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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싼 커피'에 대해 글을 예전에 두 편 쓴 적이 있습니다. "세계 3대 커피와 그 뒷이야기", "본격 비싸고 귀하신 원두 이야기"죠. 그리고 1년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식이 쌓이고 원두 리뷰도 쌓였죠. 그러다 보니 '비싼 커피' 태그를 붙여야 할 원두의 조건(?)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이런 글을 한 편 쓸 필요도 생겼고요.




 이 블로그에서는, 제품의 1차적인 품질 외의 요인 때문에 비싸게 팔리는 커피에 '비싼 커피' 태그를 붙입니다. 마구 던지는 말로 하자면 '쓸데없이 비싼 커피', '이 값을 주고 살 이유가 없는 커피'도 될 수 있지요. 하지만 그 1차적인 품질 외의 요인—명성, 희소성, 인지도 등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각주:1] 비난의 뜻이 없는 '비싼 커피' 태그를 붙이는 것입니다. 정말 쓸데없이 비싼 커피를 불행하게도 리뷰하게 된다면 '까야 제맛' 태그를 붙이겠지요.


 스페셜티 커피나 COE 커피, 혹은 나인티플러스 중에는 값이 비싼 커피도 있지만, 저는 그러한 커피를 리뷰할 때 (원칙적으로는) '비싼 커피' 태그를 붙이지 않습니다. 커핑 결과 높은 점수가 나왔거나 COE 프로그램에서 입상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커피의 품질을 보증하는 셈이고, 소비자는 제품의 1차적인 품질을 보증하는 객관적 지표를 믿고 비싼 값을 치르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있어서 비싼 커피'죠. 말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블로그에서는 이유가 있어서 비싼 커피에는 '비싼 커피' 태그를 붙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명성이 높은 농장이[각주:2] COE에서 입상했을 때[각주:3], 그 경매분을 리뷰하는 경우 등에 '비싼 커피' 태그를 붙이느냐 마느냐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럴 때 '비싼 커피' 태그를 붙일 생각입니다. COE 입상만 해도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데, 명성이 높은 농장의 COE 커피라면 더욱 더 비싸질 게 틀림없으니까요.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제품의 1차적인 품질 외의 요인 때문에 비싸게 팔리면 → '비싼 커피' 태그를 붙인다.

 2. 스페셜티 커피, COE 커피, 나인티플러스 커피 등은 → 태그를 붙이지 않는다.

 3. 조건 1과 2에 모두 해당한다면 → '비싼 커피' 태그를 붙인다.




 이 블로그에서 지금까지 리뷰한 원두, 그리고 앞으로 리뷰할 지 모르는 원두 중에 '비싼 커피' 태그를 붙일 만한 제품의 목록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이 목록은 추후 수정될 수 있습니다)


 가. 명성이 높은 지역[각주:4]

  -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Jamaica Blue Mountain)

  - 하와이 코나 (Hawaii Kona)

  - 예멘 모카 마타리 (Yemen Mocha Mattari) + 히라지, 사나니, 하이미…

  - 쿠바 크리스털마운틴 (Cuba Crystal Mountain)

  - 호주 스카이베리 (Australia Skybury)


 나. 희소성이 강한 지역

  - 레위니옹 부르봉 포앙튀 (Reunion Bourbon Pointu)

  - 세인트헬레나 (Island of St. Helena)


 다. 명성이 높은 농장 : 특별히 값이 높은 경우에 한함

  - 과테말라 엘 인헤르토 (El Injerto)


 라. 명성이 높은 품종 : 특별히 값이 높은 경우에 한함

  - 게샤(Gesha)


 마. 똥덩어리들(…)

  - 코피 루왁 (Kopi Luwak)

  - 블랙 아이보리 (Black Ivory)


 파나마 에스메랄다(Esmeralda, Jaramillo) 농장의 게샤는 비싸지만 다이아몬드마운틴은 무난한 가격에 팔립니다. 그래서 저는 에스메랄다 농장을 '비싼 커피'의 조건으로 삼지 않고 게샤 품종을 '비싼 커피'의 조건으로 보았습니다. (게샤 품종을 명시한 커피가 낮은 가격에 팔리는 경우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 목록에 빠진 코스타리카의 라 미니타(La Minita), 에티오피아의 Bagersh, 파나마의 에스메랄다와 같은 농장의 명성이 낮은 건 절대 아닙니다. 제가 '비싼 커피'로 분류할 만큼 비싼 값이 아닐 뿐이죠.




