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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 : 브라질 산토스 블루 다이아몬드 (Brazil Santos Blue Diamond) 235g
구입일 : 2015. 1. 27.
구입처 : 그린어쓰 커피
저의 쉰한 번째 커피는 브라질 산토스 블루 다이아몬드였습니다.
브라질 산토스 스페셜티 다이아몬드 시리즈는 "SCAA 85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스페셜티급 브라질 산토스만을 엄선하여 그 향미 특징에 따라 Rose, Yellow, Blue, Green으로 분류한 새로운 개념의 브라질 산토스 스페셜티 커피입니다." 설명이 좀… 오묘합니다. 제가 썩 좋아하지 않는 '스페셜티급'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고, SCAA 85점을 넘겼으면 스페셜티지 스페셜티급은 또 뭐야, 하는 의문도 생기네요.
일단 SCAA 커핑으로 80점을 넘기면 스페셜티 커피입니다. 이 문장에는 커핑이 SCAA 프로토콜에 맞추어 진행되어야 한다는 요건이 당연히 포함되고, (별것 아닌 커피를) 스페셜티 커피로 팔아먹기 위해 일부러 점수를 후하게 매겨서는 안 된다는 도의적인 요건도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SCAA 커핑으로 80점이라는 커핑 점수와 별개로, 이력 추적가능성(traceability) 또한 스페셜티 커피의 요건으로 논의할 만합니다. 산지, 농장명, 품종, 정제법과 같은 생산 이력을 명확히 알 수 있다면 이력 추적이 가능하다(traceable)고 볼 수 있죠. 이력 추적가능성이 중요한 이유는 ①이력 추적이 가능하지 않다면, 값싼 원두를 섞어 가짜 커피를 만들 수 있다 1, ②생산 이력은 커피의 품질과 특성에 영향을 준다 2는 점에서 소비자(커피 애호가)가 알 필요가 있는—생산 이력을 밝힐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볼 수도 있는 정보이다, 정도로 요약이 됩니다. 3
따라서 생산지·농장명·품종이 불명확한, 한마디로 '출처 불명의' 브라질 산토스 스페셜티 다이아몬드 시리즈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스페셜티 커피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건 맛없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력 추적이 가능하지 않아도 '하이 커머셜'의 구실은 충분히 할 수 있으며, 하이 커머셜이 스페셜티 커피보다 맛있을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생산지·농장명·품종 좀 명확히 밝혀 주세요 스페셜티 커피라면서요 그린어쓰 사장님 엉엉ㅠㅠ
그린어쓰 커피는 4만 원 이상 구매하면 무료배송을 해 줍니다. 엘 인헤르토는 3만 9천 원에 올라와 있었고, 무료배송을 받고 싶었던 저는 장바구니에 블루 다이아몬드를 던져넣었습니다. 적당한 산미와 적당한 품질을 기대할 수 있는 적당히 값싼 커피가 필요했거든요. 이력 추적 가능성 어쩌고 하면서 투덜투덜댔지만, 9천 원이라는 가격에 '스페셜티급'을 자처하는 좋은 원두 235g을 구입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좋은 거래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송받자마자 핸드 소트를 실시했습니다. 조가비 모양의 콩(shell)과 기형/미성숙 콩과 부서진 콩이 좀 있었고, 퀘이커로 의심되는 콩이 몇 개 있었지만 전반적으로는 결점두로 분류할 만한 콩이 별로 없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브라질 원두가 다 그렇듯이(…) 채프 부분이 까맣게 탄 원두가 제법 있었는데, 검은 얼룩이 센터컷 주변을 더럽힐 정도로 심하게 탄 원두는 골라냈지만, 채프가 좀 탄 콩은 그냥 통과시켰습니다. 모레니냐 포르모자를 처음 구입했을 때는 채프가 탄 걸 보고 기겁을 했었는데, 몇 번 겪고 나니 무덤덤해지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산토스 블루 다이아몬드는 카쇼에이라 다 그라마 같은 스페셜티 커피나 시치우 크루제이루 같은 COE 커피보다는, 세하도 파인컵 같은 일반 등급의 원두에 가까운 특성을 보입니다. 고소하고, 산미는 약하지만 분명히 감지되며, 부드럽거든요. 그래도 블루 다이아몬드 쪽이 결점두가 훨씬 적고, 뒷맛에 깔끔한 산미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예전에 마셨던 세하도 파인컵보다는 품질이 한 단계 높다고 할 만합니다. 개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스페셜티 커피로서는 부족하지만, 기본기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돈값은 하는 원두라고 생각합니다.
