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해상도 등의 스펙이 HD 기준에 못 미치는데도 화질이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HD급 동영상'이라고 광고하는 것이나, 카메라 구조가 DSLR이 아닌데도 화질이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DSLR급 카메라'라고 광고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옳지 않은 겁니다. HD나 DSLR은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동영상이나 카메라를 분류할 때 쓰는 말이지 화질 좋은 동영상이나 카메라에 붙이는 수식어가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스페셜티나 COE도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커피를 분류할 때 쓰는 말이지 품질 좋은 커피에 붙이는 수식어라 할 수 없습니다.




 스페셜티 커피는 SCAA 프로토콜에 맞추어, 샘플당 적어도 5잔 이상 커핑을 해서 점수를 낸 다음 80점 이상이 나온 커피에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예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COE 커핑으로 80점 이상이 나왔다고, 또는 (출처불명의 표를 근거로) COE 점수 76점 이상이 나왔다고 스페셜티 커피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른바 '세계 3대 커피'(이 말의 허구성은 예전에 제가 비판한 바 있습니다)에 들어가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안 코나, 예멘 모카 마타리, 그리고 일본에서 통하는 '세계 3대 커피'에 예멘 모카 마타리 대신 들어가는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를 은근슬쩍 '스페셜티급 커피'라고 광고하는 것은, 따라서, 옳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라도, SCAA 커핑에서 몇 점을 얻을 수 있을 지는 실제로 커핑을 하기 이전에는 알 수 없거든요. 이들 커피가 동호인이나 호사가들에게 얼마나 좋은 평을 받아왔든, 그동안 비싼 값에 팔려왔든 그게 커핑 점수에 영향을 줄 리는 없습니다. 실제로 커핑을 해서 80점 이상이 나오면 그때야 스페셜티 커피라 칭할 수 있는 것이지, QC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를 커피를 그저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이라고, 또는 하와이안 코나, 예멘 모카 마타리, 탄자니아 킬리만자로라고 해서─다시 말해, 그저 좀 유명한 산지에서 생산되었다고 해서 스페셜티급이라 해줄 순 없습니다.




 COE에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COE 커피는 해당 연도의 COE에 출품해 입상하였을 때, 바로 그 COE에 출품한 만큼만 COE 인증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인증받은 커피는 경매에 넘겨집니다. COE 커피에 역점을 두는 판매자라면 경매에 참여해서 커피를 따내겠죠.


 ① 2013년 철수네 농장이 COE 인증을 받았습니다. "COE 수상에 빛나는 철수네 농장의 커피!"라면서 COE에 출품하지 않은 커피를 COE 커피로 팔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COE 출품작이 아니니까요.


 ② 2011년, 2012년에 영희네 농장이 COE 인증을 받았습니다. "COE 2회 연속 수상에 빛나는 영희네 농장의 갓 수확한 커피!"라면서 2013년에 수확한 커피를 COE 커피로 팔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희네 농장이 올해 수확한 커피가 COE 인증을 받은 게 아니니까요.


 ③ 2011년에 바둑이네 농장이 COE 인증을 받았습니다. 민수가 2011년 COE 커피 경매에 참여해서 바둑이네 농장의 커피를 샀습니다. 이 커피는 COE 커피로 팔 수 있을까요? 네. 이건 당연히 됩니다. 다만 2013년 7월인 현재 시점에서 수확한 지 2년이나 지난 올드 크롭(old crop)이라 그 가치가 떨어져서 문제지요.


 이런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COE는 COE 커핑 점수 85점 이상인 커피에 주어지는 것이니까, COE 커퍼로 초대된 적 있는 사람이나 그 정도 자격이 될 만한 사람이 좋은 원두를 찾아다니며 COE 커핑을 해서 85점 이상인 원두가 나오면 'COE급 커피'라고 팔 수 있지 않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올림픽에 참가해 1등을 해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지, 올림픽 심판 자격 있는 사람이 심판을 본 경기에서 1등을 했다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급 선수'가 되는 게 아니니까요. COE는 엄연한 경쟁 대회(competition)고, COE 인증은 이 경쟁 대회에서 기준을 통과해 순위권에 든 커피에게 주어집니다.


 Pre-selection(round 1)을 통과할 수 있는 샘플(출품작)은 최대 150개이고, 단계를 넘어갈수록 통과할 수 있는 출품작의 수는 90개, 60개로 줄어서 최종적으로 COE 인증을 받을 수 있는 출품작은 최대 45개입니다. 우수한 경쟁자가 많은 해에는 85점을 넘기고도 순위에 밀려 탈락하는 일도 (이론상) 벌어질 수 있지요. 게다가 예전에 쓴 것처럼 COE 대회에는 커핑 점수와 출품한 커피 품질을 고르게 맞추기 위한 노력이 들어갑니다. 한 명, 또는 몇 명 모인 커퍼에게는 COE 수준의 검증을 할 역량도 없고, '특정 대회의 메달'같은 성격의 COE 인증을 임의로 발급할 자격도 없습니다. 여기서 COE와 SCAA의 상반된 성격이 드러납니다. SCAA는 프로토콜만 준수한다면 커퍼가 수시로 스페셜티 인증을 줄 수 있지요. 하지만 COE는 COE가 열렸을 때 COE의 주최측에서만(즉, COE 심판으로 초대받은 커퍼들의 합의를 통해서만) COE 인증을 줄 수 있습니다.




 이 글의 결론은 '낚이지 말자'쯤이 되겠습니다. 글이 길어지면 누군가를 헐뜯게 될 것 같아서, 조금 급작스럽지만 이 쯤에서 마무리짓겠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