 저는 코피 루왁이나 블랙 아이보리에 흥미가 없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호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호하는 호사는 세인트헬레나 생두 1kg을 구입한 다음[각주:5] 인근 로스터리 카페에 의뢰해서 로스팅을 하고, 알고 지내는 커피쟁이들을 초대해 드립파티를 여는, 그런 것이죠. 아니면 영국 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Fortnum & Mason에서 레위니옹을 몇 캔 사서 돌리거나요.[각주:6]


 개인적으로는, 페레로로쉐는 두고두고 한 알씩 까먹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싸고 귀하신 원두도 비슷하겠지요. 자메이카 블루마운틴도 매일 마시면 그저 그런 마일드 커피에 불과할 겁니다. 하지만 가끔 마신다면 그 호사스러움을 즐길 수 있겠지요. 리스트를 작성하다 보니 저에게 페레로로쉐 몇 개가 아직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한 알씩, 생각이 날 때마다 야금야금 꺼내 먹어야겠습니다.




 각주


  1. 오랜 시간에 걸쳐 품질관리를 해서 천천히 명성을 쌓아올리는 식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명확하고 일관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노력 또한 필요하고요. 하와이 코나를 리뷰할 때 썼던—"지금까지 오랫동안 생산되었듯 앞으로도 오랫동안 생산될 것이라는 데에서 오는 심리적인 안정감, 그리고 '코나'라는 이름을 가진 원두는 내가 기대하는 그 맛과 향을 내 줄 것이라는 확실성"과도 어느 정도 통합니다. 스페셜티 커피나 COE 커피의 품질이 '비싼 커피'의 품질을 뛰어넘는 경우는 흔하지만, 이러한 스페셜티/COE가 앞서 말한 '심리적인 안정감'이나 '확실성'을 갖춘 경우는 사실상 없습니다. 스페셜티/COE의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은 탓도 있고, 커핑 점수가 중요한 스페셜티/COE 특성상 농장은 점수를 높게 받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맛과 향이 해마다 바뀌어 일관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 탓도 있습니다. [본문으로]
  2. '비싼 커피' 태그를 붙이는 조건이 됩니다. [본문으로]
  3. '비싼 커피' 태그를 붙이지 않는 조건이 됩니다. [본문으로]
  4. 자메이카 블루마운틴과 하와이 코나는 명성도 높고 가격도 높습니다. 나머지 지역은 자메이카나 하와이만큼 명성이 높지는 않지만, 품질에 비해 가격이 높은 이유가 해당 지역의 명성 혹은 인지도에 있는 것 같아서 여기에 넣었습니다. 예멘 모카 마타리는 좀 애매한데, 이른바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로 한국에서 통용되니 여기에 넣었습니다. [본문으로]
  5. 글을 쓰고 있는 현재 GSC International에서 1kg에 36만원쯤 합니다. 볶지도 않은 콩이 말이죠. 게다가, 커피콩닷컴의 설명에 따르면 알이 단단해서 로스팅이 까다롭다고 합니다. 무난한 로스팅 프로파일로 돌릴 물건이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200g쯤 테스트 로스팅을 하다가 실패하면 7만원 넘는 돈이 허공으로 사라지는 셈입니다. [본문으로]
  6.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레위니옹 부르봉 포앙튀는 국내에서 구할 수가 없습니다. 외국의 생두 판매자와 접촉할 수 있다면 생두를 국제배송받아 로스팅을 의뢰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쉽지 않네요. 몇 년이 지나도록 방법이 안 생긴다면 Fortnum & Mason에 이메일을 보내 생두 1kg만 팔라고 요청해봐야겠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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