보았습니다. 사실 이 블렌딩은 <인디커피교과서>에서 '반드시 피하라'고 한 제로 블렌딩인 동시에, 마이너스 블렌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당 책에서는 예멘과 에티오피아 커피를 같은 그룹으로 묶어놓았기에 모카와 이르가체페는—블렌딩의 관점에서 볼 때—사실상 같은 종류이므로, 같은 종류의 커피를 섞은 제로 블렌딩에 해당합니다. 따로따로 마실 때는 와인 같은 느낌과 감귤 같은 느낌을 각각 느낄 수 있는 특색 있는 커피지만 섞으면 각자의 특성이 많이 죽어버리므로 1 둘을 블렌딩하여 마시는 것보다 따로따로 마시는 게 낫다는 점에서 마이너스 블렌딩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카와 이르가체페를 반씩 섞은 커피는 독특한 매력을 지닙니다. 콜롬비아를 베이스로 한 마일드 커피와는 다른, 아주 독특한 느낌의 마일드 커피거든요. 아주 조금 와인의 느낌이 나고, 아주 조금 감귤의 느낌이 나고, 아주 조금 고소하면서, 그다지 쓰지도 않고, 그렇다고 맹탕 같지도 않은 적절한 입 안의 감촉 2이 느껴지는 게… 묘하게 중독성이 있습니다. 결국 저는 남은 모카를 이 블렌딩으로 마셔버리고, 모카와 비슷하다는 에티오피아 하라를 주문해버렸습니다. 3
각주
- 장수한 (2012) <인디커피교과서> 백년후. pp.259-261 [본문으로]
- 모카와 자바를 섞었을 때 와인 같은 느낌은 많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클럽 에스프레소의 이르가체페와 자바를 섞었을 때도 감귤 같은 느낌은 많이 줄어들지 않았지요. 하지만 모카와 이르가체페를 섞으면 와인 같은 느낌과 감귤 같은 느낌은 확 줄어들어 버립니다. 마치 둘이 상충하여 서로의 맛을 중화한 느낌입니다. [본문으로]
- 모카는 제법 진하고 끈끈한 바디감을 갖고 있는 커피입니다. 맛과 향은 블렌딩 과정에서 줄어들었지만, 모카의 바디감은 여전히 남아서 이런 감촉을 주는 것 같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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