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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서핑을 하다 보면 "세계 3대 커피"에 대한 글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습니다. 구글에 "세계 3대 커피"로 따옴표 넣고 검색하면 2013년 5월 28일 현재 23만 개 이상의 문서가 검색됩니다.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 팬시), 예멘 모카 마타리가 이른바 세계 3대 커피라고 합니다. 중간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보통의' 아라비카 원두들보다 두드러지게 비쌉니다. 하지만 왜 이것들이 다른 원두를 제치고 세계 3대 커피가 되었는지 설명해주는 글은 아직까지 못 봤습니다.




 비싼 것으로 따지자면 다음 둘을 넘어설 커피가 없을 겁니다.

 - 블랙 아이보리 (Black Ivory, 이른바 코끼리 똥 커피)

 - 코피 루왁 (Kopi Luwak, 이른바 고양이 똥 커피)


 전통의 강호(?) 들로는 우선 다음의 다섯을 꼽을 수 있습니다. 먼저 언급되는 것이 더 비쌉니다.

 - 파나마 에스메랄다 (Hacienda La Esmeralda, Panama)

 - 세인트헬레나 (Island of St. Helena Coffee Company, St. Helena)

 -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Blue Mountain Coffee, Jamaica)

 - 하와이안 코나 (Kona, Hawaii)

 - 푸에르토리코 이아우코 AA (Yauco Selecto AA Coffee, Puerto Rico)


 COE(Cup of Excellence)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가격이 오른 커피들도 있습니다. (COE 특성상 이것 말고도 훨씬 많습니다)

 - 과테말라 엘 인헤르토 (El Injerto, Guatemala)

 - 브라질 파젠다 산타 이네스 (Fazenda Santa Ines, Brazil)

 - 엘살바도르 로스 플라네스 (Los Planes, El Salvador)

 - 브라질 파젠다 상 베네디토 (Fazenda São Benedito, Brazil)


 모두 파운드당 $20 이상 값이 나간다는 커피들입니다. 여기서 잠깐. 환율만 적용해 단순계산하면 200g 한 봉지에 16600원(1달러=1100원, 1파운드=450g 기준)인 코나도, 국내 쇼핑몰에서는 5만원 안팎에 팔리고 있습니다. 관세, 로스팅 비용, 판매자의 이윤 등이 붙으니 값이 쭉쭉 오를 수밖에 없지요. 파운드당 $20을 단순계산하면 200g 한 봉지에 9777원 정도지만 국내에서 팔리는 가격은 로스팅한 원두 200g 한 봉지에 3만원 안팎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200g 한 봉지에 3만원, 혹은 그보다 더 비싼 커피들입니다. 무척 비싼 커피들이죠.




 이렇게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하와이안 코나, 예멘 모카 마타리가 3대 커피로 발돋움한 이유는 뭘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세계 3대 ○○○"같은 말을 만들기 좋아하는 일본에서 이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가능성을 제기해볼 수는 있습니다.


 "세계 3대 목록" (일본 위키피디아) : http://ja.wikipedia.org/wiki/%E4%B8

 "세계 3대 목록" (일본 위키, 구글 번역) : http://translate.google.co.kr/translate?sl…


 스크롤을 내려 보면 '세계 삼대 커피'에 블루마운틴, 킬리만자로, 코나가 올라와 있네요.

 킬리만자로? 예멘 모카 마타리는 어딜 가고?

 항목을 클릭해 자료를 긁어보겠습니다. (구글 번역본을 기반으로, 가끔씩 원문을 참조하여 글을 다듬었습니다)


 - 블루 마운틴 : 1936년(쇼와 11년) 처음 수입될 때 "영국 왕실에 진상된 커피"라는 선전문구가 붙었다. 당시 자메이카는 영국 영토였고, 영국 왕실에서 마시고 있을 것이란 추측이 바탕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근거는 없다. 결과적으로 이 선전 활동이 대박나면서 일본의 블루 마운틴 신화가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 킬리만자로 : 일본에서 킬리만자로가 커피 브랜드로 인식된 것은, 헤밍웨이 원작의 영화 "킬리만자로의 눈"이 1953년 일본에서 개봉되면서부터라고 한다.


 - 코나 : 하와이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커피를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주(州)이며, 백악관의 공식 만찬에서 나오는 커피는 반드시 코나 커피이다.


 아무래도 맛이 아닌 다른 이유로 부각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덴마크 왕실에서 쓴다는 도자기인 로얄 코펜하겐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왕실에서 쓰는 물건'이라는 말이 주는 호사스러움이 무엇인 지 알 것 같았습니다. 영국 왕실의 커피나 백악관의 커피도 아마 비슷한 것이겠지요. 헤밍웨이 원작의 영화가 개봉되면서 헤밍웨이가 좋아한다는 킬리만자로 커피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건 작가에 대한 사람들의 동경이나 애정이 불러온 소비일 겁니다. 헤밍웨이와의 일체감을 느끼기 위해 킬리만자로 커피를 마신다든가요.


 여기서 일본발 '세계 3대 커피'와 한국발 '세계 3대 커피'의 목록이 달라진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헤밍웨이는 존경받는 예술가지 사랑받는 예술가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헤밍웨이의 소설들은 그것을 완독한 사람보다 그것으로 독후감 쓴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헤밍웨이의 커피'라고 선전하면 뭔가 있어보이긴 하는데 그것이 실제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은 좀 낮지요. 더구나 '킬리만자로'라는 브랜드는 국내에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고, 킬리만자로와 관련된 탄자니아 AA 커피는 국내에서 평범한 가격에 팔리고 있습니다. 존재감이 별로 없죠. 그래서 한국인이 사랑하는 예술가 고흐를 끌어들여 제법 비싼 예멘 모카 마타리를 집어넣게 된 것이 아닐까요? 실제로 고흐의 전시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은 전시회였다고 합니다.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던 고흐가 비싼 커피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는 쉽게 믿기 어렵습니다. 집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2권이 모두 있는데 혹시 거기에 커피 이야기 나오는 게 있나 좀 살펴봐야겠습니다.




 결론이 좀 허망(혹은 험악)하지만 세계 3대 커피 어쩌구는 일본 호사가의 허세질로 시작해서 한국에 들어와 한국인 입맛에 맞게 살짝 바뀐 다음 여기저기 뿌려지면서 정설처럼 자리를 잡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 냉장고에 남아 있는 콜롬비아 원두나 좀 갈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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