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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 :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Jamaica Blue Mountain) 200g
구입일 : 2014. 8. 25.
구입처 : GBT커피
저의 서른일곱 번째 원두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었습니다.
커피라는 취미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블루마운틴이라는 이름과 마주하게 되어 있습니다. 커피 산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블루마운틴은 안다고(혹은 들어보았다고) 할 정도니까요. 마치 롤렉스 같은 존재죠. 하지만 그 브랜드 파워에 비해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받는 대접은 영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저 그런 하이 커머셜 주제에 비싸기만 하다며 까이고, 마셔 봤는데 별 것 없었다며 비추천이나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동안 구입하지 않았습니다만, 커피 생활을 일 년 넘게 이어가다 보니 그 맛과 향이 궁금해서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뒤돌아보지 말랬는데 뒤돌아봤다가 돌기둥이 된 사람 심정을 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주문을 했지요. GBT커피가 고품질의 원두를 여러 종류 취급하는 로스터리 중 가장 싼 값에 블루마운틴을 판매하고 있어서, 예전부터 점찍어둔 터였습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의 품종은 티피카입니다. 쿠바 크리스털마운틴, 하와이 코나, 파푸아뉴기니 마라와카 블루마운틴 티피카 또한 티피카입니다만, 맛과 향은 제각각이었습니다. 품종이 다가 아닌 셈이죠. 그중 쿠바 크리스털마운틴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에 가까운 맛을 내었고 쿠바는 자메이카와 마찬가지로 카리브 해의 섬나라니까, 커피의 맛에 환경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블루마운틴의 맛과 향은 훌륭합니다. 쿠바 크리스털마운틴의 고소함과 부드러움, 코나의 깔끔함, 전광수커피하우스 엘살바도르의 꿀과 같은 향, 온두라스 COE 2013 12위 Guacamaya의 히비스커스 같기도 하고 감귤 같기도 한 산미, 콜롬비아 나리뇨의 달콤함… 마일드 커피에 기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거기까지입니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마일드 커피로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지만, 비싼 값을 해명할 만큼 품질이 탁월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0g에 2만 원을 넘길 이유가 없는 원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두 값만 200g에 2만 원 정도니(…) 볶은 블루마운틴을 그 가격에 팔 로스터리는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겠지요. 이변이 없는 한, 블루마운틴은 앞으로도 호사스러운 커피로 남게 될 겁니다.
터키시 커피로 마셨을 때는 고소한 맛과 중간 정도의 바디감을 느낄 수 있었고, 파보일드 커피로 마셨을 때는 산미가 도드라지고 바디감이 약해져 맑고 가벼운 느낌이 났습니다. 티포트 브루 커피로 마셨을 때는 비교적 약한 바디감과, 잔 밑바닥에 가까운 1/3에서 상당히 강한 산미와 복합적인 맛을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콜드 브루 커피로 마셨을 때는 꽃과 같은 aroma와 와인의 느낌이 인상적이었지만, 블루마운틴 특유의 맛은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파보일드 커피로 추출해 식히면 전반적으로 산뜻한 느낌이 나서, 시원하게 해서 마시기에도 좋은 커피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파보일드 커피가 (뜨겁게 해서 마시든 시원하게 해서 마시든)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블루마운틴의 강점인 고소함과 부드러운 산미를 살리면서 약점인 바디감을 보완하기에는 터키시 커피 쪽이 좀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커피의 황제'라고도 불립니다. 그럭저럭 납득할 만한 별칭입니다. 입헌군주국의 황제라면 말이죠. 스페셜티 커피, COE 커피, 그리고 마이크로 로트가 고급 커피 시장을 주도하고 커핑이라는 객관적 평가 기준이 자리를 잡은 오늘날, 블루마운틴이 예전과 같은 힘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블루마운틴은 오랜 시간 고급 커피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었고, 비슷한 자리에 있었던 코나 리뷰에서도 언급하였듯—지금까지 오랫동안 생산되었듯 앞으로도 오랫동안 생산될 것이라는 데에서 오는 심리적인 안정감, 그리고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원두는 내가 기대하는 그 맛과 향을 내 줄 것이라는 확실성은 우리에게 맛과 향을 뛰어넘은 특별한 만족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값싸고 좋은 원두가 흔한 요즘 세상에 블루마운틴이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미덕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 번쯤은 마셔볼 가치가 있는 커피라고 생각합니다.
※ 태그 분류에 관하여 : 쿠바 크리스털마운틴 리뷰에서 언급하였듯이, 검색의 편의를 위해 '카리브 원두' 태그를 달고 있는 글에는 '중미 원두' 태그도 붙여놓았습니다. 카리브 해의 주요 커피 산지는 자메이카,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푸에르토리코 정도인데 이들의 위도는 북미/중미/남미 중 중미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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