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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브루 커피를 만들어 마시게 된 지도 그럭저럭 한 달 보름이 지났습니다. 14시간을 우려내는 레시피를 꾸준히 유지하다 보니 이런저런 감상과 노하우(?)가 쌓이더군요. 공유하는 겸하여 글을 올립니다.
#0.
원두 1회 분량을 증량하고부터는 18시간을 우려냈을 때 14시간 우려내는 것보다 맛과 향이 좀 더 진해져서 좋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
같은 원두, 같은 레시피1를 사용해도 맛의 차이가 조금씩 있습니다. 손으로 분쇄를 하기 때문에 그날그날의 분쇄 상태가 다를 수 있고, 분쇄 상태의 차이가 맛의 차이를 불러올 수 있지요. 또 저의 콜드 브루 커피 레시피는 원두의 사용량이 적은 편이라, 원두의 양이나 상태에 편차에 비교적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콜드 브루 커피의 레시피나, 콜드 브루 커피로 만들어 마시는 원두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적어도 일곱 잔이나 일 주일 정도는 같은 레시피를 유지해서 꾸준히 마셔본 다음 머릿속으로 '평균적인 가상의 맛'을 그려내어 판단하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2.
콜드 브루 커피는…
① 더치 커피보다 간단하고 값싼 기구를 사용합니다. 냉장고 속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공기 중에서 추출하는 더치 커피보다는 추출 조건(기온와 습도 등)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편합니다.
② 핸드 드립 커피와 비교하면 원두를 비교적 적게 사용하고 종이 필터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서 좋습니다. 비교적 낮은 추출 실력으로도 최소한의 맛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장점 또한 가지고 있지요.
③ 종이 필터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원두의 유분을 거의 보존할 수 있습니다.
④ 뜨거운 물로 추출하는 모든 종류의 커피와 비교하면, 추출한 커피를 차게 보존할 수 있고 차게 보존하는 과정에서 숙성시킬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이는 더치 커피와 공유하는 장점이기도 하죠.
이렇게만 쓰면 콜드 브루 커피가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추출법 같겠지만, 사실은…
① 커피가 진하지 않습니다. (원두를 적게 사용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② 추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더치 커피보다 더 오래 걸리기도 합니다. 적어도 12시간 이상.
③ 종이 필터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적어도 한 번은 추출한 커피를 다른 통에 따라내어서 미분을 가라앉힌 다음 윗물만 따라 쓰는 식으로 걸러내야 합니다. 이렇게 미분을 가라앉히는 데 대략 4~6시간이 걸립니다. 미분이 잔 밑바닥에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게 하려면2 대략 8~12시간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이래서는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은 상황에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지요.
④ '손맛'이 없습니다. 커피 한 잔을 추출하는 즐거움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이지 않고, 탁월한 바리스타에게는 자신의 실력으로 커피 맛을 향상시키는 데 금방 한계가 찾아옵니다.
⑤ 설거지감이 많이 생깁니다. 추출 용기, 미분을 가라앉힐 때 쓰는 용기나 컵, 최종적으로 다른 컵이나 텀블러에 따라 마시는 컵 등 이런저런 이유로 용기와 컵을 많이 쓰게 되거든요. 이것 때문에 손이 많이 갑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마실 커피를 별 고민 없이 슥슥 제조하는 데에는 쓸 만해서, 계속 이 방법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3.
콜드 브루 커피를 냉장고 온도보다는 다소 높은, '서늘한' 온도에 맞추었을 때 맛과 향이 좀 더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4.
냉장고에서 추출할 때 위칸보다는 아래칸(야채칸 등)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정밀한 비교시음을 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확인이 필요합니다.
#5.
커피 가루를 걸러낼 때, 체를 통과해 바닥에 가라앉은 미분은 커피의 향을 진하게 만들어주고 맛을 쌉쌀하게 만듭니다. 대신 그 양이 조금만 많아져도 혀 끝에 텁텁한 느낌을 남기지요. 한번은 급한 나머지 미분 가라앉히기를 하지 않은 커피를 바로 텀블러에 담아 나간 적이 있었는데… 정말 쓰고 텁텁했습니다. (설마 이런 걸 풀바디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요? ㅠㅠ) 미분 가라앉히기는 한 번은 꼭 해 주어야 합니다. 두 번쯤 해 주면 미분은 완벽에 가깝게 제거되지만 커피가 조금 밋밋해지더군요. 입맛에 맞는 방법을 찾아 봅시다.
미분 가라앉히기를 조금이라도 쉽게 하려면…
① 지름이 작고 깊이가 깊은 컵을 쓰면 좋습니다. 미분이 쌓이는 층이 조금이라도 두꺼워지면 자기들끼리 들러붙어서, 따라낼 때 덜 일어나거든요.
② 미분을 가라앉히는 용기가, 가라앉히기를 하는 동안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미분 층은 아주 연약해서 조금만 흔들려도 일어나버리기 쉽거든요. 가라앉힐 때는 냉장고 문쪽에 놓지 말고, 음식 그릇을 꺼낼 때 거치적거리지 않는 위치에 놓아야 합니다3. 윗물을 따라내는 그 순간까지 최대한 덜 흔들리게 해 주고요.
보너스로, 미분 가라앉히기를 완료한 두 잔의 커피 사진을 올립니다. 한 통에서 300mL를 추출한 다음 두 잔에 나누어 따르고 가라앉힌 것이죠.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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