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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두 : 호주 마운틴 톱 (Australia Mountain Top) 100g

 제품명 : 폴 바셋 그랑 크뤼 Australia Mountain Top

 구입일 : 2016. 3. 14.

 구입처 : 폴 바셋


 저의 일흔여섯 번째 커피는 호주 마운틴 톱이었습니다.



 판매자는 이 원두를 "호주 마운틴 탑"으로 표기하였으나, 외래어 표기법 상 "호주 마운틴 톱"으로 적는 것이 맞고 '바라짜 엔코'나 '레디쉬 코코'처럼 판매자의 한글 표기를 존중할 필요가 있는 특단의 사정 또한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 포스팅에서는 "마운틴 톱"이라는 표기를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 이 블로그의 별점과 그래프>


 가벼운 바디, 올배(산미/단맛/향), 볶은 보리(향), 장미(향), 와인의 느낌


 정말 오랜만에 구입하는 커피 체인점의 원두입니다. 첫 번째 원두였던 할리스의 콜롬비아 수프리모이후 거의 3년 만이네요.


 폴 바셋 호주 마운틴 톱은 비쌉니다. 100g에 2만 원이라는 가격은 최상위권 COE 커피나 중상위권 나인티플러스 커피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높은 값입니다. 당연히 저는 높은 품질의 커피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호주 커피를 맛보고 싶어 구입한 것이니까, 뒷골 땡기는 QC와 로스팅은 일단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별점에서 깔 겁니다. 핸드 소트가 고생스러웠고 첫인상이 별로였어도, 맛이 훌륭하면 리뷰는 해피엔딩이니까요.


 판매자의 테이스팅 노트에 적힌 내용에 대체로 공감할 수 있었던 원두는 이게 처음인 것 같습니다. (테이스팅 노트는 원두의 특성을 짐작하는 데에는 많은 도움이 되지만, 각각의 노트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카다미아? 이게?', '딸기???', '홍차? 홍차라고?'… 이런 식으로 말이죠) 단맛이 확실히 풍부했고, 올배를 닮은 새콤달콤함과 장미를 닮은 와인 비슷한 향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서양배와 장미가 테이스팅 노트에 흔하게 등장하는 특성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놀라운 일입니다. 흔하지 않은 특성이 (판매자와 제가 모두 느꼈을 만큼) 확연하게 드러났다는 이야기니까요.


 풍부한 단맛과 깔끔한 뒷맛은 10점 만점에 12점을 주고 싶을 만큼 만족스럽습니다. 레디쉬 코코의 단맛과 엘 인헤르토 COE의 뒷맛이 떠오를 만큼 고급스럽고 깔끔합니다. 습식으로 가공한 커피에서 이 정도 단맛이 나와준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로스팅과 QC에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도 이만큼 깔끔한 뒷맛을 내줄 수 있다는 것 또한 대단히 놀랍습니다.


 올배를 닮은 산미, 단맛, 향, 그리고 진득한 촉감은 이 원두가 지닌 가장 유니크한 특성입니다. 올된 열매 특유의 조금 시큼한 맛과 풋풋한 느낌, 배 특유의 향과 배즙 같은 진득함은 다른 커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성들입니다. 이 때문에라도 호주 마운틴 톱은 맛볼 가치가 있는 원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미-단맛-감칠맛의 연합과 균형감은 이 원두를 평범한 마일드 커피보다 조금 높은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게 해 주는 강점입니다. 볶은 보리를 닮은 고소함도 꽤 괜찮은 특성입니다.


 이제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바로 로스팅과 QC 문제입니다. 위의 더보기에서 언급하였듯 제가 구입한 호주 마운틴 톱에는 실버스킨으로 덮인 콩과 부분적으로 그슬린 콩이 상당히 많이 섞여 있었습니다. 이들을 모두 골라내면 원두가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 저는 (평소라면 결점두로 취급하고 골라낼) 이 콩들을 상당수 남겨 두었습니다. 당연히 이 콩들은 추출 결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슬린 원두와, 그슬린 채 원두에 달라붙은 실버스킨에서 유래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탄내와 탄맛(제가 '영혼 없는 쓴 맛'으로 표현하는, 좋지 않은 쓴 맛)이 났습니다. 그나마 탄내는 커피가 적당한 온도에 진입하면 거슬리지 않을 수준으로 줄어들었습니다만, 탄맛은 커피가 식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맛을 조금씩 방해했습니다.


 호주 마운틴 톱은 바디가 강하지 않고 맛이 강렬하지 않기 때문에 수율과 농도를 높여 특성을 개선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수율이나 농도를 높이면 탄내와 탄맛이 기승을 부립니다. 수율을 낮추면 바디는 물처럼 약해지고요. 터키시 커피로도 파보일드 커피로도 티포트 브루 커피로도 답이 안 나왔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훌륭한 특성들—풍부한 단맛, 깔끔한 뒷맛, 올배, 산미-단맛-감칠맛의 연합과 균형감—이 아니었다면 별 하나를 주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입니다.


 로스팅과 QC만 잘 되었더라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하와이 코나의 다음 자리에 놓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럭셔리 커피였을 겁니다. 생두의 잠재력을 높이 사서, 조금 넉넉하게 별점을 매깁니다. 호주 마운틴 톱은 한 번쯤 맛볼 가치가 있는 원두입니다. 여러분이 이 원두를 구입할 때에는 로스팅과 QC가 개선되어 있기를!




★★★


"산미, 단맛, 감칠맛의 연합과 균형감이 인상적인 마일드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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