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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반커피 프로젝트는 블렌딩에 도전하는 사람에게 접근법을 제시하여 주고(<반반커피 프로젝트 [1]>) 섞는 원두를 둘로, 섞는 비율을 반반으로 고정하여 2차원 평면 위에 하나의 표로 정리하기에 좋아(<반반커피 프로젝트 [2]>)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축적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데이터를 쌓다 보면 벽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것은 [+산미], [-산미]라는 기준으로 베이스와 톱을 나누고 [+바디], [-바디]라는 기준으로 베이스1과 베이스2, 톱A와 톱B를 나누는 도식적이고 기계적인 방법론에 있습니다. 이 틀에 따라 블렌딩을 진행하다 보면 그 결과물의 산미는 중간 수준으로 획일화되고 바디는 3단계 범위 안에서만 움직이게 됩니다. 그 이상의 미묘함을 추구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두 종류의 원두를 반씩 섞는 방법으로는 내가 원하던 특성을 모두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도 많고요.


 반반커피 프로젝트 그 세번째 글에서 저는 제3의 커피를 제시함으로써 반반커피의 형식적 완고함을 벗어나려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반반커피 결과물의 산미와 바디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제3의 커피가 갖는 특성을 추가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세 종류의 원두를 섞다 보면 2차원 평면 위에 하나의 표로 정리하기에 좋다는 반반커피 프로젝트의 큰 장점이 사라집니다. 데이터의 축적이 체계성을 잃으면 블렌딩 결과에 대한 세련된 예측이 어려워지겠지요. 그러다 보면 일단 섞고 마시고 '어 이건 좀 아니네' 싶으면 다른 블렌딩을 시도하는 시행착오의 연속이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제4의 커피나 제5의 커피와 같은 개념을 제시하는 대신, 반반커피의 틀을 좀 더 정교화할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편의상 미세조정(fine tuning)으로 부를 이 방법은, 톱 또는/그리고 베이스에 두 가지 원두를 반씩 섞음으로써 좀 더 복합적이고 미묘한 특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2번 접근법의 베이스([-산미][-바디])로 쓸 만하면서 고소한 특성과 달콤한 특성을 모두 지니는 원두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정 농장의 마이크로 로트나 스페셜티 커피를 뒤적이면 나오겠지만, 이렇게 찾은 원두로 블렌딩을 하면 아무래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원두가 품절이 되거나, 다음 해에 원두의 특성이 바뀌어버리면 쓸모가 없어지니까요. 특정한 마이크로 로트나 스페셜티 커피는 물량이 한정되어 있으니 품절되기 쉽고, 미기후(微氣候)와 토양의 특성을 살려 만들었으니 해마다 조금씩 특성이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각주:1]


 하지만 브라질과 멕시코를 반씩 섞으면 고소한 특성과 달콤한 특성을 모두 지니는 2번 접근법의 베이스를 일반 등급의 원두만으로 적절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산미][-바디]라는 (2번 접근법의 베이스의) 기본적인 특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고소함과 달콤함이라는 미묘한 특성을 잡아냈으니 '미세조정'에 성공한 셈입니다.


 산지[각주:2], 가공법[각주:3], 로스팅 프로파일[각주:4], 품종[각주:5] 등 미세조정에 활용할 수 있는 요소는 많습니다. 1번 접근법의 베이스(예 : 인도네시아)와 A의 톱(예 : 케냐)은 그 풀(pool)이 상당히 좁은데, 미세조정을 잘 활용하여 특성에 변화를 주면 블렌딩의 폭이 좀 더 넓어질 것입니다.




 각주


  1. 일반 등급의 커피 중에는, 여러 농장의 커피를 적당히 '블렌딩'하여 특성의 변화에 대처하는 것도 있습니다. 콜롬비아 커피가 꽤 일정한 맛을 내어주는 건 이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2. 원하는 특성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원두를 택하여 섞을 수도 있고, 같은 나라의 다른 산지(만델링+자바, 이르가체페+시다모, 우에우에테낭고+안티구아), 같은 대륙의 다른 나라(케냐+탄자니아, 케냐+우간다)의 원두를 섞어 미묘한 변화를 줄 수도 있습니다. 세번째 글에서 '반반커피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커피'라고 말했던 말했던 인도네시아+콜롬비아 풀시티나 탄자니아+케냐 조합을 완성된 블렌딩으로서가 아니라 미세조정을 한 베이스나 톱으로 해석한다면, 산지에 변화를 준 예로 볼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3. 습식 시다모+건식 시다모, 습식 이르가체페+건식 이르가체페는 산지는 같고 가공법이 다른 원두를 조합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니 프로세스', '펄프드 내추럴'등의 가공법으로 가공한 원두를 조합하는 것도 변화를 주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4. 로스팅 정도(예 : 하이냐 시티냐), 로스터의 종류(예 : 직화식이냐 열풍식이냐), 화력 조절, 온도의 변화, 로스팅에 걸린 시간 등 로스팅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포함합니다. 하이 로스트 이르가체페+시티 로스트 이르가체페, 직화식 로스터로 볶은 하라+열풍식 로스터로 볶은 하라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5. 케냐의 경우 원종과 개량종(SL28, SL34 등)을 섞어볼 수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와 예멘의 경우 원종과 외래종(부르봉 등)을 섞어볼 수 있습니다. 중남미의 경우 생산성 쪽에 무게가 좀 더 실린 교배종(카투아이, 문도노보 등)과 향미 쪽에 무게가 좀 더 실린 품종(부르봉, 티피카, 게샤 등)을 섞어볼 수 있습니다. 피베리가 아닌 원두와 피베리인 원두를 섞는 것도 넓게 보았을 때 여기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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