산토스 블루 다이아몬드는 고소한 편입니다. 볶은 곡물이나 견과류가 떠오를 만큼 고소하지는 않지만, 브라질 커피에 기대할 만한 고소함은 지니고 있습니다. 생담배의 flavor와, 조금은 에티오피아 건식 같기도 한 콤콤함이 감지되는데, 브라질 원두로서는 특이한 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입니다. (생담배의 aroma는 코스타리카 원두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특성이고 조금은 건식 같기도 한 특성은 실제로 건식으로 가공한 생두를 블렌딩했다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것을 블루 다이아몬드만의 '독보적 개성'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터키시 커피로 추출하였을 때 가장 만족스러웠습니다. 강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일찍부터 감지되는 산미, 중간 정도의 바디, 분명히 감지되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은 생담배의 flavor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잘 만든 아메리카노의 느낌이었습니다.
파보일드 커피로 추출하면 생담배의 flavor가 옅어지고 바디가 가벼워지면서 깔끔한 마일드 커피에 가까워집니다. 산미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조금은 에티오피아 건식 같기도 한 콤콤함과 조금은 파나마 습식 같기도 한 상큼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복합성 내지 복잡성(complexity)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콤콤함과 상큼함이라는 특성이 명확하다기보다는 어렴풋하게 감지되고 산미 역시 강하지 않아, 개성적인 커피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무난한' 커피라고는 할 수 있겠네요.
티포트 브루 커피로 추출하면 생담배의 flavor가 확연해지고, 약간의 떫음이 섞인 복합적인 맛 역시 확연해집니다. 흔하지 않은 특성의 조합임에는 분명하지만, 에티오피아 짐마와 같은 에스닉함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고, 커피로서는 이질적이고 낯선 프로파일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삶이 바빠지고, 황사와 미세먼지가 자주 찾아와 환기하기 어려운 날이 많아지면 갓 끓인 커피를 마실 기회도 그만큼 줄어듭니다. 어쩌다 보니 리뷰가 많이 늦어졌네요. 리뷰를 하면서 이런저런 지적을 많이 하게 된 건 부에나비스타와 엘 인헤르토를 마시고 입맛이 잔뜩 까다로워진 탓일 겁니다. 그래도 산토스 블루 다이아몬드는 마일드 커피로서는 충실한 기본기를 갖춘 원두고, 돈값을 하는 원두라고 생각합니다.
각주
- 다구치 마모루 지음, 박이추·유필문·이정기 공역 (2013) <스페셜티 커피대전> 광문각. pp.25-26 (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 앞서 인용한 <스페셜티 커피대전>에서는, 스페셜티 커피의 세계에서 트레이서빌리티(traceability, 이력 추적)를 거론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로 '하와이언 코나 스캔들'을 들고 있습니다. 1996년 하와이의 저명한 생산자들이 중미의 저렴한 커피를 하와이언 코나로 속여 팔았고, 조사 결과 가짜 코나가 10배 가까이 시장에 나와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런 스캔들이 터진 것이죠. [본문으로]
- 산지와 농장이 바뀌면 커피 생산지 특유의 기후(microclimate, 미기후微氣候)가 바뀌고, 이는 커피의 맛에 영향을 줍니다. 품종 또한 맛에 영향을 줄 수 있고요. 제가 예전에 쓴 "싱글 오리진, 알다가도 모를 분류"의 다음 문장도 참고할 만합니다 : "커피 생산지 특유의 기후(microclimate)가 만들어낸, 독특한 풍미의 커피"라는 스페셜티 커피의 컨셉은 기본적으로 뭉툭하지 않은 의미로서의 싱글 오리진을 지향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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