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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라는 족쇄, 딜레탕트라는 함정>이라는, 한껏 멋을 부린 제목으로 글을 한 편 썼습니다. 이번에 포스팅할 생각으로요. 포스팅하기 전날 원고를 검토하는데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범위를 줄인 소박한 글을 새로 쓰게 되었습니다. <커피 애호가의 사회적 가치>도 그다지 소박하진 않을 듯한데,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수준 차이는 명백합니다. 프로보다 잘 하는 아마추어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죠. 그 일로 밥벌이를 하는 프로는 아마추어보다 나은 수행을 보이고, 일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도 높고 해당 분야의 트렌드를 보는 눈도 더 정확합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나면 아마추어가 참 초라해 보이죠.
이쯤에서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스포츠 용어로서의 아마추어리즘은 "스포츠를 애호하고 즐기기 위해, 또는 체육적·정신수양적으로 경기를 하는 사람, 또는 그 자세"를 이르는 말입니다. 아마추어리즘은 스포츠맨십(sportmanship)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관중에게 보이기 위한 프로스포츠에는 승리를 위한 게임즈맨십(gamesmanship)이나 흥행을 위한 쇼맨십이 끼어들 여지가 있지만, 아마추어 스포츠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들 합니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수준 차이가 명백한 마당에 스포츠맨십마저 포기하면 아마추어 스포츠는 존재 이유를 상실하니까요.
이를 스포츠 바깥의 영역에 적용하면, 프로는 업계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제약을 받지만(처음 쓰려던 글의 제목에 있는 '프로라는 족쇄'는 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마추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마추어리즘을 지킬 수 있습니다. 커피 애호가는 업계인보다 많은 자유를 누립니다. 혹평 좀 한다고 거래가 끊기거나 재계약을 거부당하지 않고, 띄워준다고 인센티브 같은 게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망치기 싫어서 "우리 신제품 어때?"라는 질문에 "허허허, 괜찮지. 허허허." 하고 대답할 필요도 없고요.
커피 애호가의 의견이 회사에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건, 아마 애호가가 누리는 자유 때문일 겁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그 의견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일반인'보다는 아는 게 많으니 의견의 질 자체도 높으니까요. 하지만 애호가의 의견이 쓸모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장과 완전히 따로 노는 의견을 내놓거나, 업계와 이해관계를 맺은 애호가가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겁니다. 그래서 회사는 애호가의 모든 의견에 귀를 기울일 수도 없고, 모든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무척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옥석을 고르듯 가치 있는 의견을 찾아내야만 하죠.
커피 애호가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만 할 필요나 의무같은 건 없습니다. 제가 좋아서 커피를 마시고 돈을 쓰겠다는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하지만 자신의 취미활동에서 뭔가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애호가가 어딘가에는 존재할 테고,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프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알면 기뻐하는 애호가도 존재하겠지요. 이 포스팅은 그러한 애호가에게 바치는 글입니다.
원고를 싹둑 자르고 나니 참 짧네요. 그럭저럭 서본결 구조를 갖추었으니 아쉽지만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지을까 합니다. 다음 주에는 원두 리뷰를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오늘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은, 나중에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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