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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커피를 마시는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훌륭한 카페인 공급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카페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고, 저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카페인의 양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하루에 마실 수 있는 커피의 양은 딱 한 잔입니다. 하루에 한 장씩 발급되는 카페인 쿠폰과 한 잔의 커피를 맞바꾸는 셈이죠.


 만약 치킨이 저칼로리 음식이었다면 오이무침 같은 취급을 받았을 겁니다. 치킨이 맛있는 이유 중 하나는 '먹고 싶지만 먹을 수 없다'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있죠. 저에겐 커피도 그러합니다. 퍼마시고 싶지만 두 잔 마시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세 잔 마시면 잠을 못 잡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를 잇는 디카페인 커피는, 누군가에게는 견우와 직녀의 만남 같은 천상의 기쁨이었겠지만 저에게는 10년 만에 만난 첫사랑 같은 동심파괴—아니 이상파괴의 현장이었습니다. 퍼마실 수 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아. 가짜 음식을 먹는 것 같아. 나를 속이는 기분이야.


 신이시여 디캐프를 멸하소서.




 카누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리뷰하는 과정은, 디캐프(decaf : decaffeinated coffee)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걷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커피 리뷰는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감각은 정신작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상태로 제대로 된 리뷰를 할 수는 없거든요.


 디캐프 특유의(?) 한약 냄새 같은 탄내는 아무래도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고, 디캐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도 거슬렸습니다. 탄맛이 아닌 탄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요. 탄맛이었다면 절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적당한 온도'는 모든 커피의 핵심입니다. 아주 뜨거울 때는 쓴맛이나 탄내 같은 좋지 않은 특성이 두드러지고, 적당한 온도에 진입하고 나야 산미나 감칠맛 같은 좋은 특성이 나타나기 때문이죠. 카누 디카페인 아메리카노에게 적당한 온도는 핵심의 제곱만큼 중요합니다. 쓴맛이나 탄내를 가려줄 다크초콜릿 같은 바디감이나 곡물 같은 구수함이 없거든요. 무방비입니다. 아주 뜨거울 때 마시면 정말 대책이 없어요. 대신 적당한 온도로 내려가면 달달함과 감칠맛을 포함한 복합적인 맛이 올라오고, 약간의 산미도 느껴집니다. 이 커피의 '적당한 온도'는 비교적 낮은 편입니다. 평소라면 조금 식었네 싶은 온도에서 꽤 좋은 맛이 납니다.




 카누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는 스위스 워터 프로세스(Swiss water process)로 카페인을 제거한다고 합니다. 제가 구입한 제품의 포장에 표기된 성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디카페인 커피 100%[인스턴트커피 95%, 볶은커피 5%](캐나다산 100%)


 이 제품은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좋지만, 연유를 넣어 베트남식 커피로 만들어 마셔도 맛이 좋습니다. 맛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결점이었던 탄내도 덮여 없어집니다. 디카페인 커피믹스가 마땅찮다면 이렇게 해서 마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잔 바닥에 가라앉은 끈적이는 단맛 덩어리에 커피 미분이 섞일 수밖에 없으니, 커피를 홰홰홰홰홰 저어서 연유를 완전히 녹이는 편이 낫습니다.


 맥심 아라비카 100 스틱커피가 맥심에 대한 저의 편견을 걷어낸 제품이었다면, 이 제품은 디캐프에 대한 저의 편견을 걷어낸 제품입니다. 디카페인 커피도 생각보다 괜찮네요. 조만간 커피가 많이 필요할 때—커피를 마시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지만, 카페인 섭취량을 조절해야만 할 때—다른 디캐프에도 도전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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