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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 : 코스타리카 라 로살리아 워시드 (Costa Rica La Rosalia Washed) 200g

 구입일 : 2014. 7. 15.

 구입처 : 커피플랜트


 저의 서른여섯 번째 원두는 코스타리카 라 로살리아 워시드였습니다.


 (판매자는 '로사리아'로 표기했지만, 에스파냐어에서 모음 사이에 위치한 l은 탄설음 'ㄹ'이 아닌 설측음의 연쇄 'ㄹㄹ'로 표기함이 옳습니다. 이는 r과 l의 표기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에 가까워, '이 블로그의 용어와 표기법'에 따로 적지는 않았습니다)



 올해 초 커피 구입 내역을 되짚어보다가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탄자니아, 케냐를 딱 한 번 사 마시고 다시 안 샀다는 것을 알았고 이들을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알마로스터의 콜롬비아 나리뇨, 테라로사의 케냐 루타카, 짐마카페의 탄자니아를 거쳐 코스타리카까지 왔네요.


 전에 코스타리카 타라주를 마실 때는 뜨거운 물을 사용한 추출법에 익숙하지 않아 터키시 커피로 마셨을 때 어떤 맛이었는지를 제대로 적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리뷰가 쌓이고 원두의 맛을 비교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콜드 브루 커피 위주로 마셨던 원두들(콜롬비아 수프리모와 코스타리카 타라주)을 꼭 다시 맛봐야지 생각은 많이 했는데… 콜롬비아는 4월 서울커피엑스포에서 샀지만 코스타리카는 7월에 와서야 사게 되었네요.


 코스타리카는 주요 커피 산지로 꼽을 만하지만 일반 등급의 코스타리카 원두가 판매자의 차림표에서 빠지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7~12종 정도의 구색을 갖춘 로스터리에서도 말이지요.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 보자면 '판매량도 그냥 그렇고 이익이 특별히 많이 남는 것도 아니고 특성이 뚜렷한 것도 아니라 차림표에서 뺀다고 구색이 부실해지는 것 같지도 않아서' 정도가 그 이유일 것 같습니다만,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니 가벼운 추측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이래저래 우선 순위에서 밀리다가, 이번에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와 함께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플로레스는 만델링과 자바와 발리에 치여 보기 힘든 원두고, 트레스리오스는 타라주에 치여 보기 힘든 원두니 전략적인 희귀 아이템 구입(…)인 셈입니다.


 쓴맛과 산미가 강하지 않아서 마일드 커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콜롬비아보다 조금 더 쌉쌀하고, 조금 덜 달고, 고소한 맛과 향은 견과류보다는 볶은 깨에 좀 더 가까워 콜롬비아와는 성격이 다른(그리고 조금 덜 마일드한—혹은 '좀 더 본격적인') 커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간 콤콤한 냄새가 나서 '이게 뭐지? 만델링도 아니고… Earthy한 건가?' 같은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찬찬히 맡아 보니 생담배의 aroma였습니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향이네요.


 유리 약탕기로 식혀 커피를 냉장보존하는 요령을 터득하고 나서 커피를 한 번에 대량으로 생산(…)하기에 편리한 추출법을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티포트 브루 커피나, 하리오 드립서버에 분쇄한 원두 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우리는 방식으로 추출을 하다 보면 표면에 크레마와 유사한 거품이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경험 1 : 강배전을 한 원두보다 중배전을 한 원두를 넣었을 때 오히려 두껍고 오래 가는 거품이 생긴다.[각주:1]

 지식 1 : 클로로겐산류는 강배전을 하면 분해되어 그 양이 줄어든다.[각주:2]

 지식 2 : 클로로겐산류의 양은 아라비카보다 로부스타에 더 많다.[각주:3]

 지식 3 : 크레마를 풍성하게 만들고자 에스프레소 블렌드에 로부스타를 조금 섞는 경우도 있다.


 경험 1과 지식 1·2·3을 종합하여 클로로겐산류가 크레마(혹은 크레마와 유사한 거품)의 두께와 지속성에 영향을 줄 것 같다는 추측을 하게 되었지요. 풍성한 크레마를 얻고 싶다면 로부스타 대신 중배전한 자바 등을 섞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 중배전한 코스타리카가 거품이 더 두껍네?'하는 의문을 풀려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재미있는 경험입니다.


 일반 등급의 코스타리카 원두는 무난합니다. 커피에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여러 가지 맛과 향이 빠짐없이 들어 있지요. 특징이 그다지 뚜렷하지 않아 손이(혹은, 쇼핑몰에서 마우스 커서가) 잘 안 가는 원두이기는 합니다만, 일단 사서 들여 놓으면 꽤 흡족하게 마실 수 있는 원두이기도 합니다. 이만 리뷰를 줄입니다. 언제 또 마실 날이 오겠지요.




 각주


  1. 강배전을 한 인도네시아 블루 플로레스의 거품은 그 두께도 얇았고, 원두 가루에 고르게 물을 적시려고 조금만 저어도 순식간에 터져나갔습니다. 중배전을 한 코스타리카 라 로살리아를 비롯한, 지금까지 제가 마셨던 여러 가지 중배전 원두의 거품은 그 층이 상당히 두꺼웠고, 스푼으로 휘저을 때 거품이 밀려나 수면이 드러나더라도 주변부의 거품이 다시 몰려들어 거품의 층을 다시 형성하는 식으로 형태를 수복했습니다. [본문으로]
  2. "커피를 배전하는 과정 중 우선 약배전~중배전의 단계에서 클로로겐산 락톤류가 생성돼서 커피다운 기분 좋은 쓴맛이 납니다. 그리고 강배전을 하면 클로로겐산 락톤류는 감소하고, 그 대신 비닐카테콜 중합체가 증가합니다. 이것이 강배전 특유의 쓴맛의 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구치 마모루, <스페셜티 커피대전>, 광문각. pp.117-119(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3. 다구치 마모루, <스페셜티 커피대전>, 광문각. pp.59-60(요약본에서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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